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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주 Oct 23. 2021

세 번의 퇴사와 세 권의 오답노트

4대 보험의 온기 안으로 들어가게 된 건 이번이 벌써 네 번째다. 정기적으로 통장에 꽂히는 월급과 매일 출근하며 얻는 은근함 안정감이 생겼지만 마음 한 켠에서 왠지 모를 불안감이 솟았다. 지난 세 번의 입사, 그리고 퇴사를 경험했기 때문에. 무언가 큰 변화가 없다면 지난번처럼 관성적으로 퇴사를 반복하게 될까 두려웠다.


어떤 결심의 일환으로 출근길에 <일꾼의 말>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고민하는 일꾼들의 이야기. 마흔 명 일꾼이 일을 바라보는 저마다의 철학을 털어놓고, 두 명의 저자가 그것들을 잘 버무려 낸 비즈니스 에세이다. 일을 하러 가는 길에 일을 다룬 책을 읽는다는 게 조금 변태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몸이 회사로 배송되는 동안 직장인의 자아를 씌우려는 일종의 워밍업이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일꾼의 말>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어느 누구도 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동일하지 않다는 거다. '일꾼 1'은 회사는 알바생의 마음으로 다녀야 한다고 말하고 '일꾼 10'은 자신이 회사를 이기적으로 이용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디테일이 일의 전부라고 말하는 섬세한 '일꾼 28'이 있는 반면 일단 실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행동파 '일꾼 29'도 있다. 100명의 일꾼이 있는 곳에 100개의 직장 철학이 있는 셈이다.


직장인의 수 만큼이나 다양한 일의 방식이 있다는 것. 그러므로 절대적으로 좋은 일꾼은 없고, 상대적으로 좋은 일꾼만 있을 뿐이라는 것.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결국 이 두 마디가 전부인 게 아닐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나는 그동안 어떤 일꾼이었을까. (전지적 관리자 시점에서) 나는 제 연봉값은 거뜬히 해내는 좋은 일꾼이었을까.


직장을 옮길 때마다 우리는 다른 종류의 일꾼이 되기도 한다. 당장 나라는 인간부터 이직을 할 때마다 다른 일꾼의 옷을 입었다. 제대로 된 취업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어영부영 입사한 첫 직장은 주간 마감을 루틴으로 돌아가는 곳이었다. 그때의 일꾼 파주의 모습을 회상하면 정말로 엉망진창이었다. 학생 시절에 익힌 생존형 글쓰기는 정말 용돈벌이나 겨우 가능한 수준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글감을 찾아야 하는 그 직업이 내게는 매번 어색한 연기를 선보여야 하는 연극놀이처럼 느껴졌다.


덕업일치를 좇아 간 두 번째 직장에서는 열정이 과한 나머지 자신의 체력을 고려치 않은 채 달려드는 불나방 일꾼이었다. 몇 달 간 준비한 큰 프로젝트가 끝나면 퇴사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까만색 한강을 배경으로 콘서트의 끝을 알리는 폭죽이 터지는 순간, 나는 내 인생도 저렇게 터졌다는 생각을 했다. 그간 내 취향으로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망한 건 내 인생이 아니라 그 회사에서의 경력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에만 족히 두 달이 넘는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세 번째 직장에서 나는 '뭐해먹고 살지'만 고민하다가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일을 그르치고 마는 근심 만근의 일꾼이었다. 특히 이곳에서 실력도 재능도 아닌 끈기의 벽을 자주 느꼈다. 같은 문장을 끊임없이 읽고 고치고 다듬고 또 이리저리 뒤엎어 가며 일에 몰입하는 동료들이, 내 눈에는 성에 차지 않는 도기를 내던져 깨뜨려 버리는 (문장 깎는) 장인처럼 보였다. 시간에 있어 혹독할 정도로 효율을 따지는 나는 책을 만드는 일이 끈기라는 천재성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라 느껴졌다.


네 번째 직장에 입사하는 날짜가 다가오자 불안감이 증폭됐다. 정상적인 일꾼이라면 이쯤에서 퇴사 버튼을 봉인해야 했으니까. 더군다나 세 번의 퇴사로 회사나 환경 탓이 아니라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짙게 들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지나온 세 번의 퇴사 과정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한 거다.


직장인의 탈을 쓴 몇 년 동안 자잘한 업무와 밀려드는 프로젝트를 간신히 해치우면서 나는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를 맛봤다. 그러는 동안 내가 어떤 것을 잘하고 또 못하는지를 잘 알게 됐다. 일꾼 파주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도. 세월의 맛을 내는 국밥집이 매일 씨육수를 섞어내듯 비틀거리면서도 꾸역꾸역 출근하던 일꾼의 기질이 알게 모르게 축적돼 지금의 N년차 에디터 파주가 된 거다.


어쩌면 지난 직장에서의 퇴사는 세 번의 실패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나 자체가 인간 오답노트인 셈일 테고.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건 앞으로 정답을 단번에 찾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지난번과 똑같은 오답을 적어내는 일은 없을 거라는 거다.


이제 습관처럼 내뱉던 '뭐해먹고 살지'를 입에 담지 않는다. 대신 그 빈자리를 다른 고민으로 채웠다. 네 번째 직장에서 나는 어떤 일꾼이 될 것인가. 어떤 일꾼이 되고 싶은가에 대해. 쉬이 답이 나오지 않지만, 장고 끝에 꼭 악수가 나오진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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