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권, 첫 해외여행, 첫 대만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뭐예요?”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대답이 있다. “저는 여행이요!”. 취미 부자인 내가 가장 오랫동안 사랑해 온 비싼 취미는 바로 여행이다. 어리고 시간이 많을 때는 돈이 없어 자주 못 갔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돈과 시간 모두가 없어 자주 못 갔다. 그래도 언제든 틈만 나면 일단 여행을 가려고 도전했다. 코로나19가 가로막기 전까지는 비행기를 끊고 기다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다.
아시아를 시작으로 유럽 여행까지 짧게는 2박 3일, 길게는 54박 56일까지 여행을 했었다. 그 여행의 첫 단추였던 대만 여행은 정말 겁도 없이 다녔던 여행이었다. 지금이야 여행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익숙해졌지만, 첫 여행 때는 미숙함 그 자체였다. 어쩌면 그래서 가장 예상치 못한 여행이라 아직까지 진한 잔상이 남아있는 지도 모른다.
첫 여행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들과 계획을 했다. 당시 졸업을 앞둔 23살의 학생이었다. 졸업 작품을 만들고, 공모전을 준비하느라 매우 바빴던 시기였다. 그래서 직장인이었던 한 친구의 주도로 예약을 하고 준비했다. 그때는 구글맵이라는 엄청난 존재를 몰랐었다. 그래서 우리가 가고 싶었던 모든 장소의 주소를 한자와 영어, 한국어로 다 적어서 갔다. 첫 여행이라 얼마나 설렜던지 그 설렘은 잊히지 않는다.
첫날, 대만 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근처 역까지는 잘 도착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어디로 가야 숙소인지 알 수 없었다. 지도라는 문물은 사용할 생각조차 못 하는 어리숙한 아이들이었기에 우리는 대만의 중학생 무리에게 영어로 이곳을 어떻게 가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영어는 하지 못한다고 손을 내저었다. 그래서 3개 국어로 적힌 주소를 들이밀며 다시 부탁을 했다. 이번에는 자신들을 따라오라고 데려갔다. 세 명의 친절한 친구들은 우리를 숙소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그 천사들을 어디선가 다시 마주칠 수 있다면 밥이라도 사주고 싶을 정도로 고마웠다.
우리의 대만 여행은 9월에 이루어졌는데, 당시 대만 날씨는 우기였다. 그리고 하필 태풍과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날씨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없던 바보 세명은 우산을 가져온 이가 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숙소에서 우산을 대여해 줬지만 그 우산은 태풍에 나부껴 반대로 뒤집어졌다. 당황스러울 법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웃었다. 왜 이렇게 모든 상황이 웃겼던지 모르겠다.
비가 쏟아지는 날, 우리는 굳이 온천을 하러 갔다. 그 상황에서도 의견이 안 맞아 싸우기도 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떨어뜨려 메인보드가 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의가 상한 채로 온천에 도착했다. 어색하던 바보 세명은 온천에 뜨거운 유황 탕이 방귀 냄새가 난다며 웃다가 자연스럽게 화해를 했다. 지금 생각해도 바보 같은 화해지만, 어색한 기류가 사라져서 그저 좋기만 했다.
다음 날, 타이베이를 떠나 지우펀이라는 곳으로 갔다. 그곳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애니메이션의 모티브가 되는 곳이라고 해서 기대가 컸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야경을 보기도 전에 충격을 받았다. 취두부란 존재를 그렇게 진하게 알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사실 대만에선 먹방을 하진 못했다. 모든 음식에 향신료가 들어가 있어 익숙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렇게 취두부 냄새에 오늘도 밥을 먹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좌절감이 들었다. 그러나 다행히 만두를 파는 곳을 만나게 되어 그곳에서 굶주렸던 위장을 달래 주었다.
지우펀의 밤은 정말 아름다웠다. 사람이 가득해서 어깨가 닿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풍경만큼은 황홀했다. 이날 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낯선 곳에서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내 언어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생각보다 편안한 것이구나 하며, 그 자체로 평화로웠다. 나는 처음 해외로 나왔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이 쓰였었다. 그런데 한국 밖으로 나와보니 그런 시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런 시선이 없어도 존재했다. 나는 그런 시선이 없으면 온전히 되고 싶은 내가 될 수 있다. 어찌 보면 여행지에서 나는 나의 페르소나가 될 수 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짜릿했다.
다음 날, 바보 세명은 황금박물관이라는 진과스에 갔다. 진과스는 광부 도시락이 유명해서 도시락을 먹기 위해 갔다. 사실 지금은 기억이 흐릿해서 그 도시락의 맛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정도로 평범했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서는 정말 웃긴 기억이 있다. 앞에 여행자들이 어딘가로 들어가길래 우리도 따라갔다. 그런데 직원이 국적을 묻더니 갑자기 들어가지 말라는 듯 막아섰다. 중국인, 일본인들은 다 들어가는데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막아서는 것이었다. 갑자기 부푼 애국심이었을까? 묘하게 기분이 나빠진 우리는 기필코 들어가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한 친구가 용감하게 그 앞에 서서 말했다. “와이 낫 미?!”. 차마 영어로도 쓰기 민망할 정도였다. 당차게 선 것치고는 매우 시무룩하게 물어보았다. 그 말을 들은 직원분은 당황하여 “오 노노노노” 하며 우리를 들여보내 주었다. 그리고 우리의 무지함을 만나게 된다. 그곳은 영상을 틀어주는 곳이고, 중국어로 된 영상물에 영어, 일본어로 된 자막만 나왔다. 그러니 한국인인 우리에게는 들어가도 크게 의미가 없는 곳이긴 했다. 그 장소를 들어오고 김이 빠지긴 했다. 다만, 전설의 <와이낫미> 사건으로 기억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획득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우리는 집에 돌아가야 했다. 바보 세명은 사실 인천공항보다 김포공항이 가까웠기 때문에 김포공항으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운 좋게 예약했다. 그래서 대만에서도 메인 공항이 아닌 다른 공항으로 가야 했다. 우리는 우리답게 공항에 가는 시간도 착각해서 대중교통을 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택시를 타기로 결정했다. 바보들은 쓸데없이 용감하고 당당하다. 그래서 택시에 덜컥 올라탔다. 지금 생각해 보면 택시 앱도 없고 중국 말은 하나도 하지 못하면서 대차게 올라탄 것이 어이가 없다. 하지만 그때 우리에게는 용기 빼면 시체였다. 올라타서 “쏭산 에어폴트!” 하고 외쳤다. 하지만 큰 문제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택시 기사님이 영어를 전혀 못하는 것이다. 에어폴트라는 말을 전혀 못 알아들으셨다. 지금은 검색을 하거나 번역기를 돌리면 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용감한 바보들은 대처 방법도 용감했다. 친구 한 명이 “어,, 어…. 쏭산 피유~~~ 웅(비행기 이륙하는 제스처)”하며 택시 기사님을 쳐다보았다. 이 어이없는 행동은 놀랍게도 효과 만점이었다. 기사님은 바로 알아듣고 공항으로 이동해 주신 것이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낭비한 우리는 빨리 가야만 했다. 그제야 앱을 켜서 “빨리 가주세요”를 찾아 기사님 귀에 대주었다. 그러자 기사님은 알겠다고 대답해 주셨다.
이런 바보 상태로 첫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아찔하다. 스스로 지도조차 열어보지 않고 천사 같은 대만인들을 만나 물어보고 다녔다. 어찌 보면 용감한 바보들에게 운이 따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바보 셋은 훗날, 같이 여행만 하면 비를 몰고 다니는 엄청난 비의 요정이 되었다. 서로가 서로 탓이라며 서로를 헐뜯으며 우당탕탕 여행을 했다. 아직도 첫 대만 여행을 추억하면 자연스럽게 웃게 된다.
여행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선명한 추억을 선물한다. 그리고 나는 첫 여행 때 느꼈던 자유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들이 어떤 시선을 보내든 나는 내가 되고 싶은 나로 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면 나는 더욱 나로 존재할 수 있다. 그 깨달음을 시작으로 여행은 나에게 다양한 가르침을 주었다.
앞으로 내가 했던 여행들에 대한 이야기를 뒤늦게나마 남겨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