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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드센 날에

제기차기

by 시인의 정원

오징어 게임 덕분에 한국 놀이가 인기라고 한다. 한류의 영향이 해외에서 지속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까지 관심을 받고 있다. 고무적인 일이다.


실내 운동으로 제기를 꺼내 들었다. 운동이 될까? "하나, 둘, 셋, 넷" 툭. 운동화를 신었건만 다섯 개 전, 후에서 제기를 바닥에 떨군다. 숨도 급히 차오른다.


어릴 적 명절풍속을 기억한다. 동네 형들이 습자지라고 하는 얇은 종이와 동그란 쇠로 제기를 만들었다. 조금 무겁게 만들어야 잘 차진다고 했다. 톡톡톡 수십 개는 가볍게 차는 걸 보았다. 신기했다. 형들 놀이에 낄 나이가 아니었다(네 살이나 다섯 살쯤이었다). 부러운 눈으로 지켜보기만 하던 내게 한 형이 제기를 건네주었다. 너도 차 볼래? 뛸 듯이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들었다. 형들이 차던 것을 생각하며 차보니 한 개 차고 떨어졌다. 몇 번을 차도 겨우 두 개를 넘기지 못하고 팔다리를 요란하게 휘저었다. 지켜보던 형들은 웃음보를 터뜨렸다. 잘 차는 형이 다시 시범을 보여주며 가볍고 안정된 자세로 찼다. 다시 보던 대로 차려핬으나 역시 마찬가였다. 보는 것과 하는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근육과 신경 발달이 덜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초등학교에 가서도 중학교에 가서도 자주는 안 했지만 어쩌다 제기를 차면 다섯 개를 넘기기 어려웠다. 오징어가이상(오징어게임을 그렇게 불렀다)처럼 힘쓰는 것은 자신 있었는데 발을 쓰는 건 소질이 없었다. 키와 반비례하는 큰 발을 들어서 차는 게 불리했을 수도 있다는 변명을 스스로에게 했다. 아직 50대인 나는 우연히 영상으로 특전사 출신의 젊은 남자가 5,000개를 찬다고 하며, 걷는 것처럼 쉽게 500개를 차는 것을 보았다. 그도 처음부터 그만큼 잘 차지는 못했을 것이다. 장식장 구석에 앉아 먼지를 차곡차곡 적립하고 있는 제기를 꺼내 들었다. 세 개에서 시작해 며칠 만에 10개를 넘겼다. 양발차기도 첫날 네 개의 기록에서 삼일 만에 열네 개를 찼다. 가쁘던 숨도 많이 편해졌다. 100개까지 가능할까? 일단 도전해 보기로 한다.


몇 개씩 늘려가는 성취의 기쁨이 좋다. 작은 것부터 해보자. 재밌게 간단히 할 수 있고, 혼자 할 수 있고, 운동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밖은 눈보라가 넘실거리고, 실내에선 제기가 통통거리며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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