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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길 Jul 22. 2022

안개는 왜 비처럼 물이 되어 떨어지지 못하는 걸까

자욱한 안개가 앞 동의 건물까지 가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안개 낀 평야로 다가온다. 마치 그 속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불쑥 나타나 막걸리나 한잔하지 하는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저렇게도 촉촉이 마음을 적시면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누구든지 가슴에 가라앉아 있는 정서가 눈을 통해 들어오는 영상을 타고 훨훨 날기 시작할 것 같다. 나 자신도 눈앞의 저 정경에 나를 던진 지 한참 되는 것 보면 역시 사람은 감정의 동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이 시간에 무슨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머리를 완전 가동하는 것보다는 잔잔한 호수에 고추잠자리가 남기고 간 파문이 조용히 일어 나가듯, 그냥 마음을 던져 놓고 싶다. 몇 시간의 여유가 삶을 뒤집어 놓지는 않을 것이기에 조금은 멍하게 바라보고, 또한 이보다 더 급한 일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냥 퍼져 있고 싶다.    

 

저 안개는 왜 비처럼 물이 되어 떨어지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는개처럼 마음을 더 적셔 보든지. 아마도 안개는 그 자체가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조금 더 뭉치게 되면 날아다니는 재미 보다는 땅에 떨어져 그 운명을 끝내는 것이 아주 싫은 것 같다. 나도 그렇다. 날지 못함이 얼마나 답답하고 아픈 것임을 안다. 무슨 일이 바라던 대로 이루어졌을 때에는 정말 날고 싶다기보다는 날고 있다. 그 날개가 오늘 하루만이라도 뒤틀리지 않고 날 수 있기를 얼마나 기대하는 일이던가. 단 몇 시간이라도 이러한 쾌감이 지속할 수 있다면, 또한 작은 재미로 살아갈 수 있을 것도 같다. 세월이 변한다기보다는 너무도 눈앞의 시간이 빨리 변해 나가기 때문에 작은 행복조차도 사치에 속하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 같다.


물론 안개는 햇볕이 나면 삶을 다하는 여린 생명이다. 근데 오늘 같은 오후에 이렇게 깊이 나에게 다가온 것을 보면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러 온 것 같다. 가녀린 안갯속으로 걸어보고 싶기도 하고, 물이 소곤거리는 계곡의 산사에서 깊게 우린 녹차도 떠오르고, 혹 안갯속에서도 피운 뽀얀 꽃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또는 안개보다 조금은 더 큰 는개로 다가와도 괜찮을 것 같다. 좀 더 마음속 깊이 자리를 할 것 같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풀리지도 않던 멍에가 살며시 땅으로 내리기도 하여 마음을 달래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더구나, 보통 때면 선풍기를 돌리며 투덜거려야 하는 이 시간에 이렇게 남아서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은, 아직도 설켜 있는 많은 문제에서 자신의 고독으로 믿지 못하는 자신을 생각해 보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 오후는 흐리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포근한 솜이불을 둘러쓰고 있는 느낌, 누군가 안아 주는 느낌이어서 그냥 그대로 오늘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언젠가 섧도록 울고 싶을 때,  오늘 같은 오후를 가질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오후는 그냥 막 보내고 싶지는 않다. 누구라도 이 느낌을 아는 사람이면 더욱더 좋겠다.     


                                                 [안개 낀 날(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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