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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사춘기

by 재효Matthew

중2로 올라가던 해 나는 내 고향인 경주에서 포항으로 이사를 왔다. 경주에서 중1 때까지 나는 꽤나 유명세를 떨쳤다. 초등학교 시절 바둑 대회에서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중간에 뉴질랜드 유학을 갔다 오는가 하면 학급 반장을 꾸준히 했으며 중학교에 들어서는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으로 선생님들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물론 나의 노력 및 능력, 그리고 부모님의 지원 덕분에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성과를 내고 주변 친했던 친구들을 떠나보내려 하니 뭔가 섭섭하고 슬펐다. 포항이라는 도시가 경주와 그렇게 먼 곳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새로운 땅을 밟는다는 설렘과 함께 불안감도 느꼈다.


포항으로 이사 가자마자 중학교 2학년으로 동네 주변 학교에 입학을 했다. 내가 교내에서 아는 친구는 딱 1명뿐이었다. 그마저 학원에서 만난 가까운 지인 정도의 친구였다. 모든 사람들은 새로웠고 내가 경주에 살았던 시절과는 달리 나를 알아보는 학생들 혹은 선생님들도 없었다. 나는 그냥 타 도시에서 넘어온 전학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전학 후 초반 한 달간은 정말 반 누구와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한테 먼저 말을 거는 학생들도 없었고 나도 말을 누구에게 말을 걸기가 너무나 어색하고 긴장되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어느 곳에 있든 자신감이 넘치던 나였고 주변에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새로운 도시 포항으로 전학을 간 이후로 나는 매우 조용한 모범생이 되어 있었다.


한 달 후 나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나를 반 친구들 및 담임 선생님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 내 담임 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이셨다. 어떤 주제에 대해 발표를 할 기회가 생겼다. 나는 손을 들고 자신 있게 내 의견을 발표하고 싶었지만 여전히 쑥스럽고 어색했다. 그때, 담임선생님은 내 번호와 이름을 외치며 발표를 해 보아라고 시켰고 나는 유창하고 논리적이고 자신감 있게 해당 주제에 대해 발표를 했다. 급우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을 정확히 기억하는데 몇몇 친구들은 나를 빤히 쳐다보기까지 했다. 쟤 누구야? 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 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마음이 편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당시 학급 반장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고 순식간에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평소에 갈고닦았던 내 발표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3학년을 포항에서 보냈다. 솔직히 내가 2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유년 시절부터 중1 때까지는 정말 성과도 많이 내고 뜻깊은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중2~3 때는 도대체가 무엇을 이루고 배웠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문제는 중2 2학기부터 발생했다. 나는 여전히 학업 성적이 우수하며 교우 관계도 원만한 우등생의 삶의 살고 있었다. 중2 1학기가 끝날 무렵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어 그리고 체육 과목에서 1등급을 맞아 과목 상까지 받았었다. 중2 여름방학이 끝난 후 2학기가 시작되면서 나는 내 삶에 대해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그냥 생각 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경쟁에서 이기고 부모님 및 선생님들께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노력했다. 하지만 중2 2학기를 맞아 과연 그렇게 사는 삶이 현명할까라는 것에 대해 혼자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내가 타인들을 위해 삶을 살아온 느낌도 들어서 나 자신이 불쌍해지기까지 했다.


중학교 2학년 2학기부터 많은 내적 갈등들이 생겼다. 원래 습관대로라면 항상 부모님 및 선생님들께 잘 보이려고 애쓰고 학업 성적을 잘 받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교우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들이 정상이었지만 더 이상 그런 남들에게 보여주는 행동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했다. 몸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왜 공부를 해야 되는지 본질적인 목표 및 이유를 몰랐다. 그냥 기계 같은 삶이었다. 불안과 우울이 찾아왔다. 한때는 정말 아무하고도 심지어 친구들과도 이야기가 하기 싫어졌다. 중학교 3학년 1년 동안은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공부만 했다. 영어를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으니 영어 공부를 특히 열심히 하고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체육 활동을 열정적이게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중1~2 때 최상위권을 유지하던 내 성적은 중3 때는 꽤 떨어지고야 말았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매우 허탈하고 우울했다. 초등학교 시절과는 달리 아무런 성과 및 배움이 없었던 것 같다. 학업 성적도 중3 때는 많이 떨어져서 결과적으로 뭔가 실패한 느낌이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영어 및 체육 교과에서는 항상 1등급을 맞아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솔직히 타 과목들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몰라서 대충 했다. 나의 기계 같은 삶이 중3을 기준으로 끝나버렸다. 중3이 되는 순간 더 이상 나는 남들을 위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냥 내 몸이 그것을 자동으로 거부했다. 결과적으로는 최종 학업 성적이 떨어졌으므로 실패였다. 그 당시 학업 성적 외에는 학생들이 평가받을 만한 요소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다섯 번째 도전 '사춘기 시절'에서 '패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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