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일본은 굉장히 추운 국가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일본에는 북해도(훗카이도)에는 에조불곰들이 서식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불곰의 아종으로, 일본 육상 포유류 중 가장 크며 성체 수컷은 몸무게 150~400kg에 달한다. 이 곰들은 북반구(동북아시아)의 추운 지역에 적응한 종이다. 또, 일본 본토(혼슈, 시코쿠)에도 일본반달가슴곰들이 서식하고 있는데 이들의 특징으로는 가슴에 흰 초승달 무늬가 특징이며, 불곰보다 작다(60~120kg).
그런데 러시아와 일본의 곰들은 미국의 곰들보다 훨씬 강력하다. 그 이유는 미국은 곰들이 천적이 없기에 상대적으로 온순한 반면에.. 러시아와 일본의 곰들은 시베리아 호랑이와 싸우던 종들이기 때문에 그 특유의 호전성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곰들이나 맹수들이 죄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걸 보면 그 강력한 호전성이 일본의 곰들에게 내재되어 있다.
곰은 추운 겨울에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해 동면을 하기에 따라서 혹한기에는 오히려 활동이 멈춥니다. 곰이 민가로 내려오거나 공격적으로 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추위"가 아니라 "가을철 도토리(먹이) 흉작"이다. 냉해로 인해 도토리가 열리지 않으면 동면 준비를 위한 지방을 축적하지 못해 민가로 내려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최근 연구에 따르면, 오히려 따뜻한 겨울(난동)이 곰들의 동면을 방해하여, 자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못 자는 곰"을 만들어내어 인간과의 조우를 늘리고 있다.
북해도의 불곰 역사는 일본 열도의 북유럽 백인종의 외형을 가진 아이누족(그렇다고 아이누족이 북유럽 백인종이란 소리는 아니다.)의 늑대와 함께 숭배 대상에서, 근대 개척기의 "구제 대상"으로까지의 변천사가 있다.
일본의 아이누족은 튀르크족이나 고조선처럼 늑대를 신으로 찬양했다. 물론 곰들도 마찬가지다. 키문카무이(Kim-un-kamuy)는 아이누어로 "산의 신"을 의미하며 늑대나 불곰을 지칭한다. 늑대와 곰은 신의 나라에서 인간계로 놀러 온 손님으로 여겨졌다.
일본 본토의 곰은 북해도보다 작지만, 산악 신앙 및 무사(사무라이 군인)들의 훈련 대상으로서 깊은 역사를 가진다.
중세 시대인 가마쿠라 군부 시대, 군인들은 전투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대규모 사냥 대회인 "마키가리"를 열었다.
1193년 아즈마 카가미(吾妻鏡) 기록에 따르면, 가마쿠라 막부의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후지산 기슭에서 대규모 군인 훈련 겸 사냥을 주최했다. 주로 사슴과 멧돼지들을 잡았으나, 곰을 잡는 것은 무사의 용맹함을 증명하는 최고의 영광이었다.
헤이안 시대 전설적인 무사 미나모토노 요리미츠의 가신인 사카타노 킨토키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는 산속에서 자라며 늑대나 곰과 전쟁을 하여 이겼다는 전설이 있다. 이는 당시 곰이 "힘의 상징"이었으며, 이를 제압하는 것이 영웅의 조건이었음을 보여준다.
"마타기"란 것도 있는데 일본 도호쿠 지역(아키타, 아오모리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군사적인 전문 사냥 조직이었다. 이들은 단순한 사냥꾼이 아니라 산신 신앙을 가진 집단이었다. 사냥 방식은 말을 타고 긴 장창과 구식 총을 사용하여 집단으로 곰을 몰아 사냥한다.
이런 호전적인 사냥 문화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가토 기요마사 장군 등)은 한반도에서 일본 본토에는 없는 "호랑이"와 조우하고 이를 사냥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동시에 한반도의 곰과도 마주쳤다.
가토 기요마사 장군은 조선에서 호랑이를 창으로 찔러 잡았다는 전설(호랑이 퇴치)로 유명하다. 하지만 당시 기록을 보면 호랑이뿐만 아니라 표범, 곰 가죽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진상되었던 것을 보면 이 당시 일본군들이 수많은 한반도 맹수들을 사냥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일본군에게 맹수 사냥은 점령지(한반도)의 위협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자 무공을 과시하여 본국에 보고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게다가 이러한 곰 가죽들은 장군들의 갑옷 장식, 말안장 덮개, 또는 창의 칼집 장식으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