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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 볼래요!

진정한 자존감

by 하얀





“내가 해 볼래요!!”


내가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듣기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이다.

혼자서는 불가능했던 일을 스스로 해낼 수 있게 되었을 때, 어린이들은 끊임없이 도전한다. 그리고 그 도전하는 얼굴을 보고 있자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기특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마음이 피어난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를 써서 그런 걸까? 최근 만나는 어린이들은 언어발달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전에도 매우 신중한 성격의 어린이라 완벽하게 할 수 있을 때까지 말을 내뱉지 않는 경우가 없진 않았지만 근래 들어서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어린이가 정말 많다.

사실 언어가 잘 안 되면 또래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회성 발달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다 보면 의기소침해지고 자신감도 자존감도 낮아져

비교적 도전할 것들이 많은 신체활동 참여도 싫어하게 된다.


요즘 내가 만나고 있는 진우(가명)와 희서(가명)도 말이 늦다. 다섯 살이지만 아직 한 단어 말하기 단계이다.

진우가 처음 유치원 버스에 올라탔을 땐 교사의 손에 의지해서 겨우 자리에 앉는 정도였다. 그런 진우에게 안전벨트 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벨트를 팔에 걸고 (배낭처럼 매는 유아용 안전벨트다.) 바로 코 앞에 버클이 오도록 해준 후 진우가 약간의 힘만 주면 벨트가 채워지게 해 주었다.

그리고 스스로 벨트를 채웠을 때 “우와! 진우가 혼자 해냈어?”라고 했더니 진우는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다음날이 되자 진우는 “내가”라고 낮게 말하더니 혼자 벨트를 채웠다. 그리곤 “내가 했어.”라고 변화 없는 표정으로 말한다.

며칠 연달아 벨트를 채우던 진우가 깜빡했는지 앉아서 창밖의 엄마에게 손을 흔들고 있을 때

“어? 우리 진우 안전벨트 잘 채우는데?”라고 하자, “아..”하더니 허겁지겁 벨트를 채운다. 그리곤 뿌듯한 얼굴로 쳐다본다.

놀이터에서 진우는 형님들만 탈 수 있다는 대근육 놀이기구에 올랐다. 바둑판처럼 줄이 연결된 그물 다리이다.

계단 오르기도 버거워 보이는 진우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도 계속해서 대근육 놀이기구에 오르기를 즐긴다.

“내가 했어! 블라블라(발음이 명확하지 않아 알아들을 수 없다…)”



희서는 선택형 질문에도 대답이 어렵다. “희서야, 이거 좋아해요? “, ”안 좋아해요?” 두 질문에 모두 “네”라고 답한다.

가방에 물건을 넣는 게 어려울 때도 무언가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으!”라고 말하며 인상을 찌푸리고 주변에 있는 성인을 쳐다볼 뿐이다.

집에서도 밥은 국물 하고만 먹을 정도이고 (건더기가 들어가면 혀를 내밀고 괴로워한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곰젤리도 입에서 오물거리다

삼키지 못하고 뱉어내기도 한다. 앉아서 하는 블록놀이, 그림 그리기, 소꿉놀이는 잘하면서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걷기, 버스 계단 오르내리기는 어려워한다.

경사가 조금이라도 가팔라지면 금세 눈에 눈물이 고인다.

희서는 작은 미끄럼틀 타기도 힘겹다. 뒤에서 밀어주지 않으면 혼자서 미끄럼틀을 타기 어려워할 정도였다. 놀이터에서 희서가 할 수 있는 제일 재밌는 놀이는 모래 놀이뿐이었다. 그런 희서도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도전할 거리를 주고 작은 성공 경험이 쌓이니 “선생님! 내가!”를 외치기 시작한다.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로 몇 번이고 미끄럼틀을 오르내린다. 점점 속도도 붙는다.

희서의 엄마 아빠는 요즘 희서를 무척이나 대견스러워하신다. 바로 희서가 문장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숟가락으로 밥과 국만 오갔는데, 먹진 않지만 포크로 반찬을 찍어보는 시도도 늘었다고 한다.



작은 성공경험들이 모여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내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인 자기 효능감도 자라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격려하는 어른들을 통해 ‘나 좀 괜찮은 사람인데?’라는 긍정적인 자아가 형성된다. 나아가 자기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라는 자존감도 높아진다. 어린이가 지적을 받아서, 마음에 상처를 입어서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을 걱정하기보단 도전적인 놀이, 작은 성공 경험이라도 스스로 해낸 성취감을 경험시켜 준다면 어린이의 삶을 훨씬 풍성해질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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