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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뉴질랜드 유학

by 재효Matthew

나는 초등학교 5학년 12살의 나이로 부모님 곁을 떠나 뉴질랜드라는 우리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고모네 가족과 함께 생활했고 내 옆을 항상 지켰던 부모님이 없었으므로 많은 일들을 스스로 처리해야만 했다. 물론 영어공부가 유학의 주목적이었으나 영어 말고도 참 많은 것들을 배우고 깨우칠 수 있었던 기회였다. 학교에서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친구들 및 선생님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경우 어떤 식으로 대처할지, 뉴질랜드라는 나라의 특별한 문화, 혼자서 살아남는 방법, 영어 회화 실력을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뉴질랜드 유학은 나에게 도움을 주고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뉴질랜드라는 낯선 나라에 처음 발을 들인 후, 처음으로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은 자연환경의 아름다움이었다. 12살의 어린 나이에 넓은 푸른 잔디가 깔린 곳에서 골프를 배우고 즐겁게 뛰어놀고 축구,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겼던 경험은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인생 자산으로 다가왔다. 또한,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소통하고 함께 했던 경험은 나로 하여금 인생에서 넓은 시야와 독립성을 가질 수 있게 하였다. 또한, 너무 감사하게도 부모님께서 탄탄한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셔서 좋은 사립학교에서 ESL 영어 수업까지 개인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고 나의 영어 실력은 사실상 제로 베이스에서 뉴질랜드 현지인들과 어느 정도 대화가 되는 수준까지 올라와 있었다.




물론 힘든 부분도 있었다.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말이 통하지 않아서 3~4개월 정도는 사실상 그냥 혼자 지냈다. 책상에 앉아서 열심히 공부하고 선생님 말씀을 듣고 그게 다였다. 외로움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 및 친구들이 그리웠다. 하지만 외로움을 느낄수록 나는 강해졌다. 내가 이곳으로 온 주목적, 영어공부를 절대 잊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영어로 말 한마디 해보려고 했고 수업 때는 다른 현지 학생들보다 2~3배 더 노력하여 수업을 듣고 공부를 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는 한국인들이 거의 없어서 의지할 곳이 딱히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더 좋은 환경이었던 것 같다. 영어실력뿐만 아니라 나는 독립심도 기르고 있었다.




10개월 뉴질랜드 유학 생활, 내 10대의 아주 일부분이지만 배우고 깨닫고 느끼고 얻었던 점들이 너무 많다. 일단 영어 실력이 많이 발전되어 지금 내가 영어강사로 활발히 잘 일하게 된 발판이 되었다. 또 하나의 큰 수확은 독립심을 길렀다는 것이다. 뉴질랜드 유학 생활 전, 사실 나는 부모님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10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이후 한국에 들어와서는 나만의 자아와 삶의 목표가 설정되고 있었다. 13세의 나이에 너무나도 큰 수확이었다. 마지막으로, 원어민들과의 소통에 두려움이 없어졌다. 유학 전에는 영어 실력과 무관하게 외국인들만 보면 그냥 위축이 되고 어쩔 줄 몰라했다. 하지만 지금은 출중한 영어 실력뿐만 아니라 외국인들과의 대화 자체가 그냥 자연스럽고 한국인들과 이야기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영어공부를 하는 방법, 외국인들과 소통하기, 외로움을 이겨내기, 독립심 기르기, 해외에서 혼자 살아남기 등을 통해 나는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특히, 지금 내가 유창한 영어 회화 실력을 갖출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가 아닐까 싶다. 나는 프로 바둑기사 도전 이후, 뉴질랜드 유학이라는 두 번째 도전에서 '승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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