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원주민 사회들 가운데 유일하게 과거에도 "옷"을 입었던 원주민 사회가 있었습니다. 바로 "대만 섬의 원주민들(Formosan indigenous peoples)"입니다.
오스트로네시아어족(남섬어족)의 뿌리인 대만 섬 원주민들은 과거부터 알몸이 아니었으며 "옷"이라는 개념과 제작 기술을 명확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만 원주민은 라틴 아메리카의 아마존이나 필리핀이나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아 원주민들과 달리, 직물(Textile)을 짜서 옷을 만들어 입는 매우 발달된 직조(Weaving)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남녀 모두 신체를 가리는 의복을 착용했습니다. 심지어 "가슴"을 노출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요? 보통 원주민 사회는 아무리 옷을 잘 입어도 여자들은 가슴을 노출했습니다. 필리핀 원주민만 해도 대부분 남녀들이 알몸으로 생활했으며 그나마 옷을 입고 살았어도 가슴을 노출하는 게 필리핀 원주민 사회였어요.
이는 바로 아주 오래 전부터 "문명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대만 원주민들은 "저마(苧麻, Ramie)"라는 식물 섬유를 재배하고 실을 뽑아 옷감을 짰습니다. 이들은 "수평 등 띠 베틀(Horizontal back-strap loom)"이라는 직조 기계를 사용해 정교한 직물을 생산했습니다. 산간 지역 고산 원주민(부농, 쯔우 등)은 사슴이나 멧돼지 가죽을 무두질하여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기도 했습니다.
대만 원주민은 남자는 일반적으로 상체에는 소매가 없거나 짧은 조끼 형태의 상의(Mandal)를 입었고 하체에는 훈도시 형태의 가리개나 가림천(Loincloth)이나 짧은 치마 형태의 하의를 착용했습니다. 이는 속옷이 아니라 일반적인 옷이었습니다. 이 훈도시 형태의 옷은 활동하기 편했기에 사냥이나 전쟁 시에 주로 착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상체는 튜닉 형태의 긴 옷이나 가슴을 가리는 덮개(Breast cloth)를 착용했고 하체에는 랩 스커트(Wrap skirt) 형태의 치마를 둘렀습니다. 특히 아타얄(Atayal)족이나 파이완(Paiwan)족 등은 화려한 패턴과 자수, 구슬 장식이 들어간 예복을 입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대만 섬 원주민은 여성의 경우 가슴을 노출하는 토플리스 패션이 일반적이지 않았으며, 직물로 상반신을 가렸습니다. 남성의 경우 노동 시 상반신을 노출하기도 했으나, 기본적으로 "상의"라는 의복 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세계사의 기록에서도 본다면 고대 중국의 역사서 "수서(隋書) (636년 편찬) 권81 유구국전"에는 대만 원주민에 대해 "남녀 모두 흰 저마(모시)로 머리를 묶고... 가죽이나 색이 들어간 저마 천으로 옷을 해 입는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대만 원주민들은 모시(Ramie)와 삼(Hemp)을 재배하고 실을 뽑아, 등 쪽에 끈을 묶어 고정하는 '수평 등 직기(Horizontal Backstrap Loom)'를 사용하여 정교한 직물을 짰습니다. 이는 고고학적 발굴과 민족지학적 기록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이는 앞서 말했듯 고대 중국 진나라와 한나라, 중세의 송나라, 근세의 명나라, 중동의 아랍 제국들과 인도의 제국, 오스만 제국 같은 당시의 세계 패권국들이 무역을 하면서 대만에 일찍이 영향력을 행사했기에 그 영향을 가장 먼저 받은 대만은 "옷"을 입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고대 중국 진나라와 한나라가 대만 섬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전에는 대만 섬 원주민들도 "옷"을 입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나, 고대 중국 진나라와 한나라가 대만 섬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고대 중국 한나라의 엄격하면서 성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유교적 금욕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대만 섬 원주민들도 "옷"을 입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