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바구니에 핑크, 파랑, 하얀색의 동그란 실리콘들이 색깔별로 열을 맞추어 가지런하게 놓여 있다.
보고 있자니 헤죽헤죽 웃음이 나온다.
옛날에 TV 속에서나 보던 부업을 내가 직접 하게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얼마 전, 동네 애기 엄마들과 모여 수다를 떨다가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 있는 동안 돈이라도 벌면 좋겠다고 푸념을 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 애기엄마가 이 부업을 소개해 준 것이다.
'역시 말은 하고 볼 일이구나.‘
'요게 마스크가 된 단 말이지. 어디 한 번 시작해 볼까나.'
거실에 큰 상을 펼쳐놓고 노란 바구니를 상 옆쪽에 가져다 두었다.
소파에 등을 기대어 앉은 다음 TV를 켜고 상과 바구니를 몸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오른손에는 고무줄, 왼손에는 동그랗고 커다란 실리콘을 집어 들었다. 일은 아주 단순했다.
입을 막아주는 본체와 귀를 걸어주는 고무줄을 연결해 묶어주면 된다.
중간에 고무줄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작은 스토퍼와 장식용 액세사리를 하나 더 끼워줘야 한다.
이렇게 간단한 게 1개에 50원을 준다니. 첫날이라고 마스크를 100개만 받아온 걸 후회했다.
처음에는 마스크, 스토퍼에 고무줄을 키우는 것도 손에 익숙지 않았지만 몇 번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귀에 묶는 고무줄은 매듭을 짧게 해서 액세서리 구멍 사이로 넣어 보이지 않게 해야 한다.
너무 짧게 묶으면 한 번 더 당기는 과정에서 매듭이 풀려버리고 조금 길게 묶으면 액세서리 구멍 사이로 매듭이 삐져나왔다.
고무줄을 묶는 데에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다.
나는 아이들 하원 시간, 남편 퇴근시간 이후가 가장 바쁘다.
마스크는 구석으로 밀려났다.
'얼마 못 했는데...100개는 다 해야 하는데...‘
서둘러 아이들을 재우고 거실에 나와 노란 바구니를 꺼내들었다.
TV를 보던 남편이 뭐냐고 묻는다.
"자기야 이게 말이야~"
나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한다.
한 개당 50원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신이 난 나와는 달리 남편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이런 걸 왜 해? 힘들게"
"아니, 그냥 심심해서 하는 거야."
"자기 배우고 싶은 거나 배우고 다니라니깐. 내가 빨리 월급이 더 올라야 할 텐데..."
"그런 거 아니라니깐. 이거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옆에서 남편이 돕는다며 마스크를 집어 든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주섬주섬 마스크들을 챙겨 노란 바구니에 담아 다시 구석에 치워둔다.
모두 잠든 새벽.
안방 문을 최대한 조심히 연다고 노력했는데 유난히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 같다.
뒤돌아 아이들과 남편을 쳐다본다.
다행히 다들 깨지 않고 자고 있다.
조용히 문을 닫고 거실로 나왔다.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까치발을 든 채 노란 바구니를 찾았다.
밤이라 그런지 내 숨소리도 크게 들린다.
작은방으로 들어와 조용히 문을 닫고 불을 켰다.
가쁜 숨을 조용히 헐떡였다.
이불을 방석 삼아 쿠션 삼아 허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도톰하게 두르고 방바닥에 앉았다.
‘아니, 돈이 많으면야 당연히 요러고 있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똥구멍 찢어질 정도로 가난해서 내가 이러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 거야 대체’
생각만 해도 불쌍한 남편 얼굴이 스쳐간다.
‘한시가 모자라는 판국에 내가 잠도 못 자고 오밤중에 숨어서 뭐 하는 거여’
아침까지 내가 가져온 마스크를 다 완성하고 싶은 마음에 정신없이 고무줄을 끼우고 끈을 묶기를 반복했다. 창밖이 점점 환해진다.
시계를 보니 벌써 시간이 새벽 6시 가까이 됐다.
6시 20분이면 남편이 일어나는 시간이다.
부랴부랴 마스크를 바구니에 집어넣고 작은방 불은 끄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조그맣게 핸드폰 알람이 울리니 남편이 안방 문을 열고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왜 작은방에서 자냐고 묻는 남편에게 자다가 일어난 것처럼 눈을 비비며 대답했다.
“몇 시야? 애들이 자꾸 움직여서 자다가 이리로 왔어.”
남편은 더 자라며 방문을 닫고 나갔고, 곧이어 출근을 했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마스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반절이나 만든 것 같았다.
어차피 아침에 완성하지 못하면 다시 일감을 받아오지 못하니 오늘은 글렀다 싶어 마스크를 한 쪽에 밀어두었다.
띵동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놓고 다시 마스크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초인종이 울려 나가보니 친정엄마였다.
아파트 옆 동에 살고 있는 엄마는 가끔씩 들르곤 하신다.
마스크에 눈길을 주는 엄마를 보며 나는 주절주절 말을 하기 시작한다.
“엄마, 이거 아는 언니가 좀 도와주라고 해서... 집에서 심심하게 노느니 그냥 용돈도 벌고 한 번...”
“누가 뭐래? 네가 이런 것도 할 줄 아네. 이거 어떻게 하는 거대?”
엄마는 마스크 앞에 앉더니 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한다.
나는 괜찮다며 엄마를 말려보지만 엄마도 괜찮다며 마스크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엄마랑 수다를 떨며 마스크에 고무줄을 끼웠다.
엄마는 요즘 마스크는 참 희한하게도 나온다고 신기해하며 고무줄을 끼웠고, 나는 고무줄을 그렇게 길게 묶으면 안 된다고 하루 선배로서 엄마에게 잔소리를 하며 고무줄을 끼웠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던가.
혼자서는 그렇게도 줄지 않던 양이 둘이 하니까 금세 끝이 나 버렸다.
100개 만들었으니까 5천 원을 벌었다는 생각에 하루에 200개, 300개를 만들면 한 달로 계산했을 때 부업치고는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흐뭇했다.
다음 날 완성된 마스크를 반납하고 200개의 마스크를 일감으로 받아왔다.
아침 일찍 엄마가 또 집으로 왔다.
“엄마, 이거 하고 있으니까 나 어릴 때 엄마가 집에서 구슬로 방석 만들던 거 생각난다.”
“그게 기억이 나?”
“그럼. 엄마가 방석 하나 만드는 데 50원인가 준다고, 구슬이랑 실이랑 엄청 들고 와서 맨날 꿰고 있었잖아.”
“내가 그랬냐?”
“그때, 실 꽉 당긴다고 엄마 손에 물집 잡혀 흰색 목장갑 끼고 만들었잖아.”
“아따. 너는 기억도 잘헌다잉. 나는 기억도 안 난다야.”
엄마는 가볍게 웃어넘겼다.
어린 시절,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가난하지도 않다고 느꼈었다.
아빠의 성실한 회사 생활 덕분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엄마의 구슬 꿰기가, 목욕탕 청소가, 메리야스 공장이 큰 보탬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엄마가 마스크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엄마는 아이들이 하원하는 시간까지 나랑 마스크를 만들었다.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 있던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리와 허리를 쉽게 펴지 못한다.
“엄마, 내일은 오지 마.”
“왜? 딸이랑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노니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고만. 내일 올게.”
얼마 남지 않은 마스크를 밤사이에 마무리하고 다음 날 반납했다.
일감을 받으려는데 마스크 사장님이
“00씨, 엄청 열심히 해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마스크 고무줄을 좀 짧게 묶어줘야 할 것 같아. 이렇게 길게 묶으면 다 다시 묶어야 돼.”
엄마가 묶었던 마스크 고무줄들이 좀 길다 싶었는데 계속 보면서도 신경이 쓰이긴 했었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새로운 마스크를 받아 집으로 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엄마가 왔다.
“엄마, 나 혼자 해도 괜찮아. 그냥 쉬엄쉬엄할 테니까 엄마 볼 일 보러 가도 돼요.”
“아니야. 엄마 아무 일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이거 많이 하면 손 아프니까 너나 좀 쉬어.”
엄마는 가방에서 하얀 목장갑을 주섬주섬 꺼내더니 손에 낀다.
어김없이 고무줄을 또 길게 묶는다.
“엄마, 그건 또 어서 찾았대?”
“집에 찾아보니까 있길래 갖고 와 봤어. 너도 손가락 아프기 전에 반창고라도 좀 붙여.”
엄마는 종이테이프를 건네며 내 손에 붙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어김없이 마스크 고무줄을 또 길게 묶는다.
“아니. 난 괜찮아. 엄마, 고무줄을 좀 짧게 묶어야 돼.”
“얼마만큼, 이만큼?”
“아니, 더 짧게.”
“알았어. 이만큼이면 됐쟈?”
조금 전하고 큰 차이는 없다.
그냥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 손가락 아프니까 그만해요.”
한 시간쯤 지났을까. 오늘은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나가야 한다며 마스크를 정리했다.
엄마는 자신이 만들고 있을 테니 마스크를 놓고 나갔다 오라고 한다.
괜찮다고 나중에 같이 하자고 엄마를 보냈다.
혼자 거실에 앉아 마스크가 든 바구니를 다시 꺼내 들었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다.
완성된 마스크 중에서 엄마가 만들었던 마스크를 골라냈다.
고무줄을 다시 풀어 짧게 묶었다.
더 이상 마스크 부업은 하지 않았다.
노란 바구니는 텅 빈 채 창고에 처박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