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널 미워해..
사랑의 기술이란 책을 오마주한 제목이 맞다. 사랑의 기술을 읽으면 서문에 에리히 프롬이 이런 말을 한다.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한데 사람들은 그 기술을 위해 시간을 쓰거나 노력하지 않는다고. 사랑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말에 골이 띵하고 울렸었다. 나는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제법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갖는 부분에 있어 꾸준히 성장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미워하는 상대를 만나고 나니 속수무책으로 마음이 무너졌다. 그동안 나는 미워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존재가 나를 이만큼 시험에 들게 한 적은 처음이었다. 매일 느끼는 분노와 그것에 대한 죄책감이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수개월을 보내고 나서 깨달았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기술이 필요하다면 미워하는 것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특히나 나에게는 꼭 필요하다.
사랑의 기술에서는 사랑의 핵심요소 네 가지가 나온다. 나도 내 나름대로 미움의 핵심 기술을 정의해 보았다. 첫 번째는 분노다. 미워하는 상대를 보았을 때 울컥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상대의 목소리만 들어도 반응이 생긴다. 그게 이제 매일 보는 상대라면 매일 분노를 느껴야 한다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내가 아닌 타인에게 하는 얘기만 들어도 화나고, 메시지가 와도 화난다.
두 번째는 스트레스다. 매일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딱히 해소할 곳이 없기 때문에 몸 안에 화가 쌓이면서 스트레스가 진행된다. 스트레스는 만 병의 근원이 되어 내 몸을 망가뜨린다. 그를 만나는 공간에만 들어와도 몸이 반응을 한다. 음식을 먹는 것도 귀찮아지고 위장에 문제가 없어도 아픔이 몰려온다.
세 번째는 자괴감이다. 그를 싫어하는 것에 대한 깊은 자괴감이 든다. 그는 분명 나를 화나게 하는 부분을 많이 갖고 있지만 선한 부분도 있다. 그가 가진 선한 부분이 나를 더욱 몰아붙인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실은 나보다 좋은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기준으로 일도 못하고 감정적이라 어른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타인을 위한 배려를 아예 안 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좋은 점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자괴감은 배가 된다.
네 번째는 모든 인간관계에 대한 경계심이다. 에리히 프롬은 인류애의 시작은 한 사람을 좋아하면서 시작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인류애의 상실을 한 사람을 미워하면서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를 미워하면서 모든 인간관계에 나도 모르게 선을 그어 놓았다. 물론 내 부정적인 감정을 전파하고 싶지 않아서 말을 아끼는 것도 있다. 소중한 사람에게 이런 감정을 말해봐야 불쾌한 감정의 전이 밖에 안 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벽이 세워진다. 기껏 부수고 다져놓았던 관계에 미움이란 감정은 많은 것을 붕괴시켰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기술을 연마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러나 나는 에리히 프롬에 미치는 훌륭한 사람은 아니기에 미움의 기술을 연마하는 방법에 대한 확신은 없다. 그래서 꾸준히 시도하며 나아진 방법 몇 가지를 제시하려고 한다. 첫 번째는 싫어하는 이유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다. 내가 그와 어떠한 관계이며 무슨 상황으로 자주 불편감을 느끼는지를 파악한다. 그리고 그런 부분들을 적거나 되새겨 본다. 그렇게 해보면 내가 어떤 사람을 싫어하는지 파악할 수 있으며 나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미워하는 상대와 마찰이 있는 모든 부분을 인지하고 그 상황을 피하거나, 피할 수 없으면 포기를 하는 방식이다. 그를 아예 안 만나는 것이 나의 정신 건강에 좋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방식이다. 그래서 그와 하는 스몰 토크를 피하고 업무 처리 방식에 있어서는 바꿀 수 없으니 그냥 포기를 하는 방법이 있다. 저 사람은 원래가 야비하고 어리석어 바뀌기 어려운 사람이니 더 똑똑한 내가 그냥 넘어가자는 생각으로 버텨보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잘될 수 없는 방식이긴 하지만 가장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 번째 내 위주로 생각해 보기이다. 미움의 대상이 좋은 사람이든 말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나를 힘들게 하는 그 부분 자체는 절대 좋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가진 죄책감은 의미 없는 부분이며 안 맞는 상대를 미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 또한 당연한 감정이니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자.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 상황을 알리는 방법이다. 나는 부정적인 이 감정을 타인에게 공유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가장 피해왔던 부분이다. 그럼에도 결국엔 이 부분이 가장 큰 효과를 본다. 나의 감정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방법이 아니다. 내가 지금 누군가를 미워하느라 마음이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상황을 알리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나의 마음에는 한결 평화가 찾아온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과의 대화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고 부정적 감정을 상쇄시킬 수도 있다. 그러니 힘들수록 사람을 많이 만나서 인류애 상실을 막아보자.
아직은 미움의 기술에 대해 연마가 더 필요하다. 아직도 그를 마주하는 것은 힘들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의 웃음소리에도 기분이 상하는 나 자신한테 자괴감도 여전하다. 그래도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은 아직 나를 지켜주고 있다. 미움의 가장 큰 기술은 결국 더 큰 사랑으로 이겨내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