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오늘
나는 대치동 아닌 작은 시골 대치에서 자랐다. 시골에서 넉넉지 않지만 잘 자랄 수 있던 비결은 이제와 생각해 보니 엄마의 웃음이었지 않나 싶다. 늘 우리 남매를 보고 웃어주셨다. 그런 엄마 덕분인지 잘 웃는다.
마흔이 넘어가니 이상하게 명랑함이 사라진다. 잘 웃고 명랑한 것은 어린 시절만을 위해 있는 건 아닐 텐데 나이가 먹으면서 어쩐지 우울감을 느끼고 다른 여러 가지 어른이 되어야 하는 요소들에 명랑을 눌림 당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모두들 아이에게서 배워라는 말을 하는가 보다. 표현은 다 할 수 없어도 마음에 명랑함을 간직하고 있는 건 큰 재산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면서 부를 축적하기 위해 다분히 노력하고 배워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마음의 부를 축적하는 방법도 알아가야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자본주의의 틀은 돈이라는 현물이 쥐어지지만 마음의 부는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무엇으로 마음의 부를 쌓아볼까
그것도 복리로!
이 또한 눈에 보이는 웃음이 최고의 척도이지 않을까 싶다
많이 웃으면 마음이 부자가 되는 건 누구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것도 실천하지 않으면 잘 안되기도 하고 어렵다.
'명랑' 마음의 기쁨, 밝고 쾌활함으로 무장하면 또 어느 것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명랑은 우울의 반대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우울감이 생기기 쉬운데 우린 또 얼마나 반대를 좋아하는 청개구리 성품을 지니지 않았는가 반대로 가보자
'천진난만'이라는 꽃말을 지닌 채송화를 보니
작은 것에도 꺄르륵 꺄륵 웃던 어릴 적 생각이 더 난다.
올 가을엔 천진난만한 소년, 소녀가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