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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성 Aug 23. 2023

공원은 그냥 공원인 것 같다

  공원의 공이 빌 공자인 줄 알았다. 아니었고, 공평할 공이었고. 공원은 비었을 때만 공원이라고 생각한 걸까. 다 오라고 만들어 놓고 왜 비우길 원하는지, 이상했다. 이상한데, 공원은 그냥 그러길 바라는 줄 알았다.

  빈 곳 여기 있으니까 와서 쉬라고. 그런 뜻일 거라 믿었는데, 공평하게 오라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너도 한 번 나도 한 번. 내가 아프면 이제 네가 아플 차례야. “아니야, 다음 사람은 아프지 말길 바라야 해.” 누가 그래. “그냥 다 그래.” 그러니까 누구.

  혼자 생각하면 답은 안 나오고 공원은 생각보다 엄청 괜찮은 곳이다. 겨울의 공원에 앉아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봄의 공원은 다르다. 봄의 공원에 빛과 향이 가득하다. 그건 그냥 봄이 좋은 거지 봄의 공원이 으쓱대고 그럴 일은 아니다. “아니야, 공원이 봄을 잔뜩 받아들인 거야. 그래서 좋은 거야. 공원은 크고 비어있어서 늘 가득하거든.” 그러면 이제 ‘빈 공원’ 같은 말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너 어디야.” 나 빈 공원에 앉아있어. “정말 비어있니?” 잘 모르겠어. 빈 것은 나였고.

  공원은 도망친 적도 없고 공원은 받아준 적도 없고 공원은… 공원은 그냥 공원인데 왜 여기서 많은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빈 곳이라는 뜻이 아니라면, 여기가 공평한 곳이라면 어째서 어떤 사람은 그냥 지나갈 수 있었고 어떤 사람은 결국 멈추게 되는 걸까.

  여기 나무가 살고 새가 날아오르고 개가 달린다. 사람들은 흩어져있다. 무언가 보고 듣고 느낀다. 하지만 나무의 뿌리가 공원 아래로 뻗어 공원을 더 단단하게 움켜쥐는 것까지 느낄 수는 없겠지. 사람은 그냥 사람의 감정을 느끼고 사람의 일을 어딘가 써보기도 한다. 그것을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보여줄 수 없다면 밤의 공원에 묻는다. 

  낮의 공원도 밤의 공원도 있지만, 낮부터 밤까지 앉아만 있는 사람은 뭘까. 그런 사람은 비우고 있을 것이다. 공평해 보이지 않는 슬픔을 빌 때까지 버리고 있다. 그런 순간에도 나무의 뿌리가 미세하게 자라는 것도 모른 채. 그냥 여기 있고 싶다고 나무 사이에 들어가고 싶다고 한다.

  개수대에서 손을 씻거나 음수대에서 물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공원은 참 편리하구나, 수도관을 따라가면 사람이 나온다. 물을 계속 흘려보내길 원하는 사람이 있다. 물을 잠그지 않고 가면 물은 계속 공원에 쏟아진다. 공원은 그럴 때 곤란하다.

  지나가는 개를 보며 한 번 쓰다듬어 보길 소망하는 사람이 있다. 분명 부드럽고 숨결은 따뜻할 거야, 생각하면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개를 키울 수 없지만, 공원에 갈 수는 있다. 거기엔 보통 개가 몇 마리 있다. 다음번엔 한 번 쓰다듬어 볼 수도 있을 거야, 생각하면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만, 가지에 앉은 새를 쫓아내길 원하는 것은 아니다. 공원은 두 사람이 걷기에 충분하고 한 사람이 걸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공원은 폐허가 될 때까지 마음의 무게를 견딘다.

  이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공원은 그냥 공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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