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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주 Oct 23. 2021

John Burr의 죽음을 애도하며

아무래도 존버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존버는 내가 키우는 스투키의 이름이다.) 존버의 화분에서 시큼한 냄새가 진하게 풍기길래 길다란 줄기를 살짝 당겨봤더니 '뽕'하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뿌리가 통째로 뽑혀버렸다.


그러고 보니 청록색의 영롱한 자태를 뽐내던 스투키가 생기 없는 연두색을 띠기 시작한 것도 벌써 몇 주 전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죽은 식물에 설탕물과 탄산수로 매주 정성 어린 부관참시를 하고 있던 셈이다. 미동도 비명도 없이 명을 다한 존버의 사체를 화장지에 고이 싸서 종량제봉투에 던져 넣었다. 존버는 자신의 이름처럼 존버하지 못한 채 떠나버렸다.


식물을 곧잘 시들게 하는 편이라며 구매를 망설이던 나에게 '이 녀석을 죽이기는 쉽지 않을걸요'라던 판촉사원의 도발 섞인 말이 떠올랐다. 햇빛을 많이 쐬지 않아도, 심지어 물을 주는 것을 까먹어도 된다기에 냉큼 구입했던 건데. 이름을 'John Burr'라 지은 것도 다 끈질기다는 생명력 때문이었는데. 그 쉽지 않다는 일을 가뿐히 해낸 스스로가 갑자기 한심하게 느껴졌다.


곱게 죽지 못한 존버의 망령이 이 집에 깃든 걸까.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끈 한 아티스트의 인터뷰 영상에서 뜬금없이 나무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나무가 죽으면'이라는 말로 시작한 두 사람의 대화는 통렬한 자기반성으로 이어졌다.


'집에 있는 나무가 죽은 거야. 잘 안 죽는 건데. 나무가 죽는 걸 보니까 내 생활 패턴이 나무에 대입해서 보이는 거지. 만날 늦게 자고 햇볕 안 보려고 암막커튼을 쳐두고... 아, 내가 잘못되고 있구나.'


'나무가 죽는 건 그만큼 내 생활에 여유가 없다는 거 같아. 내 거실에 놓인 나무 한 번 바라볼 여유가 없는 거야.'


소금과 우원재는 나무의 죽음이 곧 일상이 파괴됐음을 알리는 경고 같은 거라고 했다. 집에서 키우는 나무가 죽었다는 건, 본인이 그만큼 엉망으로 살고 있다는 걸 방증하는 거라고.


나는 존버의 죽음을, 일상이 망가진 나의 현실을 비겁하게 회피하고 싶었던 걸까. 존버의 생명력을 괜히 의심하며 구글링을 해봤지만 스투키 뒤에는 '키우기 쉬운'이나 '생명력 강한', '질긴'이라는 키워드가 뒤따를 뿐이었다. 나 또한 정말 엉망으로 살고 있구나. 내 삶도 정말 실시간으로 개박살이 나고 있구나. 여지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 보면 지난 두 달 정도를 청색과 적색 숫자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쉴새없이 오르내리는 일봉 차트를 종일 보느라 눈이 퀭했고, 계좌에 적힌 평가손익에 따라 희망과 절망을 수시로 오갔다. 어느 순간부터 주식과 코인 잔고가 꼭 온라인 맞고게임에서 사용하는 사이버머니처럼 보였다.


더 큰 문제는 주식과 코인에 발을 들인 뒤부터 어느 것에도 쉬이 재미를 붙이지 못한다는 거였다. 호가창을 들여다 보는 것 말고는 어떠한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물건들이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던 방은 어수선해졌고, 부지런히 향유하던 취미는 뒷전이었다. 행여 눈을 감은 사이에 손실이 날까 전전긍긍하며 제대로 잠도 이루지도 못했다. 몸과 정신을 갈아넣은 것의 대가로 작은 수익을 얻었지만 행복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비릿한 향이 풍겼다. 존버의 죽음을 발견했을 때 맡았던 죽음의 냄새, 삶이 엉망이라는 걸 알리는 냄새였다. 존버가 머물던 자리로 눈길이 향했다. 그 자리에는 아직 세 개의 화분이 더 남아있었다. 돈나무인 '도니'와 행운목 '로토토(로또 1등을 기원하며 붙인 이름이다)', 아직도 식물종을 알지 못하는 정체불명의 '청시'가 그것이다. 스투키까지 박살난 척박한 이곳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이들이 대견하면서 한편으로 불안감이 엄습했다. 저것들마저 죽어버리면 내 삶이 정말로 엉망진창이라는 걸 다시 한번 인정해야 할 것만 같았다.


존버의 잔해를 처리한 날, 스마트폰 메인에 있던 증권과 코인거래소 어플을 삭제했다. 오르내리는 양봉과 음봉이 나의 정신과 건강과 시간을 모조리 앗아가는 게 두려웠다. 존버가 무관심 속에 생을 마감했듯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일상을 서서히 죽여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장에 요행으로 얻은 몇 푼을 채워 넣는 것보다는 엉망이 된 일상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였다.


일상을 회복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세웠지만 실천은 소소하기 그지없는 일들로 가득했다. 이를테면 좋아하는 향의 핸드워시와 섬유유연제를 구입하거나 최선을 다해 머그컵과 티코스터를 고르는 일. 선호하는 향의 원두를 고르고 친환경 세제나 물티슈를 장바구니에 담아두는 일. 내 공간에 좋아하는 소리를 채우고, 읽을 책들을 나름의 순서대로 정렬하는 일들. 햇볕이 방안으로 쏟아지는 시간에 침대에 누워 멍하니 빛을 감상하는 일. 이런 시시하고 조잡한 행동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됐다.


작년부터 미뤄온 아침 루틴을 만드는 일에도 착수했다. 잠자리를 정리하고 창문을 열어 환기하거나 유산균과 물을 챙겨 먹는 것. 움직이는 족족 뿌드득 소리를 내는 관절을 눌러 풀어주는 등 별것도 아닌 일들을 성실하게 해냈다. 잃어버린 정신과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강한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걸 이제는 잘 알기 때문이다. 존버의 죽음 이후 나에게 일상을 살아가는 동력, 요즘 것들 말로 일상력이라고 말하는 그 힘이 알게 모르게 커져가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존버가 떠난 자리에 새로운 스투키를 들여놓았다. 존버가 아닌 것을 존버라 부를 수 없으니, 이름 옆에 Jr.을 적어두었다. 그러니까 신입 스투키의 이름은 존버 주니어다. 모쪼록 이번에는 이름처럼 존버할 수 있기를. 존버 주니어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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