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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망이 Oct 29. 2024

사표를 쓰러 온 날 새로운 빛이 비쳤다.

IMF 생존기

2006년 4월의 어느 날 아침.

도저히 때려죽여도 일어나지 못하겠을 정도로 무기력했다. 그냥 이렇게 잠들듯이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어떻게든 나를 일으켜 세워 옷을 입히고 밥을 먹이고 출근시키던 신랑이 웬인일지 이날은 그냥 조용히 물어봤다.

“학교 안 갈 거야?”

“응, 나 사표 낼래. 도저히 더 이상 못하겠어.”

신랑은 나의 이마에 입을 살짝 맞추고는 불을 끄고 출근을 했다.

난 그렇게 하루종일 어두운 방에 누워 있었다.

‘그래, 이렇게는 못 살겠다. 그만 다니자’.


학교 교무부장님, 옆 자리 샘 등 여러 샘들의 전화와 문자가 왔지만 다 무시하고 안 받았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에 대고 너무 힘들다고,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고 했더니 “그만두는 것은 괜찮은데 내일 제대로 학교 와서 마무리는 해야지요 “라는 대답을 들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안 나오면 다른 선생님들이 보강 들어가고 너무 힘들다고~

‘그래, 내일 사직서 내고 끝내자.’


다음날도 여전히 마음은 납덩어리를 달아 놓은 것처럼 무거웠지만, 출근을 해서 사직서를 내야 이 끔찍한 고통이 끝난다는 마음에 느릿느릿 준비해서 겨우 출근을 했다.

‘아마 나를 보자마자 교감선생님은 다 큰 어른이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화내시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학교에 도착하고 떨리고 괴로운 마음으로 교감실에 들어갔다.

“교감선생님, 죄송해요. 저 아무래도 교사 못하겠어요. 사직서 제출하러 왔어요.”

“00 선생님, 많이 힘들었나 봐. 우리 기도합시다.” 교감선생님은 그렇게 말한 후 간절하게 내가 이 어두운 터널을 잘 빠져나가기를, 친정어머니가 잘 회복되시기를 기도해 주셨다.


‘어~ 이게 아닌데?’


이런 분위기면 사표를 어떻게 내지, 언제 내지 뭔가 애매모호한 마음으로 교무실로 들어갔다.

공강시간에 내가 속한 연구부 부장선생님이 나를 데리고 옆에 빈 교실로 들어가셨다. 나의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 나서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뭔가를 가지고 오셨다. 부장선생님의 은행통장들이었다.


“선생님, 저도 이러저러한 일로 빚이 많았지만, 계속 차곡차곡 갚아 나가니 이제 이만큼의 빚만 남았어요. 선생님이 지금 그만두면 신랑은 혼자 어떻게 그 빚을 다 갚아요. 맡은 업무는 우리가 나눠서 할 테니 나중에 건강해지면, 또 그때 우리 일을 도와주세요. 그만두지 말고 같이 해요. 도와줄게요. 맡은 업무 못해도 괜찮아요.”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영어과 선배샘이 점심을 사주셨다. 평소 의지하며 지냈던 터라 나의 마음상태, 우리 가정의 재정상태, 수업 등에 대하여 말씀드렸다. 다 들으신 후 선생님은 영어 잘 가르치지 못해도 괜찮다고, 알아서 학생들 다 영어 공부 한다고, 집의 빚 갚는 것 생각하며 힘내서 다니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런 약속을 선생님에게 했다.

“선생님, 혹시 제가 3년 뒤에도 계속 학교를 다니고 있으면 꼭 맛있는 점심 사드릴게요.”


다시 학교로 돌아와 오후 방과 후 수업까지 끝내고 오니 선생님은 나를 차에 태워 정신건강의학과가 있는 병원에 데리고 가셨다. 가서 그동안의 일들을 주욱 말하니 의사 선생님은 나의 상태를 그래프로 표현했고, 위아래로 요동치는데 파동이 점점 크고 깊어지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사실은 우울증이 걸렸다, 나았다 이렇게 반복을 했던 게 아니라 3년간 조울증을 겪었던 것이고, 지금은 가장 심각하게 무기력한 우울증 상태여서 약을 꼭 먹어야 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보통 이곳에는 가족이 환자를 데리고 오는데 선배샘이 이렇게 데리고 온 경우는 처음 본다고 신기해하셨다.


오늘 사표 쓰고, 내 삶은 이렇게 무너지나 싶었는데 상상하지도 못했던 많은 위로와 격려, 그리고 받아들여짐을 경험했다. 그동안 아무리 탄식하며 기도해도 나의 이야기를 하나도 듣지 않는 것 같던 예수님이 꼭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00야, 난 널 이렇게 사랑해. 내가 널 너무 사랑해서 오늘 이 분들을 준비해 뒀어. 난 네가 아무 선한 일을 하지 않아도, 네가 보기에도 꼴 보기 싫은 삶을 살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런 너를 너무 많이 사랑해.”


눈물이 펑펑 났다. 착한 크리스천 완벽주의자로 살며 하나님 앞에서도 꼭 부모님한테 그러듯이 말 잘 듣고, 착하게 이쁜 모습만 보여 드려야 인정받고 사랑받는다고 생각했던 나의 가치관이 와장창 깨졌다.

‘아~ 나를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구나. 그리고 지난 3년간 한 순간도 나를 떠나지 않으셨구나. 다 알고 보고 계셨구나.‘


이후 조울증 약을 먹었는데 한 달 만에 임신이 돼서 약을 끊었다. 다행히도 조울증은 치료되었고 그 후 재발하지 않았다. (원래 조울증은 약을 상당히 오래 먹어야 하는데 기적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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