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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길 Oct 06. 2022

나를 띄우는 햇살

흠 하나 없는 하늘에 풀칠하여 붙인 해 덩이같이 너무도 깔끔하여, 마음속에 있는 모든 응어리를 가져가 버리는 그런 해를 보았었다. 그러면서 나의 길이 그토록 깨끗하기를 빌기도 하였다. 저런 일은 자연의 조건상 참으로 일어나기 힘든 일이라 생각했다. 기온에 따른 해돋이 근처에 구름이 끼고 그 사이로 솟아오르는 해님을 보기 위해 그만큼의 거리와 시간과 희망을 투자해서 웅장하게 떠오르는 해를 맞으러 가는 것이었다.      


정녕 가을 해님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너무도 고운, 여태껏 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크기로, 더 위에 겹쳐 쓸 수 있는 말이 없어 표현하지 못할, 이렇게도 웅장하게 나를 띄우고 있었다.      


왜 저렇게 큰 해가, 너무도 깨끗하게 벌거벗은 채로, 주위엔 아무것도 없는, 보이지 않는 채로 다가오고 있었다. 해돋이는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떠오르지만, 이 태양은 내가 전혀 기대하지도 않은 아침에 그렇게 큰 손님으로 나에게 왔다.     


아마도 내일은 이런 태양으로 다가오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추수를 끝내고 텅 빈 들판을 채우려는 듯이, 그 마음 그대로 나의 마음에 들어오려는 듯이, 그렇게 평온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마도 전신이 마취되어 꼼짝하지 못하는, 그 머리 위로, 눈동자 위로 지나기만 하는 아쉬운,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참 이렇게 밖에 표현 할 수 없는 무지함이 고운 아침에 나를 슬프게 한다.


                                               [나를 띄우는 햇살(여수), 2018]


그 커다란 태양은 잠이 들깬 온 대지를 감싸고 푸근히 어깨를 토닥거리며, 백발의 억새를 역광으로 비추어 내며 잘 지냈냐고 인사를 한다. 전봇대를 삼키며 뼈대를 내놓는 그 실루엣에서도 그 옛날의 추억들이 머릿속에 쥐 내리 듯 팽팽 감기어 온다. 저기 또 태양 속에 잡힌 검은 트럭이 숨을 헐떡이며 하루를 찾아가고, 개천을 내리쬐는 저 찬란한 빛이 내 속에 들어와 냉한 가슴 속으로 진주함을 느낄 수 있다.  

   

가난한 마음에 채울 것이 없어 고민해 왔던 여러 날이, 태양을 낳기 위해 저렇게 웅크리고 있는 이 아침이, 허기진 마음에 흘러넘쳐 행복의 정의를 다시 내리고 있다.


이 아침에 이 거대한 태양을 나누어 가질 방법이 있다면 그 무슨 악랄한 규칙이라도 따르고 싶다. 그로 인하여 마음 아픈 자들이 한 모금씩 이 태양을 마셔 모든 아픔이 치유될 수 있기를 또 바라본다.  

   

언젠가 봐야 할 임이 소식도 없이 꽃 뭉치를 가지고 불쑥 나타나 저기서 미소 짓고 있다면 아무리 미웠던 임이라도 어찌 반갑지 않으리오.     


참. 가을

이 아침의 티 없이 맑고 큰 저 임,     


가을 마음에 자리 잡아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다 같이 할 수 있었으면.     


가을.     


참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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