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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길 Feb 16. 2023

숨소리

삶과 죽음의 경계는 숨이다. 숨을 쉰다는 것은 대사가 일어나고 있고 그 결과로써 에너지를 얻으며 움직이는 원천이 된다. 그리고 이 상황을 되풀이하기 위하여 숨을 쉬고 또 그 상태를 자연스럽게 연장시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생물이라고 말한다. 반대의 말로 무생물이란 생명이 없는 것이며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 생명은 이를 바탕으로 생명의 유지의 원료로 사용한다.     


동물은 태어나자말자 가장 중요한 일이 숨을 쉬는 일이다. 숨을 쉬면 숨소리가 난다. 이 숨소리는 탄생을 의미하며, 또한 평회를 의미한다. 아가의 코에 귀를 대어보면  그자체가 평화롭고 자유로우며 살며시 다가오는 사랑의 소리이다. 이 사랑스런 모습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무생물일 것이다. 이렇게 숨소리는 사랑을 실어 나르는 반달을 닮은 조각배이다.

어미소가 송아지의 얼굴을 햝고, 큰 눈을 지그시 감으며 사랑을 쏟을 때도 고운 숨소리를 속 깊이 빨아들이는 소리를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새하얀 박이 달빛을 받아 빛나는 밤엔 아가의 숨소리는 온 세상을 포근한 구름 이불을 덮게한다. 숨은 개체의 성장에 따라 그 소리도 효능도 달라진다는 것을 안다. 또한, 상태에 따라서 숨소리도 달라진다는 것도 안다. 심장이 쿵쾅 거릴 때의 숨소리도, 슬픔에 젖은 숨소리도, 웃으며 나는 숨소리도 그렇게 정다울 수가 없다. 숨이 멎는다는 것은 심장이 멎는 소리이고 이세상의 불리 꺼지는 소리이다. 그래서, 숨소리는 세상을 구한다. 숨소리 없는 세상을 단 1초라도 생각해 보라, 얼마나 갑갑하고 답답하고 멍이 들겠는가.     


그래서 살아 있다면, 살려면, 억지라도 숨을 쉬어야 한다. 절망의 상태에서도, 땅이 꺼지는 상황에서도, 내가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 나 자신을 죽이고 싶을 때도 숨을 쉬어야 하며 숨소리를 들어야 살 수 있다. 사랑에 실패했다고, 전 재산을 잃었다 해도,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마지막 나의 옆 사람이 떠나가도 숨을 쉬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생물이 아닌 무생물로 세상에 남겨진다고 생각해보면 그 얼마나 무서운 일이 되겠는가. 이는 죽음 뒤에 나타나는 일이라 알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슬픈 일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숨을 쉬고 있는 데에도 너무도 조용히 숨을 쉬어 그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도 있다. 더 가까이 귀를 귀 기울이면, 뭔가 기쁜 웅성거림을 들을 수 있다. 지금쯤 눈을 떠도 될까, 아니면 좀 더 있다가 얼굴을 내밀까하는 땅속의 속삭임이다. 양지 바른 쪽에서 새싹들이 큰 숨을 쉬고 터지고 싶은데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아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데스의 세계에서도 빨리 세상에 내보내고 싶어도 데메테르가 허락하지 않은데 얼굴을 내밀었다가 숨도 한번 못 쉬고 모두 말라 버릴까 아주 신중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이쯤이면 페르세포네도 엄마를 만나러 갈 채비를 하고 있을 것이고, 조금만 있으면 대지위의 숨소리가 합창으로 들려오지 않을까 한다. 우리가 한동안 잊고 지냈던 새싹들의 숨소리가 살아있는 생명에게도 큰 힘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렇게도 긴 기간 동안 숨소리를 기다리며 숨을 이어 왔는데, 이젠 외로움 없이 같은 박자로 숨을 쉴 수 있다니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이런 것이 달리 행복일 것인가. 어쩜 행복이란 바구니에 숨소리를 주워 담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며칠 전까지 만해도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는데, 그사이 날이 차가워져 얼마나 놀랬을까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고, 하늘엔 날개 달린 생명이 숨 쉬는 소리가 하늘을 밝게 하고 있다.     


세월이 갈수록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생명, 먼 산 8부 능선에 하얗게 피어 있는 억새도 나름의 숨소리로 지금을 맞고 있을 텐데, 유독 우리 인간들만 숨소리가 고르지 못한 것은 지난 일에 대한 애착과 미련, 다가올 아픈 숨소리,  자신을 믿지 못하는 불규칙적인 숨소리가 더욱 가슴에 맺혀 올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전반적인 생명들과 비교해 보면, 고등동물이라 그 만큼 복잡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거친 숨을 몰아쉬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한다.       


[ 숨소리 ]

생명은 모두 생각을 소유하고 살 것인데, 무소유라고 하면 보통 물질적인 것으로부터의 무소유를 말하는 것 같은데, 사람과 같은 고등 생명은 이제라도 생각으로부터의 무소유에도 마음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 복잡하다는 것은 생각이 복잡한 것이고, 그 생각이 해결되지 못함으로써 더 깊은 고뇌와 싸우는 것은 아닐까. 가끔, 숨이 거칠어지고 가빠질 때, 아기의 숨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바로 잡아보는 것도 고등생명이 추구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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