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와 손절할 용기
미래에 찾아올 불행들과 그것들을 처리하는데 필요한 돈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 보았다면 아마 마음속 어딘가에 두렵다는 감정이 자리 잡게 될 겁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것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 막막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겠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뭔가 달라져야만 합니다. 달라지지 않으면 그 불행이 언젠가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까요.
우리는 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해결이라는 단어는 곧 충분한 돈을 말하는 것이 되겠죠. 지금 막막한 이유는 그 돈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고 답답한 이유는 어떻게 그 돈을 충분하게 만들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 단계에서 일확천금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습니다. 로또를 구매하거나 주식 추천을 받고 큰돈을 들여 생각해 본 적도 없던 사업을 무작정 시작하는 등 평소의 자기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결정을 무엇인가에 쫓겨하게 되는 것이죠.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런 결정들은 우리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게 됩니다. 답답하고 걱정되고 막막하겠지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충분한 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는 다르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거의 나와 다르게 행동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그 누구에게나 가장 먼저 가계부를 써보라고 말합니다. 그냥 쓰는 것이 아니라 아주 공격적으로 치열하게 작성해 보라고 말합니다. 아껴야 한다는 생각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우선 평소의 자신이 쓰던 소비 습관 그대로 살아가되 매일매일 가계부를 작성하는 것만큼은 멈추지 말라고 말합니다. 의아할 수도 있고 고작 가계부를 쓰라는 말이냐며 실망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생각보다 가계부 작성이라는 것은 소비 습관 교정보다 더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계부를 작성해 보기 전까지 우리는 모두 본인이 낭비를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이미 충분히 적당한 수준으로 소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왜냐면 만족스럽지 않았던 소비라는 것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조금이라도 만족스러움을 느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꼭 필요하다고 인식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억지로 억지로 싫은데 돈을 썼다는 생각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먹어도 우리는 그것을 만족스러운 소비 혹은 충분히 감당 가능한 소비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충분히 버릴 수 있는 소비라는 개념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아요. 그래서 쇼핑이든 식사든 문화생활이든 그 금액이 크든 적든 뭔가를 줄이겠다고 마음먹는 일이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 아닐까요?
혹시 일 년에 100만 원이라도 저축하고 싶다면 한 달에 9만 원을 아끼라는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모으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취해야 할 행동은 바로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고작 9만 원도 아낄 수 없는 사람이라면 누군가 매월 10만 원을 공짜로 준다 한들 그 돈 또한 어디엔가 써버릴 것이라는 말이죠. 소비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며 가계부를 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돈을 모으기 위해 내가 포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다짐하는 것,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기에는 돈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 과거의 나를 스스로 끊어내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가계부 작성의 진짜 목적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아래와 같은 순서로 가계부를 작성해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처음부터 무리할 필요는 없어요. 겁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가계부를 작성하고 돈을 모으는 과정을 거치며 조금씩 본인만의 재미를 찾으면 나머지는 알아서 해결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현재 목적이 과거의 본인을 명확하게 알아본다는 것에 있음을 잊지 마세요.
우선 모든 소비를 합쳐서 적기보다 숨만 쉬어도 나가고 있는 고정 지출을 따로 분리해 보세요. 월세나 관리비, 통신비, 회비, 구독료, 보험, 헬스장 등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굳이 지금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우선 가벼운 마음으로 다 적어보세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비비 혹은 적립식 금액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일정 기간마다 지출되거나 모았다가 한 번에 나가야 하는 상황들을 꼭 미리 체크하고 고정비 항목으로 대비해 두시기를 권장드립니다.
고정비를 다 적었다면 다음은 우리가 유동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소비처를 카테고리 별로 정리하고 예산을 나눠 볼 차례입니다. 이 또한 당장 예산을 줄이려고 노력하기보다 현재 어디에 얼마나 쓰고 있는지 명확히 체크해 보는 용도로 시작하시길 추천드립니다. 월마다 조금씩 드는 비용이 다르다면 가능한 큰 금액으로 적어두세요. 그래야 우리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다 정리가 끝났다면 이제 여러분이 현재 저축하고 있는 통장들을 한 곳에 모아 보세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현재 모으고 있는 금액과 1년 간 모았을 때 얼마를 모을 수 있는지 합계를 계산해 보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 여러분이 가지게 될 밸류를 파악할 수 있게 되니 개별 금액보다 일 년간 모으게 될 금액을 더 중요하게 바라보는 습관을 만드시길 추천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자신을 스스로 정리해 보세요. 뱅크샐러드나 토스 등 수많은 금융앱을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지만, 본인 스스로 자산을 들여다보고 손수 적어보았을 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달이든 두 달이든 본인이 소비한 항목들을 잘 정리해 두었다면, 여러분은 이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소비 습관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용기를 낼 시간입니다. 고정비와 생활비에서 지출되고 있는 비용 중 포기해야 할 것들을 정리해 보세요. 포기할 수 있는 비용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포기해야 할 비용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전시회를 매주 갔다면 월에 2회로 줄여보고 외식을 10번 했다면 5번으로 줄여보는 식으로 그 비중을 축소시키고자 노력해 보세요. 그러면 여러분에겐 그만큼 남는 돈이 생기게 될 겁니다. 이제 그 남는 돈을 적금 통장 항목에 합쳐보세요. 그럼 일 년 간 여러분이 모을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실 수 있게 될 겁니다.
가계부를 적는다는 것은 본인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돌아본다는 것에 있고 고통을 감내할 용기를 가진다는 것은 언제가 반드시 찾아올 불행에 대비하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보험처럼요. 10만 원을 아끼면 매년 120만 원을 더 모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순간 여러분은 분명히 더 욕심을 내게 될 것입니다. 이것도 포기할 수 있고 저것도 포기할 수 있고 조금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실 거예요. 이 확신만 얻게 된다면 전시회를 월에 1회로 외식을 2번으로 줄이는 일은 본인이 알아서 챙기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치고 부자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많이 없다고들 합니다. 그 결과만 볼뿐이지 그 과정은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는 말이죠. 압구정에 사는 진짜 부자들은 본인의 집에 무엇이 있고 그것이 얼마나 남았는지 언제 사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고 합니다. 본인의 소비 패턴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가계부를 쓰고 소비 패턴을 파악하여 그것을 개선하고 있다는 말은 여러분이 부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통장 관리도 중요하고 투자도 중요하고 월급의 상승 등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시작은 언제나 본인을 파악하고 통제하는 것부터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