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공식

믿지 마세요

by 초이

인간은 뉴턴의 법칙 이래로 A=B 같은 공식을 찾아 헤맨다. 과학적 법칙이어도 변수가 존재하고 수학적으로 완벽히 통제되는 현상은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나도 한없이 어리석은 분석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안 된다는 전통 있는 미신적 사고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불행이 발생하면 그날 모든 일생에 불행이 함께할 것이라는 나만의 법칙까지 아무 다양한 법칙이 존재한다. 이성은 늘 나에게 조언을 한다. “그런 법칙은 없어. 그냥 우연히 그렇게 맞아떨어진 거야.” 하지만 패턴이 세 번 이상 반복되면 나에게 그 패턴은 일종의 공식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것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것들이 많다.



첫 번째 공식: 나랑 이 업무는 상극이야!

첫 회사에서 종편 감독으로 일할 때 그 회사의 업무 중에 쉬워서 막내에게 먼저 작업의 기회가 주어지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도 그 프로그램으로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나랑은 상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한 막내가 맡기 정말 수월한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번 실수를 했다. 심지어 그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업체는 총 세 곳이었는데, 그 구성원들이 다 다르고 성향도 달랐다. 그런데도 유독 그 프로그램에서 실수 발생 빈도가 많아서 주눅이 들었다. 깐깐한 PD가 많았던 팀은 내가 작업하면 대놓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당시에 테이프를 넣어서 자막을 입히는 작업도 나의 업무 중 하나였는데 작업을 해 둔 테이프를 밀어버린 적도 있다.(테이프 실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한 번 그 법칙이 성립되어 버리니 트라우마처럼 그 업무가 두려웠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법칙인데 이미 상극 필터가 끼워져 버리니 매번 긴장을 했다. 그보다 훨씬 난도 높은 프로그램을 편집할 때는 실수도 안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의 것들도 눈치코치로 해냈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 믿음직한 공식이지 않나. 그 여파로 꽤나 업무에 익숙해져서 후배를 가르치게 됐을 때에도 저 프로그램에 대한 호감도는 높아질 수 없었다.


두 번째 공식: 특정 이모티콘(뭔지는 비밀)을 쓰는 남자와 나는 상극이야!

꽤 오래전에 특정 이모티콘이 유행을 하면서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지금도 그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의 절친인 여자 사람 친구도 업무를 할 때는 종종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 이모티콘을 쓰는 여자들과는 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해당 이모티콘을 쓰는 남자들이다. 이 편견은 꽤나 오랫동안 부정해 왔기 때문에 그 이모티콘을 쓴다고 처음부터 그 사람이 싫지는 않다. 하지만 추후 나의 분노를 일으켰던 남자들을 되짚어보면 꼭 이 특정 이모티콘을 빈번하게 사용하곤 했다. 이 공식은 왜 발생하는 건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다만 이 공식을 믿는 사람은 나뿐만 아니라 주위에 꽤 많은 친구들이 이 공식을 신봉하고 있다. 약 98%의 적중률을 자랑하고 있지만 내 이성과 논리로는 이해하기 힘든 공식이라 그 이모티콘을 쓴다고 해서 그 사람을 미워할 생각은 없다. 다만 추후 또 이 공식이 맞아떨어진다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세 번째 공식: 직장생활을 나와 맞지 않아! 법칙

2013년부터 2026년까지 약 12년 간 회사를 다니면서 남들보다 약 2~3배가량 이직을 많이 했다. 그중에는 좋아서 꽤 오래 다닌 회사도 있으며 1개월도 채 안 다니고 “런”했던 회사도 있다. 취미가 다양해짐에 따라 힘들고 돈 많이 벌 수 있는 회사로 이직은 꺼리게 됐다. 그래서 적당한 타협선을 찾아서 이직한 벌을 받게 된 걸까? 돈보다 워라밸을 좇아 이직한 회사의 조직 문화는 역류성 식도염을 반려 질병으로 데리고 다니게 만들었다. 그 회사들과 안 맞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할 일도 없는데 눈치 좀 보면서 야근을 강요하는 분위기, 멍청한 상사, 나쁜 상사, 이상하게 나에게 열등감을 가졌던 상사, 모집 공고 사기는 물론이고 영상 업무를 신설한 회사에서 체계를 만들려고 하니 그걸 싫어하는 상사도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나랑 안 맞는 사람이 많다니.. 처음에는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나랑 지지리도 안 맞았던 상사들은 공통적으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은 참 잘하세요..” 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나를 불편해했고, 나는 그런 직장에서 점점 의욕을 상실해 갔다. 일을 열심히 하고 싶게 만들지 않는 회사에 더 다닐 이유가 있을까. 매번 열심히 일하고자 했던 나의 의지를 꺾어가며 새겨진 공식은 내가 직장 내 조직문화와는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효율적으로 업무를 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리하다 보니 내가 발견한 법칙들은 죄다 편견일 뿐 근거가 없다. 이렇게 적어놓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말도 안 되는 헛소리 대잔치지만, 놀랍게도 내 삶을 흔들어 놓는 법칙이기도 하다. 그다지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많은 공식들이 탄생하는지 알 수 없다. 내가 만든 공식이지만 언젠가는 이 공식들이 내 세상에서 전부 깨지길 바란다. 내가 세운 편견 공식은 오늘도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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