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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성 Aug 25. 2023

사랑을 위해 지옥에 가는 이야기들

  쓰다가 자주 지우는 편이다. 결국 모든 것이 암흑천지. 글로 쓰고 싶은 영화와 책 목록을 적다가 문득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지고 뒤돌아본 오르페우스에게서 지옥은 에우리디케를 빼앗는다.

  반드시 말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면 편안하다. 글로 쓰지 않은 죄책감은 남지만 억지로 리스트에 한 줄씩 줄을 긋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어떤 영화나 책은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고 굴복시켜서 말하게 한다. 축축한 뇌에서 반죽이 된 다음 뜨겁고 향긋한 냄새를 피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봤을 때. 적막하지만 분명히 자라서 거대한 불을 만드는 이야기. 나도 모르게 흉터가 남는 장면.

  나는 치밀한 분석을 모른다. 이야기를 잘 압축해서 소개할 자신도 없다. 나는 다만 놀란다. 그리고 그 표정을 지우지 않고 일부러 뒤돌아 앞에 놀라운 게 있다고 알려줄 수 있을 뿐이다. 나의 개인적인 감상이 막 움튼 불씨에 너무 큰 숨을 불어 희미하게 시작된 불이 꺼질까 걱정스럽다.

  하지만 두 여인의 이야기, 사랑을 위해 지옥에 가는 이야기들. 네가 없는 곳이 지옥이니까 천국을 버릴 각오를 한다. 그림 속에 갇힌 불이 살아나는 우리의 마지막.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사랑 에우리디케가 죽자 리라를 들고 지옥으로 내려간다. 긴 모험이 끝나고 하데스와 그의 부인 페르세포네 앞에서 리라를 연주하자 감동하여 단 한 번의 기회를 주기로 한다. 다만 하나의 조건을 지켜야 한다. 지옥을 빠져나가기 전까지 뒤돌아봐서는 안 된다. 오르페우스는 지상을 한 발자국 남기고 뒤돌아 에우리디케를 바라본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는 여러 해석을 남긴다. 그것은 사랑의 속성을 설명하기도 하고 결국 섭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예시가 되기도 한다. 여기 여러 해석이 있다. 

  1. 에우리디케가 돌아보라고 말했다.

  에우리디케는 두려운 게 아니었을까. 죽음을 극복하고 재회한 기쁨도 잠시, 부활한 서로가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거라는 예감과 슬픔이 지옥을 빠져나오는 내내 괴롭혔지 않을까. 그래서 그토록 그리웠던 얼굴을 확인하고자 했을 것이다. 밝아오는 저승의 출구를 보며 자신들의 사랑이 이미 끝난 것임을 확신하고 오르페우스를 불렀을 것이다.

  2. 참을 수가 없었다.

  참을 수가 없는 것. 그게 사랑이다. 지금이 아니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자신의 사랑과 떨어져 고통스러웠다. 그것이 찰나였든 영겁이었든 아무래도 좋았다. 여기 내 사랑의 손이 내 손에 잡혀있으니 지상을 한 발 앞둔 여기가 되었든 하데스의 인사를 받은 직후였든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운 얼굴을 보고 싶어서 봤을 것이다. 어쨌거나 사랑은 이성적인 사고와 정반대로 달려가려는 성질이 있으니까. 결국 사랑의 속성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마지막 서로에게 건네는 말들. 내가 많이 사랑해, 또 만나요. 사랑이란 언젠가 완성된 사랑의 모습이 서랍장 어디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들고 있으면 계절마다 당도가 더해지는 과일의 모습도 아니다. 받은 그 자리에서 팔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먹어도 좋은 것. 마땅한 것. 에우리디케도 디오니소스도 알고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싫다고. 그렇지만 부활한 우리의 사랑은 이전과는 아주 다른 모습일 거야, 알고 싶지 않아도 알아버렸다. 지금 우리 같이 이 사랑을 묻어 주자. 아주 깊이 파서 지옥에 두고 오자. 보고 싶으면 보러 갈게, 다 보면 다시 묻어두고 갈게. 뒤돌아보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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