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그냥 이야기

by 각다귀

요즈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지하철역 근처를 걷다 보면 “빛이 나세요”, “도를 아십니까”, “조상님이 돕고 계세요” 같은 멘트를 날리며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때로 자연스럽게 길을 묻는 척하며 접근 방식을 바꾸는 등, 실로 다양한 방법으로 포교를 시도하곤 했다.

20대의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온몸에 두르고 살던 터라, 그들이 “빛이 나세요” 하며 다가오면 이렇게 대꾸하곤 했다. “알아요.” 나는 뻔뻔하고도 매끄럽게 그 상황을 모면하곤 했다.

사실 빈말은 아니었다. 군 시절 우연히 알게 된 지관(地官)이 신비로운 ‘ㄱ’자 막대를 돌리며 내 친가 쪽 할머니가 나를 돕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던 터라, ‘알아요’라는 대답은 반쯤 진심이었다.

나는 경비교도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 교도소에서 교도관들을 보조하는 특이한 군 복무 형태였는데, 근무 내용이 참 다양했다. 재소자들을 감시하거나 감시대에 올라 경계 근무를 섰고, 미결수들이 재판을 받으러 법원에 출정을 갈 때면 그들에게 수갑을 채우고 포승줄로 묶어 호송하기도 했다. 다른 교도소로 이송을 갈 때 동행하는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자살을 기도했던 내 또래의 젊은 남자 재소자를 외부 병원으로 호송할 일이 있었다. 그때 동행했던 두 명의 교도관 중 한 명이 이른바 ‘지관’이었다. 보통 지관이라 하면 묫자리를 볼 때나 만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 직원은 자리를 보는 방식이 독특했다. 그는 항상 ‘ㄱ’자로 된 금속 막대(엘로드)를 휴대하고 다녔다. 대상에 정신을 집중하고 막대를 돌릴 때 강하게 돌아갈수록, 그 사람의 조상이 좋은 자리, 이른바 혈맥에 묻혀 있다는 논리였다.

병원 대기실에서 그는 함께 온 나이 지긋한 교도관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맥을 봐주겠다며 예의 그 막대를 꺼내 들었다. 막대는 팽팽 잘 돌아갔다. “아이고 주임님, 조상님들 묫자리 아주 잘 쓰셨네요.” “아니, 어떻게 알았어? 우리 집 얼마 전에 이장했는데 지관한테 돈 정말 많이 쓰고 좋은 데 모셨거든.” 둘은 신기하다는 둥 용하다는 둥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미신에 딱히 관심이 없어 웃으며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자살을 기도했던 그 재소자는 달랐던 모양이다. 그가 불쑥 입을 열었다. “저도 한 번 봐주세요.” “그럴까?” 아니나 다를까, 재소자를 향한 막대는 맥없이 돌기만 했다. 지관이 혀를 찼다. “너희 할머니 묫자리가 아주 안 좋아. 수맥에 계셔서 아주 불편하시다네.”

분위기가 금세 침울해졌다. 여자 친구를 살해하고 들어온 젊은 재소자의 할머니가 수맥에 모셔져 있는 것이 뭐 그리 대수랴만, 동행했던 교도관들은 심성이 착했는지 아니면 젊은 나이에 살인을 저지른 그가 불쌍했는지 별다른 말 없이 조용해졌다.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의도였는지 지관이 나를 보며 말했다. “너도 해줄까, 근무자?” “네, 저도 해주세요.”

젊은 재소자의 기분 따위는 아랑곳없이 막대는 다시 팽팽 잘 돌아갔다. “오, 너는 친가 쪽 할머니 한 분이 보살펴주시고 있네. 너는 앞일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이 한 편의 콩트 같은 일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 묘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오랜만에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나는 앞일 걱정 안해도 된대.” 그렇게 내 마음속에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자리 잡았다.

‘저도 알아요’의 근거는 이렇게 형성된 것이었지만, 문득 궁금해졌다. 도대체 뭘 하려고 저렇게 열심히 모르는 사람들에게 수모를 당해가며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는 걸까? 어느 날, 종로 같은 시내가 아닌 서울 외곽에서 젊은 남자가 똑같은 말을 걸어왔을 때 나는 생각했다. ‘여기에도 이런 사람이 있구나.’ 여유 시간도 있었고 그간의 궁금증을 해소할 기회라 여겨, 이참에 그를 한번 따라가 보기로 했다.

골목을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은 어느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 방이었다. 그 남자가 연쇄살인범이기라도 했다면 이 글을 쓸 수도 없었겠지만, 다행히 그가 연쇄적으로 한 것은 포교 정도였던 듯 싶다. 방에 들어서자 그는 나를 잘 돌보아 주시는 조상님께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했다. 군 시절 지관의 말을 떠올리며 ‘그래, 할머니가 나를 돌봐주신다는데 조촐하게 제사상이라도 올리는 게 뭐 대수랴’ 싶어 그러자고 했다.

돈이 없던 대학생 시절이라 제사상에 올릴 음식은 3천 원어치의 조촐한 건어물 몇 가지가 전부였다. 나를 흰색 한복으로 갈아입힌 그는 자기 돈을 보태 마련한 음식을 상에 정성스레 올리고 자신을 따라 절을 하라고 했다. 상황이 우스웠지만 ‘어디까지 가나 보자’ 싶어 열심히 따라 절을 올렸다. 의식이 끝나고 그가 교리에 대해 뭐라 설명하기 시작했지만, 약속 시간이 임박한 나는 더 이상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 한없이 이어질 듯한 그의 말을 정중하게 끊고, 아쉬워하는 그를 뒤로한 채 반지하 방을 나섰다.

‘이상한 놈’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듣고 살았던 내가 생각해도 이 경험은 뭐랄까… 조금 위험하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때 절을 하며 빌었던 내용을 종종 떠올린다.

“기왕 조상님께 제를 올리는 거니까 뭐 소원이 있다면 빌어보세요.” 그 남자의 말에 잠시 생각하다 나는 이렇게 빌었다. ‘평생 용기를 잃지 않고 살게 해주세요.’

그때는 아마 내가 옳다고 믿는 바를 끝까지 꺾지 않고 행하는 데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믿음을 고집하지 않고,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는 것 또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용감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상황에 놓여있다. 제사를 지내며 빌었던 ‘용기’와는 조금 결이 다른 용기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용기다.

때때로 끝까지 해낼 수 있을지 의심하고 불안해하며, 나는 무모할 정도로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차 있었던 그 시절을 떠올린다. 그리고 다시 마음속으로 기도해 본다.

“용기를 잃지 않고 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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