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제나 가느다란 희망을 잡으며 살아간다. 나의 아이가, 나는 별로 공부도 못하고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나, 나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나의 꿈을 모아서 나의 아이가 잘되었으면 하는 어쩌면 당찬 기운으로 살아간다. 기분 좋을 때는 아이가 어쩐지 시험에 100점을 맞을 것 같은 예감이 들고, 저녁에 아이가 시험지를 태극기 휘날리듯 흔들어내며, “엄마 나 백점 맞았어”라고 말하면, 여태껏 나의 기대대로 아이가 나의 방향으로 잘 가고 있다는 생각에 고맙기도 하고 눈물이 나가도 한다.
또, 전봇대 전선에 앉은 까치가 내 머리 위를 돌며 까악 거릴 때는 누군가 반가운 손님이 올 것 같아 기다려지기도 하는데 아마, 울 엄마가 반찬을 맛있게 만들어 오는 것은 아닐까하는, 그동안 무심했던 마음이 등줄에 물줄기가 흘러 찔끔찔끔 눈물 나기도 한다. 울 엄마는 나에게 기대할 것도 없었을 것인데, 이렇게 사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밥도 한번 편하게 드시지 못했는데 하며, 말 안들어 등짝에 엄마의 고무장갑 직인이 찍히게 발발거리기도 했다.
근데 엄마가 이렇게 먼 곳까지 올 리야 없겠지만 그저 손 맞잡고 울고 싶어진다. 그때사, 내가 무엇하며, 무엇을 위하여 살아 왔는가하는 것을 새삼 챙기게 된다. 이 생각에 젖어 멍하니 눈물짓고 있는데 “어야, 야야!” 하며 허연 머리 엄마가 대문을 밀고 들어선다. 이런게 꿈일 것이야 하고 뺨도 때려본다. 하기사 마음 없이 기다렸겠는가. 특히 여성들에게는 아주 성능이 뛰어난 감각, “촉(觸)”을 가지고 있어 남성 생각의 범주를 초월하는 안테나를 가지고 있다. 마치 무속인이 신을 접속하듯이 전혀 알 수 없는 느낌으로 사람을 당황하게 한다. 남성들은 자신의 주위에 있는 여성들로부터 족집게를 당한 일들이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불길한 일들을 너무도 잘 맞힌다는 특성에 말을 더듬고, 하얗게 질리기도 하고, 스스로 자백하기도 한다.
특히 불길한 예감은 절대로 빗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장의 퇴근 시간 근처에 여성(집사람 등을 포함한 모든 여인)에게 전화를 받으면 두가지 정도로 표현될 것 같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거나, 나를 잘 꿰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애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뭐 별일 없지?” 라는 말을 들으면, “응, 그래 별일 없어”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 된다. 어감으로 느껴보아 “별일 없을 것이다”와 “좀 이상한데”라는 느낌이 들것이다. 이때 내가 잘 못한 것이 있으면 가슴이 뜨끔할 것이고, 안테나에 걸렸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남성들을 어떻게든 피해 나갈 생각을 할 것인데, 여성은 낚시에 걸린 물고기로 생각할 것이다. 근데 여성의 촉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는 잘 모르겠다. 단지 심리적으로 남성을 잡으려고 하는 생각에, 또는 질투심에, 내 남자를 그냥 버려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아니다, 촉은 그 위의 느낌이고 감각이다. 걸려들었다는 확신이 들면 빨리 꼬리를 내리는 게 상책일 수밖에 없다. 한번 정도는 시험으로 끝날 수도 있을 것 같은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원 석사과정 3학기를 마치는 과정에, 때에 따라서는 이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논문을 정리해 두고 밤 9시경에 고향집에 도착했다. 엄마는 이렇게 늦게 왔나, 밥은 먹었나라고, 아버지는 요새 많이 바빴나 보네하고 방에 들어갔는데, 옆방에서 여동생이 튀어나오더니“오빠 군대가제 ?”라고 하는 것이다. 군대는 만학도이고 때마침 학사장교제도가 생겨 시험을 쳤는데 6월에 광주 보병학교로 가기로 되어 입대전날 고향집에서 자고 다음날 혼자 광주행을 하려고 생각하고, 혹시 3년이지나 제대를 하더라도 만들어 둔 논문으로 졸업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 자신은 너무도 놀랐다. 어떻게 알았을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그 뒤로부터 여성의 촉에 대하여 신을 믿듯이 믿고 있다.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철없던, 있던 남성들이여,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
여성들에겐 촉이 되지만 상대인 남성들에게는 언제든지 불길한 예감의 낚시가 될 수 있다. 특히 좀 안 좋은 예감은 잘 맞아 들어가는 것도 많은 경험을 통하여 새겼을 것이다.
회사에 구직시험을 쳤는데 기분좋게 잘 쳤다고 생각했는데, 한가닥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면, 그 희망에 무거운 닻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불행한 예감을 그렇게도 잘 맞아들어 간다.내가 투자한 증권도 같은 예감을 많이 받는다. 어제 하한가를 쳤으니, 오늘은 반등 할거야 하는 기대감도 아주 멋지게 이 상황에 동참하게 된다.
내가 30대 말쯤이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때는 부산 연산동에서 약국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설날 당일을 약국을 지키느라고 고향에 가지 못하고 다음날 고향에 갔었는데 엄마가 “살기 어렵제?”하며 떡국을 내 놓으셨다. 잘 먹고 잘 쉬고 부산에 돌아와서 자고 있는데, 4시쯤 전화가 울렸다. 온 몸에 쥐가 나고 영 아니다하는 느낌이 온몸을 감전시키고 있는 중에 “엄마가 돌아가셨다”고한다. 누가 ? 엄마가? 그때는 할머니도 계셨기 때문에 엄마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나에게 떡국 한 그릇 퍼줄려고 하늘의 부름을 연기해 두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과, 이제 약국을 경영하여 입 정도나 축일까하는 상황에서, 엄마께 맞는 약 한번 제대로 만들어 주지 못했다. 하필 그런 때에 가셨다. 내 평생 한스러워 엄마만 생각하고, 목련을 쳐다보면 거기에 울 엄마가 보여 매년 봄 목련꽃 찾으러 헤매고 있다. 조금은 불행한, 좋지 않은 느낌도 좀 비켜 갔으면 좀 살기 편할 수 있으려나.
[좋은 예감]
우리 집 테라스에 많은 식물과 꽃들이 한창 자라고 꽃 피우고 있다. 저 꽃들도 사람처럼 불행한 예감이 비켜나가지 않으면 어떻게 아픔을 참아갈 수 있을까. 요즈음은 날씨가 봄인지 겨울인지 분간하기 어려운데, 내일은 좀 따스하겠지 하고 생각하는 꽃들도, 나무도, 그 뜻을 사람처럼이나 비켜가지 못하고 있다. 올해의 과일값은 틀림없이 비싸질 것이다. 날이 차가워 꽃이 피지 못하고 수정이 되지 않아 얼굴을 까맣게 태우는 것을 보면서 식물들도 우리와 같은 바램이 비켜가고 있어, 더욱 마음 저리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