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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길 Jul 09. 2022

기다림은 그 자체로서도 용서를
대신한다

지구가 태어난 후 생명이 도래하기까지는 억만 겁의 기다림이 스쳐 지나갔다. 이로부터 모든 생명은 기다림에 익숙하게 진화되어 왔던 것 같다. 그래서 생명체 내에는 기다림의 유전자가 박혀 들어간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다림에 참 인색한 경우가 많아 자신을 괴롭히고 미래가 없는 마냥 자신을 물어뜯고 지내오곤 한다.     

생명의 탄생은 기다림으로부터 온다.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싹을 터야 하고, 뿌리를 내려야 하며, 영양분을 흡수해야 하고, 주위 환경에 적응해야 하며, 물이 있는 곳으로 뿌리를 뻗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한다. 이는 기다림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시간을 아주 단축한다면 생명은 숨이 막혀 죽어버릴 것이다. 생명의 성장은 시간을 요구하고 이 시간은 생명이 차분히 땅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기다려 주는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기다림의 미학(제주), 2018]


특히, 생명의 탄생은 우리 주위의 모든 생명이 기다려 줌으로써 축복받으며 일어난다. 태양이 영양을 공급해 주고, 달의 힘으로 생명을 움직이게 하며, 별의 따스한 눈빛으로 미래를 쳐다보게 한다. 참으로 얻기 어려운 생명, 예부터 새 생명을 얻기 위한 어미의 노력은 그 무엇보다도 자연의 마음을 움직여 왔다. 새 생명을 얻기 위하여 정화수의 기도는 거의 필수적이었으며, 백일, 천일기도는 당연히 올려야 새 생명이 집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어미가 그만큼의 노력으로 기다려 왔음을 안다. 사회의 발달로 기다림도 원초적인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하여 기다림을 단축하려는 인간들의 노력이 지성과 애틋함으로부터 필수의 생존 도구로 발달하고, 인간성은 점점 기계에 밀려 회복하기 어려운 시대로 달려가고 있다. 동물들은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한 자신의 모유로 아기들을 키운다. 아마도 인간은 그것을 정이라고 표현할 것이다.


심지어는 아기 송아지가 태어나면, 돈벌이의 목적으로 아기 송아지가 성장할 기회조차 기다려 주지 못하고 어미로부터 젖을 빼앗아 간다. 기다림이 자의에서 타의로 억압되어가고 순수한 생명은 그 고귀함 자체를 잃어버려 생명이 아예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기다림은 씨앗을 익게 한다. 꽃이 피고, 씨앗이 새로운 탄생을 위해 기나긴 시간을 접어 에너지를 축적하려고 할 때 기다려 주지 않으면 씨앗은 온전하게 미래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도 기다림은 벌써 혼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아이들은 클 때 온정을 바탕으로 모든 것에 우선하여 참된 정을 받고, 이루고 성장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왜 아이들을 그렇게나 기다림 없이 밖으로 돌려야 하는지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되고 있다, 영글지 못한 씨앗이 그 발아에 고통을 느끼듯이 아이들은 기다림 속에 천천히 알차게 영글어야 함은 누구도 인정하는 것이다, 어른들에게 기다림의 여유가 사라진 만큼, 아이들은 단축된 기다림 속에 자신을 채워가기에는 너무도 힘들 것이다.     


기다림은 그 자체로써도 생명에 무한한 에너지를 줄 수 있다.  태양이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은 적이 있는가, 저 달이, 저 별이. 또한 우리를 찾아온 계절도 우리를 잊고 그냥 지나간 적이 있는가. 나비가, 꽃이 우리의 기다림을 배반하고 가로질러 간 적이 있는가. 계절이 우리에게 필요한 열매들을 제공하지 않고 흩어진 적이 있는가. 사람은 참 편리하고, 자기중심의 삶을 사는 동물이라 필요하지 않으면 기다림은 눈곱만큼도 없다. 새들이 지저귀며 인사하는데, 인간은 필요하면 인사를 한다. 그냥 지나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으로 세워져 가고 있는 마당에, 또한, 사람은 영리하기도 해서, 세월이 자신을 기다려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삶의 목표처럼 정해 놓고 이에 맞추어 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을 다른 생명이 보면 참 가관이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참으로 이기적인 동물이 인간이다. 세월이, 시간이, 기다려 준 것만큼은 전혀 보은하지 않으려 하고, 가는 시간에 질질 끌려다니면서도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기다림의 미덕은 참으로 공평하다는 것에 있다. 그 누구에게도 주어진 것이 기다림이고, 그 기다림 속에 어떠한 인격체로 태어날 것인가 하는 것도 기다림은 애써 판단하려고 하지 않는다. 기다림은 그 자체로서도 용서를 대신한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어 눈이 퉁퉁 부어 올 때도 기다림은 가만히 쓰다듬어 주는 아름다움을 발휘한다. 어쩌면 기다림이 기다림인지도 모르게 지나갈 때에도 가슴 깊이 고마워하지 못하고 애써 그 고마움을 부정하는 데는 인색하지 않다.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히 일어난다는 말로 그 고마움을 챙기지도 않으면서 불평하는 경우도 많다. 태양은 당연히 솟아야 하고, 바람도 당연히 불어야 하며, 이런 것들은 나의 존재에 필요하기 때문에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만 생각한다. 이것을 기다림의 결과라는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우리는 참으로 이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많은 경우 기다림은 결코 비켜나가지 않는다는 진실을 우리는 참 필요에 의해 해석함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많다. 내가 기다리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고 다른 사람의 기다림은 비켜 갔으면 하는 생각은 하고 있지는 않을는지. 그렇다. 기다림도 익어 터져야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모든 생명은 가슴에 차고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냥 무의미한 기다림, 혼이 없는 기다림은 시간 죽이기에 다를 바 없다. 원한다면 그 기다림에 혼을 바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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