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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길 Oct 23. 2022

그리움은 기다림 없이 결코 눈물
맺지 않는다


바람이 분다. 고운 실바람이다. 사람을 싣고 왔다. 아니 그리운 향을 전해왔다. 사람은 자극에 반응하는 동물이다. 아쉬움에 반응하고, 그리움에 반응하고, 사랑에 반응하고, 미움에 반응하고, 기쁨에 반응하며, 기다림에 익숙해져서 그 결과로 눈물을 낳는다. 이 눈물은 참으로 많은 마음을 품고 있다. 잊을 수 없는 일에 대한 그리움, 보낸 이에 대한 그리움, 혜성처럼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그리움, 수많은 그리움을 하나로 만들어 내는 것이 진실한 눈물이다.      

                

                                 [그리움은 기다림 없이 결코 눈물 맺지 않는다(여수), 2022]


그리움은 기다림 없이 결코 눈물 맺지 않는다. 그리움을 말로써는 설명이 안 되는데 눈물로는 설명이 된다. 참 이상하게도 벌을 받아도 눈물로 설명이 된다. 아주 눈물 나도록 그리운 사람을 잊을 수 있다면, 잊힐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는 그 차체가 그리움에 대해 반응을 하는 것이다. 그리움은 화학 반응처럼 일어난다. 화학 반응이란 자신이 완전히 없어지고 다른 형태로 되는 것이다. 그래서 왜 그리움이 생기는 가를 보면 서로 다른 두 개의 마음이 화학 반응을 일으켜 지울 수 없는 기억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이 없는 상태는 그 삶이 없는 것이고, 화학 반응을 일으킬 원료가 없어지는 것이다. 마음을 찾는다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일지라도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삶이 되어 간다. 


그래서 화학 반응의 종류는 삶을 영위하면서 그 가짓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일어난다. 화학 반응으로 일어난 일들을 잊으려 해도 잘 잊히지 않는 것이라면 그냥 두어야 한다.


화학 반응이 너무 심하게 일어나면 상처가 되어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눈물을 만들려면 아주 고귀한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마음으로 살면서 생긴 것들을 반응의 원료로 넣어야 한다. 고귀하다는 것은 절실한 것이고, 그 대상이 너무 흔하여 챙길 수 없는 것일지라도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답해야 한다.      

에로스적인 사랑은 반응시킬 수 있는 원료가 엄청나게 많아, 눈물도 엄청나게 많이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너무 흔해서 느낄 수 없는 원료 중에서 어머니라는 마음이 있다. 너무 가까이 있어 반응의 원료조차 될 수 없었던 그 마음이 이제야 생의 한가운데로 치고 들어와 눈물을 만들 재료가 되고 있다. 이러한 재료는 너무 값이 비싸서 살 수 없었을까, 너무 싸서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은 처음에는 자그마한 씨앗이었다. 이 씨앗이 자라남으로써 고통스러운 많은 마음을 만들어 갔다.     


 일에 대한, 남편에 대한, 자식에 대한, 말 못 하는 축생들에 대하여, 어쩌면 눈물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그렇게 열쇠를 꽉 채우면서도, 한편은 고귀하고도 예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마음에 쌓았을 것이다. 모든 잘못된 일들은 본인의 탓이었을 것이고, 잘되는 일을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며, 뒤돌아보면 너무도 갑갑 답답하고, 앞을 바라보면 깜깜한 한밤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살아온 것은 눈물을 만들기 위해서 일 것이다. 살면서 몇 번의 기쁨을 느껴 보았을까. 자식들이 태어났을 때도 기쁨보다는 몸조리도 못 하고 산으로, 들로, 논으로, 밭으로 뛰어다녔고. 그러다가 봄에 피는 진달래를 보았을 것이다. 진달래는 그렇게 향이 진하지 못하다. 참으로도 잎이 나지도 않고 꽃을 먼저 피우는 진달래를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느꼈을 것이다. 깊은 겨울 동안 얼마나 봄을 기다렸으면 잎도 없는 꽃을 틔울까 하고. 이 꽃이 주는 웃음을 배웠을 것이다. 너무나도 닳은 자신의 마음을 자극하였을 것이다. 싸늘한 봄날에 부는 바람이 차다기보다는 진달래를 웃게 하는 고운 바람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바람은 왜 이렇게 따스할까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바람.

바람에 흔들리며 살아왔을 사람. 고마운 바람, 미운 바람, 고운 바람, 찬 바람, 시린 바람, 몰아치는 바람, 거센 비와 함께 오는 바람. 이러한 바람과 함께 겪어 온 사람, 너무나 가치가 없어서 살 수도 없을 사람, 눈물을 만들기에는 너무도 가득한 사람. 바람에 휩싸여 너무도 빨리 간 사람. 기다리는 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 애가 타는 이 원료들로 다 못한 마음에 맑은 눈물을 만드는 반응을 일으킬 수 있을까.      

그래서 화학 반응은 독을 남기기도 한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안다. 좋고 고귀한 재료는 고귀한 물질만을 만들어 낸다고 알았던 화학 반응이 틀렸다는 사실도 지금에서야 알았다. 값싼 원료가 너무 흔해서 이것으로 더 고급스러운 물질을 대량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너무 늦게 알았다. 이러한 일들은 고귀하고도 진실한 눈물을 만드는 원료로써는 쓰이지 못하고, 반응이 강하게 일어나게 하는 촉매로써 상처를 넘어선 독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고, 그 독은 텅 빈 마음을 갉아먹곤 했다.      


또 한 가지는 화학 반응이 일어난 것은 원래대로 되돌리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남는 것이 그리움이고 기다림이다. 화학 반응은 조건이 맞추어지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는 반응이 격하게 일어나지 않게 하는 조건들을 찾고, 만들어야 한다.      

그리운 대상이 있다는 것은 진실한 마음이 있다는 것, 이것이 상처로, 독으로 남아도 눈물로 저장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고운 바람이 불 때 눈물을 실어 보내어, 한량없는 넋에 도달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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