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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성 Aug 23. 2023

할아버지는 안경을 쓰셨지

  내가 아는 할아버지는 외할아버지 밖에 없다.

  할아버지를 사랑했었나? 생각하면 당황스럽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나오는 시를 많이 썼다. 사랑하는 할아버지보다 흐물흐물 잘 잡히지 않는 할아버지가 자꾸 나온다. 암튼 내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장어를 먹게 해주겠다고 장어 머리에 못을 박으려 했던 기억. 빨간 목장갑을 끼고 계셨는데, 나는 그게 피인 줄 알고 장어에게 물려서 엄지가 잘린 걸지도 몰라, 너무 무서워서 얼어붙었다. 엄마에게 그때 다치셨었지? 물어보니 그런 적 없다고…… 그건 그냥 장갑이었구나, 우리는 그때 장어를 먹었겠구나. 기억나지 않지만 그랬겠지.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셨겠지. 그때 잡아먹은 장어 이름이 칠성장어였던 것 같다. 칠성장어라는 말이 어딘가 멋있어서 아직도 칠성장어, 칠성장어 말해본다.

  과자 한 봉지 다 먹고 나면 안쪽 모서리에 끼어있는 부스러기. 입에 대고 털어봐도 나오지 않는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 정도에서 그친다. 자꾸 방귀를 뀌시고 해성아, 고구마 먹을래? 말씀하시고 손에 모은 방귀를 나에게 내미신다. 그러면 서로 웃고 고구마 같은 건 처음부터 없는 줄 알면서도 질리지 않는 장난. 엄마는 할아버지가 정이 많은 분이었다고 말한다.

  노란 스쿠터를 타고 다녔던 할아버지. 엄마 말을 듣다 보니 할아버지가 손가락을 다친 적이 있다고 한다. 기억은 흐르는 점액처럼 줄줄 섞여서 할아버지? 뒤돌아보면 이제 할아버지는 없다.

  할아버지, 저도 언젠가 할아버지가 될 겁니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냥 늙기만 해도 할아버지라고 불러주는 모양이에요. 이제 칠성장어는 보호종이라 먹지 못합니다. 작은 마당이 있던 집에 사는 사람은 없고 친척들을 자주 만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엄마와 할아버지는 자꾸 시에 등장하고 두 사람이 같이 나오는 시도 언젠가 쓰겠죠. 할아버지는 기억 속 할아버지, 시 속에 등장하는 할아버지, 무덤 아래 할아버지, 엄마의 꿈에 나오는 할아버지까지 전부 다른 할아버지지만, 전부 같은 할아버지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렇게 어른이 되어버렸어요. 이게 다 할아버지가 먹인 것들 때문은 아니겠지만, 영향이 있지 않을까요?

  할아버지는 안경을 쓰셨지, 적어봤지만 무언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빛나는 안경에 가려진 눈이 생각난다. 젊어서는 안 쓰셨어,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나는 자꾸만 어색하고 흐물흐물 사라지는 할아버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모든 건 착각일지도 몰라. 아니면 사랑이 존재할지도 몰라. 답해 주는 사람도 할아버지도 없다. 칠성장어만 어딘가에서 헤엄친다. 꿈틀대며 바닥을 기어 온갖 모습을 취하는 칠성장어. 어딘가에서 칠성장어를 잡아오신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못을 박으려는데, 온 가족이 할아버지를 본다.

  안경을 쓴 할아버지, 칠성장어, 노란… 그것은… 식탁은… 나는 어디에 앉아있나… 모르겠다. 한 장면에 못이 박힌 건 나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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