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의 기술. AS 편

thanks to 미운 그대

by 초이

브런치에는 <미움의 기술>이라는 글이 있다. 맞다. 내가 쓴 글이다. 그때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게 너무 버거워서 그 글을 써재꼈다. 그러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을 미워하고 있다. 기회만 되면 그 사람이 밉다는 얘기를 여기저기 말하면서 그 미움을 털어내며 살고 있다.


미워하는 것이 왜 힘든가 하면 사람은 입체적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나쁜 모습이 있지만 좋은 모습도 있다. 좋은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미워서 내뱉은 말들이 나에게 돌아와 꽂힌다. 그리고 형용할 수 없는 죄책감에 휩싸인다. 저 사람도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인데 그냥 나랑 안 맞는 건데 하면서 그에게 가진 부정적 감정들이 나를 꾸짖는다. 그렇게 다시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역시나 나는 그 사람이 밉다. 이 미움의 굴레는 매일매일 내 마음에서 구르고 구르고 또 구른다.


그를 미워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이제 그가 미운 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결론을 지었다. 그리고 미워하는 방식을 나름대로 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상태가 매우 좋아졌으므로 <미움의 기술>을 AS 해보기로 했다.


첫 번째 기술. 당당하게 미워하기

이제는 그를 미워하고 있음을 당당하게 고백한다. 나는 제법 타당한 이유로 그를 싫어하고 있음을 밝힌다. 그는 융통성이 없고 리더십이 없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그는 이 회사에서 약 9년째 리더를 맡고 있으면서도 리더로서의 역량이 없다. 그런 그를 리더로 두고 있는 나와 우리 팀원들이 매번 너무 불쌍하기 때문에 나는 그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기술. 그의 기분 따위 생각하지 않기

그도 내 기분을 딱히 존중해 주지 않는데 나라고 꼭 인간의 도리를 다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티 나게 무시하거나 분위기를 망쳐서 제3자까지 힘들게 하지는 않는다. 사실 말 안 하면 아무도 내가 그를 싫어하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그가 힘들거나 슬프거나 기쁘거나 정말 단 1%의 관심이 없다. 그를 힘들게 미워할 때는 솔직히 웃음소리까지도 기분 나빴었는데 이제는 그냥 웃음소리조차 안 들린다. 관심을 끄고 나니 그에 대한 자잘한 혐오가 사라졌다.


세 번째 기술. 그가 가진 싫은 부분을 나에게서 제거하기

누군가를 미워하다 보면 그가 뭐 때문에 미운지 점점 항목들이 뚜렷해진다. 그것들을 인지하고 나면 나에게서 그런 모습이 있는지 계속해서 점검한다. 내가 싫어하는 그는 누구보다 비효율적이고 책임감이 없다. 나는 내 행동에서 비효율적인 모습이 있는지 점검하고 책임감 없이 행동하지는 않았는지 점검한다. 그가 남 탓을 할 때 나는 내 탓을 하고, 그가 일을 떠넘길 때 나는 내 일을 스스로 완수한다. 그렇게 나와 그를 점점 더 동떨어진 사람으로 만들면서 나는 저 인간과 내가 같지 않음을 보며 위안을 받는다. 적어도 난 저런 최악의 인간은 아니다. 저런 모습들은 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면 스스로가 가치 있게 느껴진다. 타산지석을 삼아 나를 단련하면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이런 미움의 방식은 그 누구를 괴롭히지도 않고 나를 괴롭히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를 미워하느라 감정을 낭비하는 시간도 점점 줄어든다. 어떤 날은 그에게 고맙기도 하다. 적어도 나에게 그 사람 같은 모습을 남아있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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