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의 테라스에는 처녀꽃, 사계국화, 레넌큘러스, 양귀비, 란타나, 아네모네, 토단풍, 데이지꽃, 마가렛, 루피너스, 가자니아, 향동백 등과 아직 이름을 모르는 예쁜 꽃들이 한창 피고 있다. 이에 앞서 천리향은 벌써 향을 지우고 집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좀 감각이 더딘 체리나무, 샤인머스켓, 감나무, 사과나무, 블루에로우는 이제사 귀엽게도 눈을 뜨고 젖 달라는 애기처럼 보채고 있다. 그리고, 오죽은 언제 저렇게 죽순을 내었는지 엄마 키에 도달하고 있다. 그리고, 테라스의 울타리 역을 맡고 있는 덩굴장미는 시간, 분, 초가 다르게 왕성하게 자라고 있다. 5월이 피어야 할 꽃이 벌써 봉오리를 만들어 내고 있어, 이런게 봄인가 하는 것을 눈으로 마음으로 새기고 있다. 사람들은 3월을 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의 테라스에서는 3월은 겨울의 막바지가 되나 보다. 어떤 아이는 너무 추워 동상을 입고, 어떤 애는 눈을 떴다가 다시 감고, 애처로워 못 볼 지경이었다. 4월이 되니 누군가는 잔인한 달이라 했지만 나의 정원에는 비로소 봄이 온 것 같다. 말 그대로 만물이 소생하고 어영차 하며 일어나고 있다. 특히 란타나는 추위를 아주 싫어하나 보다. 이파리가 동상에 걸려 시커멓게 타들어 가 지켜보는 나의 마음 역시, 시커멓게 탔다. 4월의 둘째 날인 지금 너무도 많은 꽃을 아주 싱싱하게 피워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나의 새로운 직장처럼 마음이 흔들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교수직을 정년 퇴임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 자신이 그렇게 나이를 많이 먹었는가 하는 회의와 아직도 힘차게 일을 할 수 있고 했으면 하는데 사용자 측에서는 그렇게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꽤나 상했다. 마치 자신들은 늙지도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4월 1일부터 출근하기로 한 곳이 너무 멀고 근무가 일이 끝난 뒤에는 다시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귀가해야 하기 때문에 이 시간들이 너무 아깝기도 해서 양해를 구하고,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 다시 지원하여 어려운 고개를 넘기고 3월 27일부터 출근하였다.
세상은 교수직보다 분명히 차갑고 어려울 것이라 각오하고, 새로운 삶에 도전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학교에서는 사람의 생명 연장을 위하여 어떤 뮬질을 개발하고, 작용기전을 분자 레벨에서 규명하여 안전하고, 효과가 좋다는 것을 천연물로부터 성분을 추출하여 제품으로 완성하는 일을 하였었다.
새로운 직장인 종합병원에서는 약사인 내가 약의 취급 및 관리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주 옛날 교수가 되기 전에 약국을 경영한 일이 있었는데, 세월이 많이 흘러, 그때의 약들은 많이 진화하고 종류가 너무도 다양해서, 그 많은 약의 종류, 성분, 형태, 작용 부위, 효능, 제조회사 등을 모두 기억해야 환자들에게 복용 설명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스스로 위안을 했다. 세상의 그 어느 구가 이 많은 일들을 단숨에 다 기억할 수 있으랴하고.
되도록 빨리 익히려고 노력하고 있다. 벌써 일주일이 지나갔는데, 한가지만 깊게 파는 연구직에서, 아주 다양한 것을 많이 알아야 하는 것으로 환경이 변화되어, 숱한 노력을 하고 있다. 또 다른 한가지는 마약, 향정신의약품을 불출하고 정리하는 것이다. 수술실, 응급실, 내시경실, 병동 등에서 요구하는 마약 및 향정신의약품을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 무척 부담스럽기는 하다. 특히 군대에서 보급관을 할 때 마약 처리에 고심한 적이 있었고, 요즈음은 특히 사회적으로 마약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 부담감이 크다. 단 하나의 알약과 주사제가 맞지 않으면 엄청난 뒷풍이 폭풍처럼 일어난다. 잘못으로 떨어뜨려 깨지기라도 하면 해결하는데 많은 노력과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겁이 나기도 한다. 이에서 해방되려면 적어도 한달 정도는 걸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교 생활은 어느 정도 자유가 있었다라고 하면, 병원은 9-17시까지 정신없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틈이 없다. 조제된 약의 성상, 품목, 약의 수가 처방에 맞는가를 신속히 검사하여야 하는데 대부분이 30일, 60일 분이라 숙달되지 않은 나에게는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좀 숙달되면, 내가 좋아하는 색소폰 연주와, 시, 사진 찍기, 양로원 봉사 등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림의 떡인 셈이다.
요즈음은 새벽 5:20분에 일어나 6:00에 개장하는 단지 내의 헬스클럽에 가서 한 시간 동안 운동하고 출근한 다음, 일과가 끝나는 저녁에는 근처의 이순신 공원에 한 시간 동안 6,000보 정도를 걷는다. 학교 생활 때는 5:00에 일어나 걷기운동 6,000보를 먼저하고, 돌아오는 길에 헬스장에 들러 한 시간 운동하고 학교에 갔었는데, 이렇게 하면 저녁에는 색소폰을 할 수 있고, 주말에는 사진 촬영이 가능하지만, 병원 생활은 토요일까지 근무하기 때문에 지금은 생각할 틈이 없이 지나간다.
작년에 나의 정원에서 봄에 핀 꽃을 관리를 잘 했더니 가을에 다시 꽃을 피우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다. 그것이 비단 꽃에만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생각했다. 봄 30년을 연구에 종사하고 꽃을 피웠다면, 이제 가을 30년도 새로운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자연의 법칙을 따라야 하는 생물이라 여러 가지 조건을 따를 수 있으나, 그 조건 역시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지금 피고 있는 꽃들이 나를 엄청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도 우리처럼 두 번의 꽃을 피울 수 있을까에 대한 엄청난 기대와, 용기를 한층 더 불러 일으킬 수 있도록 응원을 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