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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주 Oct 23. 2021

불확신과 무능 사이


확신하지 말자.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는 얼마 전 품은 나의 좌우명이었다. 하필 불확신을 좌우명으로 삼은 이유는 후회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근거없는 확신과 판단으로 그르치는 일이 많았고, 후회하는 데에만 하루를 꼬박 허비한 날도 있었다. 그릇된 확신으로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불확신을 택했다. 불확신은 종종 나에게 있어 만능 쉴드 같은 역할을 해냈다.  


확신하지 않으면 불행이 찾아와도 '그럴 수 있지'라며 제법 의연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반대로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행운에는 곱절의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절대'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으면 입장을 번복하는 흑역사를 만들 일도 적었다. 그저 확신이 없던 것뿐인데 때로는 성격 좋은 사람이라는 반가운 오해를 받기도 했다.


물론 불확신으로 점철된 하루가 꼭 꽃길인 것만은 아니었다. 확신이 없으니 사소한 결정을 할 때에도 늘 애를 먹었다. 당장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만 해도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다. 자그마치 천만 명이 사는 이 도시에는 짬뽕 아니면 짜장면이라는 양자택일이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당장 내가 무엇을 먹고 싶은지도 희미하던 날도 많았다. 때문에 수십 가지에 달하는 선택지 사이에서 머리를 쥐어뜯게 되는 평일 점심이 늘 고역이었다.


불확신의 늪에 허덕이면서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취향에 은근히 자부심을 가지던 과거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든 것에 '좋죠 좋죠'라며 무의미한 동조만 거듭했다. 회사의 업무를 진행할 때도 불확신은 독이 됐다. A/B안을 준비하면 충분할 것을 자그마치 열 종류의 기획안을 정리하느라 시간을 잔뜩 허비했다. 전전긍긍하느라 기력은 소진됐고 기획안은 당연히 중구난방이 되고 말았다.  


뚝심을 밀고 나갈 의지가 없던 걸까. 아니면 선택지를 추려낼 능력이 모자랐던 걸까. 나의 상황이 불확신과 무능 중 어느 쪽에 가까운지 혼란스럽기 시작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이제는 왜 확신이 없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비극의 2막은 그날부터였다. 회사에서 *태니지먼트 검사를 받고 온 날, 수 백 개의 응답을 통해 나온 결과지는 내가 고장났다는 일종의 선고처럼 보였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열정' 항목이었다. 자신의 욕구와 인식을 보여주는 12가지의 태도 중 확신이 턱없이 낮았기 때문이다. 확신뿐만 아니라 자신감과 용기까지 바닥에 딱 붙어앉아 있는 걸 보니 있던 열정마저 사라지는 듯했다. '열정'이 바닥에 가라앉은 우스꽝스러운 결과지를 보면서 스스로가 꼭 스탯을 엉망으로 찍은 게임 속 '망캐(망한 캐릭터)'처럼 느껴졌다.


*태니지먼트 : 기반으로 개인의 강점과 재능, 태도 등을 진단하는 검사


그 뒤로 나의 모든 행동의 이유를 테스트에 나온 결과지에 의존했다. 스스로 확신이 없으니 고작 종이 쪼가리 따위를 맹신하게 된 거다. 내가 가진 강점과 약점, 업무 중에 벌인 실수와 사고까지도 죄다 자신감과 용기와 확신이 없어서라고, 마치 엉망진창이 된 일상이 나에게 정해진 숙명 같았다. 확신이 없어 회사에서 저지르는 실수와 무능이 더 잦아졌고 악순환이 길어질 수록 나를 향한 불확신의 뿌리는 깊어졌다. 


회사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배달앱을 뒤적이며 메뉴를 고민하거나 편의점에서 캔맥주 4캔을 골라야 할 때도 늘 불확신의 고통을 수반했다. 괴로움은 나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었는데,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한참을 망설이며 선택을 유예하는 것이 도리어 상대에게 큰 민폐가 되기도 했다. 애써 잡은 약속을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일도 잦았다. 약속을 깨자는 연락을 건넬 때마다 스스로를 '최악의 인간'이라며 자책했다.


여러 번 약속을 미루고 나서야 오랜만에 만난 후배A에게 불확신의 늪에 빠진 나의 근황을 전했다. 그러자 A는 자신이 겪은 일화를 처방해 주었다. 새로운 직장에서 기획 업무를 맡은 A가 (이전 직장에서 했던 대로) 자신의 판단을 배제한 기획안을 전달하자 기획안을 본 PD는 이런 피드백을 주었다고 말했다.


"A씨가 평생 조연출만 할 거라면 이렇게 해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저는 A씨의 취향과 안목을 믿은 거니까 기획을 맡긴 거예요."

지금 나의 직장도, 팀원들도 나의 취향과 안목을 믿고 있을까. 그렇다면 매번 확신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선택을 하는 게 곧 무능인 걸까. '취향과 안목을 믿어서 맡긴 것'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좋다'만 남발하던 내 모습이 꼭 밥값을 하지 못하는 모지리처럼 느껴졌다.


확신과 자신감, 용기 제로의 검사지를 확인한 상사가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매일 업무일지를 전달하면서 확신도 하나씩 덧붙여달라고. 1일 1확신이라니. 어쩐지 하루에 하나 착한 일을 기록하는 초등생이 된 기분이 들었지만 확신하는 방법을 잊은 내게 제법 잘 드는 처방전이었다.


처음 며칠 간은 확신 한 줄 채우는 게 쉽지 않았다. 엽떡은 언제나 옳다, 월급일 기념 과소비할 거다, 오늘 클라이언트는 A안으로 컨펌했지만 솔직히 나는 B안이 더 좋았다 등등... 허접한 말들을 마구 쏟아냈다. 하지만 사소한 것들이라도 꾸역꾸역 하나 둘 확신으로 채워나가는 게 꼭 재활훈련과 닮아있었다. 그 덕분일지 모르겠자만 조금씩이지만 불확신의 그늘 밖으로 벗어나고 있다. 오늘은 조금의 고민 없이 점심 메뉴를 주문했고 색깔을 고민하느라 한 달 동안 장바구니에 담아 놓은 운동화도 구입했다. 미세하지만 분명 나아지고 있다.


오늘은 그런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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