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의 세계
나의 꼬마 유년시절은 '바둑'이 단어 하나로도 거의 모든 것들이 표현 가능하다.
초등학교 입학 후, 8살이 막 되고부터 10살까지 약 3년간은 학교를 등교한 것 외에는 바둑에 빠져서 다른 것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권유로 7살 말에 바둑학원에 처음 발을 내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그것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네모난 바둑판 안에서 승부를 내는 것이 즐거웠고 친구들과 함께 바둑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나는 학원 입학 후 3개월 만에 학원에 있는 모든 친구들 형들을 이겼고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직후 그 학원을 떠나 학교 정식 바둑부에 들어갔다.
1학년이 된 후 난 더욱 바빠졌다. 나의 고향 경북 지역에서 개최되는 초등부 및 최강부 바둑 대회는 모두 참가하기 시작했고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나는 모든 대회에서 참가만 하면 압도적으로 우승을 차지했고 결국에는 당시 경상도 최고 권위의 대회인 하찬석배 바둑 대회 최강부에서 9살의 나이로 모든 초등부 형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에는 많은 프로 바둑기사 스카우터들이 와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너 바둑 한번 제대로 해보지 않을래?" 그 당시 나는 부모님과 함께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고 기분이 너무 좋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대로 Yes를 외쳤다. 그렇게 나의 본격적인 프로 바둑기사 준비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9살의 나이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도장에서 합숙 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유망주로서 사실상 가장 어린 나이로 프로기사 선수 준비반에 합류했다. 나보다 어린 학생은 8살짜리 꼬마 한 명뿐 나는 전국에서 온 수많은 바둑 영재 형들과 함께 경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최고인 줄 알았다. 경상도 지역에서 모든 대회를 휩쓸고 나이 불문하고 나의 적수가 없었으므로 서울에서도 내가 최고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하고 만 큰 착각과 자만은 나를 크게 흔들리게 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유명한 도장에서 나는 인생 최대의 패배를 수십 번 겪었고 결국 난 그저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었어라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
허무하지만 나의 바둑 인생은 그렇게 끝이 났다. 초등학교 3학년 말에 나는 도장을 퇴원했고 평범한 학생 신분으로 내 고향인 경주로 돌아왔다. 물론 바둑을 하면서도 틈틈이 영어 수학 등 기본적인 공부는 하고 있었던 터라 학교로 돌아와서도 학급 반장도 하며 학업이 우수한 학생이었으나 바둑을 포기했다는 사실은 그 어린 나이에 나 자신을 스스로 '실패자'라고 칭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내 인생의 첫 도전과 승부에 '패배' 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