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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망이 Oct 26. 2024

나도 버티다 버티다 조울증에 걸렸다.

4인 가족이 밥을 먹고살기 위해서는 단돈 100만 원이라도 벌어야 했다. 아직 졸업이 일 년 남았지만 교수님들께 양해를 구해서 시험 보는 날에만 학교에 등교하기로 하고 양재동에 있는 직장에 취직했다. 내가 하고 싶은 직업인 교사와 상관없는 반도체 수출 회사의 직원으로~

그나마 전공과의 연결고리는 외국에 있는 고객들에게 영어로 이메일을 보내야 된다는 정도였다.

벤처기업이 부흥했다가 점점 쇠퇴할 때여서 출근한 후로 한 달 한 달이 지날 때마다 일거리가 줄어들었지만, 우리 집에는 나의 월급이 너무나 절대적으로 필요했기에 월급이 안 나올 때까지, 쫓겨날 때까지 버티자는 마음으로 일이 좋으나 싫으나 버텼고, 결국 10개월 만에 회사가 문을 닫아 나와야 했다.


그 후로 대학 졸업을 한 후, 영어 유치원에서 영어 수업을 했다. 열악한 환경이어서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이 사용한 화장실 청소까지도 교사인 나의 몫이었다.  몇 달을 일하다가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나에게 잘 맞지 않는 것을 깨닫고 기간제 교사로 중학교에 지원을 했고, 합격하여 영어 유치원 일을 그만두었다. 그래도 이때 여러 명의 원어민 교사들과 교무실에서 대화할 일이 많아서 영어가 늘었다. 불행 중 감사한 일 찾기!

기간제 교사로 일 년 이상 근무하는 경우도 많지만, 나는 여름방학 때에는 교회 수련회, 해외단기선교 등을 참석하고 싶어 단기로 근무하는 학교를 찾았고 그렇기에 중학교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 가르쳤고, 지역도 수원, 안산, 평택 등 경기도 여기저기를 버스로, 기차로, 전철로 다녔다.

이렇게 일하며 번 돈에서 내 용돈만 제하고 엄마를 드렸고, 엄마는 그 돈을 또 쪼개고 쪼개 생활비를 하셨다. 아빠는 여전히 내가 번 돈의 일부, 그리고 빛을 낸 돈으로 계속 선물투자를 하셨다.


2002년 겨울, 내가 너무나 가고 싶어 하던 사립 00 학교에 드디어 일 년 영어 기간제 교사 자리가 났다. 너무나 간절히 원하며 기도했기에 공고를 보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제 나도 내 꿈을 향해 걸어갈 수 있구나! 간절한 마음으로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하여 우편으로 보냈고, 1차 서류합격 통지를 받았으며, 2차 면접 통과를 해서 2003년 3월부터 기간제 교사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나 꿈에 그리던 자리. 꿈을 이뤄도 끝이 아니란 것을 그때는 몰랐다. 몰랐기에 너무 힘들었다.

분명 내가 간절히 바라던 자리에 왔는데 똑똑한 고등학생들을 이른 아침(0교시가 그때는 있었다. 아침 7시 40분부터 수업 시작)부터 가르치는 것도, 나이차이도 얼마 안 나고 카리스마도 없는 내가 짓궂은 남학생들에게 놀림당하는 것도 여린 내 마음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수업준비하기도 벅찬데, 그 수업을 제대로 교실에서 실현하기도 어렵고, 맡은 업무도 어렵고~ 처음으로 시험문제를 내야 하는 기간에는 학교에서 자정이 넘어 퇴근하기도 했다.


학교에 적응하기도 힘든데 아빠는 내가 취직해서 이제 대출이 조금 더 수월해진 것을 활용하셨다. 학교가 조금 빨리 끝나는 어느 날 아빠는 나를 데리고 00 머니에 가셨다. 거기서 고금리의 대출을 나의 명의로 받으셨다. 매달 받는 월급에서도 용돈 조금을 빼고 생활비로 다 드려 돈 버는 맛이 없는데, 수업과 업무는 버겁고, 심지어 아빠는 내 이름으로 빚을 내셔서 선물투자를 하시니 정말 너무 삶이 재미없고 지쳤다.

그때즈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몇 달 사귀었는데, 배려 없이 차갑게 그에게서 차였다.  

내가 너무나 간절히 바라던 학교에 취직했는데, 이런 상황이 되니 학교를 그만 다니고 싶었다.

그렇지만 엄마의 직장암 치료를 위해 나의 건강보험증이 필요하고, 우리 가족이 살아가기 위해 내 월급이 필요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 우울을 버티다 버티다 몸의 진이 다 타버려 결국 조울증에 걸리고 말았다. 이후로 난 조울증을 3년 동안 겪으며 과한 흥분 상태와 죽는 것이 차라리 편할 것 같은 상태를 오가는 극도의 스트레스와 괴로움 속에 살아갔다. 모든 짐을 나의 작은 어깨에 짊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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