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인천공항 > 가오슝공항 > 호텔 > 춘수당 > 보얼예술특구 > 까르푸 > 세븐일레븐
일찍 잠들지 못해 힘겹게 일어나니 날씨가 흐렸다. 보통은 날씨에 따라 기분이 좌우될 때가 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가오슝으로 여행 가는 이날만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아침부터 씻고 준비해 공항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타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조차 내 기분을 해치지 못했다. 예상 시간보다 일찍 공항에 도착해서 가방 무게를 재보니 11kg 정도? 저가 항공이라 올 때 무조건 초과될 캐리어를 위해 보조 가방까지 사서 마음이 든든하다. 입국수속을 모두 마치고 면세품을 찾아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를 탔는데 자동차에 탄 기분을 느껴본 적 있는가? 비행기에서 약 50분간 비행기 주차장만 뱅글뱅글 돌며 우롱당하는 기분. 이제 뜨나 저제 뜨나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거의 1시간 후에야 상공에 떴다. 늦게 도착하는 것에 분노를 느끼긴 했지만 비 오는 한국을 떠나 쨍쨍한 대만에 간다는 사실이 기분을 전환해 주었다. 이번 주 내내 <페스트>를 읽다가 재미없다고 생각했는데 비행기에서 읽으니 왠지 집중이 잘되고 흥미로웠다.
집 계약 문제로 처음으로 로밍을 해봤는데, 도착하자마자 잘 터져서 편하긴 했다. 비싸지만 편하니, 역시 돈이 최고다. 짐 찾고 나가서 우선 친구들의 유심을 해결하고 대만 여행지원금 이벤트 존으로 가서 큐알을 찍었다. 작년에 운 좋게 당첨되고 알차게 잘 썼기 때문에 이번에도 당첨되길 바라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큐알을 찍자마자 동전을 터치했다. 그리고 바로 당첨이라는 문구를 보고 또 팔짝 뛰었다. 이번에는 친구들은 당첨되지 못해 아쉬웠지만 나라도 돼서 다행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일단 호텔로 향했다. 체력 낭비는 최대한 줄이기 위해 우버로 택시를 불러 탔는데, 3개의 거대한 캐리어를 보고 기사분이 테트리스를 시작했다. 고생 끝에 3개의 거대 캐리어와 본인의 세차용품까지 잘 때려 넣고 문을 닫았다. 아주 인상적이어서 동영상을 못 찍은 게 후회가 되었다.
보통 호텔을 예약하면 사진보다 살짝 구리기 마련인데, 이번 호텔은 사진보다 좋았다. 세 개의 침대와 거대한 화장실에 크게 감탄하며 빠르게 짐을 내려놓고 뛰쳐나갔다. 배가 고파서 헐레벌떡 택시를 불러 춘수당에 도착했다. 가자마자 우육면 2개, 공부면 2개, 버블티 3개를 시키고 서빙하는 직원만 쳐다보고 있었다. 드디어 나온 음식에 감동하며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먹었을 때 공부면 맛이 잊히지 않아서 그리웠었다. 이번에도 역시 지나치게 맛있었다. 배가 터질 만큼 채우고 나니 이제야 관광을 할 기운이 생겼다. 먹고 나오니 해가 지고 있어서 노을 진 풍경이 아주 예뻤다.
늦게 도착해서 할 수 있는 게 많지가 않았다. 그래도 그냥 보낼 순 없으니 보얼 예술특구에 갔다. 우리나라의 문래동을 연상케 하는 곳이었다. 아기자기한 소품도 구경하고 지나가는 귀여운 강아지들을 보며 힐링했다. 타이베이에는 없던 트램이 지나가고 있어 야자수와 트램 때문에 이국적인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열심히 걷고도 택시로 체력을 아꼈기 때문에 까르푸에 가기로 했다. 쇼핑에 진심이기 때문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따지고 보면 별로 산 게 없지만 구경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남의 나라 마트. 그런데 대만 방문 처음으로 18일의 맥주를 발견했다. 궁금한 마음에 사서 먹기로 했다. 이것저것 구경하고 나와서 편의점에 들러 이것저것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앉아서 야식 타임을 가졌다. 18일의 맥주는 기대 이상의 맛을 가지고 있었다. 한 입 들이키고 집에 사가보자고 결심했다.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를 하며 여행 첫날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