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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재발치료 7주 차

by 소망이

6주를 꽉 채우고 7주 차가 시작되는 시점에 다시 병원에 갔어요.

의사 선생님의 한결같은 질문 “좀 어떠셨어요?”라는 질문에 다행히 “이번 주부터는 괜찮아졌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약이 들어서 다행이네요. 조금 더 먹읍시다.”하시며 지난번과 동일하게 처방해 주셨고, 이제 4주 치 처방해 준다고 하셨는데, 우울증 약 복용 중인 첫째 딸과 자꾸 엇박자로 병원에 가야 돼서 이제 함께 다니고 싶어 15일 치만 처방해 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러면 다음부터는 같이 올 수 있으니 4주에 한 번씩만 오면 되거든요.

힘들 때는 병원 가는 날만 애타게 기다리지만, 약효가 들어 괜찮아지고 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게 되면 격주로 계속 가야 되는 것도 부담이 되더라고요.


이 글은 현재 시점보다 조금 더 전이어서 그 당시 블로그에 비공개로 써놓은 일기형식의 글을 참고하면서 작성 중인데, 7~8주는 더 이상 글이 없네요. 힘들 때에는 매일 나의 힘듦, 버팀, 낫기를 바라는 소망, 두려움 등을 쏟아내야 해서 매일매일 기록했는데, 괜찮아져서 일상을 살다 보니 글도 함께 안 썼던 것 같습니다.


요즘 AI가 인터넷 검색기록을 분석해서 우울증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제 생각에도 가능할 것 같아요. 제가 우울증이 다시 재발하려 한 시점부터 제 인터넷 검색어는 ‘우울증, 우울증 재발, 우울증 테스트‘로 도배되었었거든요.


괜찮아진 지금은 다시 원래 관심사인 ‘미니멀, 절약‘ 과 같은 키워드로 업데이트되고 있습니다.


언젠가 안타깝게도 또다시 재발이 되어서 헤매고 있을 미래의 저를 위해(안 그러면 가장 좋겠지만) 우울증 증상으로 힘들었을 때 제가 헷갈려했던 것들에 대하여 적어놓으려 합니다.


1. 조금 힘들고 이상한데 병원 가봐야 되나?

이미 우울증 진행상태이니 바로 가자. 그냥 지금 바로 패드 덮고 일어나. (참고로 제가 다니는 병원은 초진도 예약 없이 진행해서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정신건강의학과는 첫 진료 전에 검사할 것이 많아 보통 예약진료를 받습니다.)


2. 내가 원래 이렇게 재미있어하는 게 없었나?

아니, 지금 우울증이라 그래. 너는 글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영화 보는 것도, 드라마 보는 것도, 맛있는 것 먹는 것도, 대화하는 것도,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디카페인 라테 마시는 것도 좋아해. 심지어 빨래 개는 것도, 정리하는 것도 좋아한단다. 회복되고 나면 다시 재미있어질 테니 괜찮아.


3. 웃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내가 그동안 억지로 웃고 있었나?

아니, 너는 원래 잘 웃어. 미소가 너의 매력이잖아. 지금 힘들어서 웃는 것도, 걷는 것도, 심지어 노래 부르는 것도 숨 쉬는 것도 힘들지만 너 원래 미소가 예쁘고, 걷는 속도도 좀 빠르고, 노래도 좋아해. 숨 쉬는 것은 너무 무의식적이라 생각도 안 하며 살 거야. 괜찮아.


4. 조기 치매가 온 게 아닐까? 머리 쓰는 일이 너무 어려워.

아파서 그래. 넌 얼굴은 친근하게 생겼지만, 머리 좋은 게 재능이잖아. 지금은 전두엽이 많이 피곤하고 해마가 부피가 줄어들어 기능을 잘 못해서 그래. 회복되면 다시 빠르고 정확하게 업무하고 있을 거야. 이미 여러 번 경험했잖아. 겁내지 말고 이전에 그러했음을 기억하고 지금은 잠시 쉬었다 가는 시간이라 생각하렴.


5. 신랑은 우울증 걸린 나랑 헤어지고 싶어 할 것 같아.

신랑은 벌써 3번이나 버텨줬고, 너의 아픔과 회복되는 과정, 그리고 다시 원래의 너로 살아가는 모습을 다 지켜봐 왔어. 부모님 다음으로 널 끝까지 지켜주고 함께 할 테니 걱정하지도 말렴.


6. 우울증 때문에 출퇴근하고 일하는 것, 버티는 것이 힘든데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집에서 있어봤잖아. 글도 안 읽히고, 영상도 못 보겠어서 멍하니 하루 종일, 한 달 있어봤잖아. 햇빛 좋은 날 산책 한 번이 힘들어 못 나가는 널 자책하는 것보다는 힘들어도 출근하며, 퇴근하며 걷고 자극을 어느 정도 받는 게 회복에도 도움이 돼. 그리고 현실적으로 그만두면 병원 맘 편히 가지도 못하는 등 더 큰 걱정과 어려움이 너를 누를 거야. 그러니까 계속 잘 다니자.


7. 사람들과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소소한 대화하는 것이 어려워.

걱정하지도 마. 너 하도 말하는 것을 좋아해서 ‘경청‘에 관한 책을 찾아 읽을 정도였잖아. 회복되고 나면 다시 말이 많아져 조금 내 이야기를 줄여야 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을 거야. 이 참에 침묵을 연습한다 생각하자.


8. 잠을 너무 많이 자서 걱정이야.

뇌가 쉼이 필요해서 그렇고, 지쳐서 그래. 잠을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주구장창 자지 않아. 어느 정도 회복되면 더 침대에 누워있으라고 해도 못 누워있을 테니 그냥 잠 올 때 푹 자.


9. 뭔가를 결정하는 게 어려워서 쇼핑하는 것조차 힘들어.

회복되면 자연스레 필요한 것, 사고 싶은 것 잘 사고 있을 테니 이렇게 힘든 시기에 절약한다 맘 편히 생각해.


회복되고 나면 자연스레 원래의 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데 아직 치료받기 전, 약효가 돌기 전에는 우울증 걸린 내 모습으로 평생 살까 봐, 아니 이 모습이 원래의 내 모습인 것 같아서 더 좌절했어요. 다음엔 제가 쓴 이 글을 읽으며 저에게 말해주려 합니다. “괜찮아~ 다시 지나갈 거야. 아픈 거지 너의 성품과 재능은 지금 현재 안 보일 뿐이지, 그대로 아니 더 성장한 모습으로 잘 있단다. 그리고 다시 드러날 거야.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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