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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보다 Nov 20. 2019

'시'로 재증명된 아이유 음악의 신뢰감

'IU' 미니 5집 "Love Poem" 리뷰


‘작사가’ 아이유가 전면에 나선 뒤, 아이유의 초기 흥행을 이끌었던 ‘화려함’은 조금씩 자취를 감춰갔다. 대신 나긋하고 꿋꿋한 동시에 절제된 아이유의 자아가 뚜렷하게 남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유의 소망 · 의지 · 노력은 점차 설득력을 갖추기 시작했고, 리메이크 음반 발매와 <너의 의미>를 통해 보다 폭넓은 계층에게 다가섰다. 아이유는 본인 내면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여 폭넓게 수용한 뒤, ‘이 지금’의 자신을 그 때마다 온전히 담아냈다.


아이유의 음악이 항상 대중의 기대를 온전히 충족한 것은 아니었다. <너의 의미>, <스물셋>, <밤편지>, <팔레트>, <삐삐> 등의 행보는 당대의 트렌드나 청중의 기대치와 온전히 일치하지는 않았다. ‘잘 될 것이다.’라는 말을 함부로 입에 담지 않는 보수적인 사고와 언행을 유지했던 아이유지만, 그의 음악은 항상 조금씩 파격을 단행해왔다. 머물지 않으려 이쪽 저쪽으로 사고를 확장하고 장르와 음색을 바꿔냈다. 그럴수록 ‘아이유’라는 화자는 청자에게 더 또렷하게 형성되었다. 청중은 점차 ‘인간으로서의 아이유’에게 감화되기 시작했다. <밤편지>와 <삐삐>라는 양극단의 결과물들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각 곡이 갖는 것 이상의 설득력을 ‘아이유’ 스스로 충족했기 때문이다.


이번 미니 5집은 아예 ‘시’를 선언할 정도로 가사의 비중이 크다. 나긋하고 정성스런 은유가 가득했던 <밤편지>의 발전 혹은 확장적 형태로, 삶과 사람에 대한 고찰이 다채로운 시선으로 담겨 있다. 잘 짜여진 장난 같은 인생을 위로하고, 스쳐간 사람에 대한 잔상을 곱씹고, 사랑이 가장 화려하게 피어나는 순간을 노래했다. 어떤 이의 꿈 속에 찾아온 사람이 되어 잊힐 순간에까지 사랑을 노래하고, 함부로 위로할 수 없는 타의 인생에 그저 ‘살아 주기를’ 바라는 시를 부치며 마무리한다.


‘시’를 천명했기에 대체로 어쿠스틱하고 차분한 음반이 될 거라 예상했으나, 음반의 분위기는 다채롭다. 장난 같은 우연과 행운을 소거한 채로의 삶을 위로하는 <언럭키 unlucky>를 통해 <모던 타임즈 Modern Times>나 <이 지금>이 연상되는 발랄한 오프닝을 재현했다. 사랑의 만개를 파란 장미에 비유한 <블루밍 Blueming>은 모티프로 삼았다던 <백만 송이 장미>(심수봉)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전자음과 또랑한 발성으로 채웠다. 오래 전 판타지의 속편을 쓴 <시간의 바깥>은 ‘아이유-이민수’ 조합으로 완성된 독특한 판타지를 끊임없이 내달린다.


속도를 늦추고 톤을 낮춘 곡들 중 <그 사람>과 <자장가> 사이의 온도차는 꽤 인상적이다. 스쳐간 사람의 잔상을 담은 <그 사람>은 차갑게 가라 앉았고, 꿈속의 인물이 되어 사랑을 노래한 <자장가>는 <밤편지> 이상으로 따뜻하고 포근하다. 정반대의 어조가 한 음반 안에 구현되었음에도 위화감이 없다. 인간은 단편적인 존재가 아님을 감안하면 이해가 쉽지만, 그걸 음악으로 구현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아이유에게 익숙해져 있기에 쉽게 넘기는 사실이지만, 아이유는 각 곡마다 꽤나 변화무쌍하다.


20분이 조금 넘는 러닝 타임을 지나면, 선공개 트랙이자 이 음반의 주제를 담은 <러브 포엠 Love Poem>에 도달한다. 열 여섯의 아이유가 스물 일곱이 되는 동안 겪은 수많은 곡절을 아이유 스스로도 전부 늘어놓을 수는 없을 것이며, 그러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그다지 너그럽지 않은 아이유지만, ‘이기적인 토대 위의 이타성’을 토대로 만든 곡은 그다지 이기적이지 않다. 자신과 타인을 살게 하는 모든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를 ‘시’로 일컬은 아이유의 ‘사랑시’는 결국 서로가 서로로 인해 살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였다. <이름에게>에 담겼던 삶에의 숭고한 태도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곡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분위기 중심의 음악계에서, 아이유는 여전히 가사를 핵심으로 삼고 있음에도 아이유는 음악적 내실과 대외적 성공을 꾸준히 잡아내고 있다. 음악을 생산하는 조직적인 시스템이나 인위적인 틀을 벗어났음에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뚜렷한 주관을 바탕으로 스스로 작사와 프로듀싱의 길을 선택하는 동시에 긴밀한 소통으로 이를 설득해왔기 때문이다. 깊고 넓게 사고한 뒤, 그 결과물을 자기만의 어투와 필체로 담아 내고, 각 상황을 공감대 짙은 언어로 구현한다.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삶에 기인한 질문을 청중과 공유한다. 단순히 ‘가사도 쓰는 가수’ 수준에 머물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해석의 제한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역이 시’라는 음반 소개글에 따라, 섣부른 가사 해석은 싣지 않으려 한다. “러브 포엠”이라는 작품을 충분히 즐기고, 가사에 담긴 각자의 감상을 잘 간직한다면 그것으로 된 일이다. 다만 아이유라는 뮤지션에게 기대를 거둘 수는 없을 것 같다. 각종 언론 플레이와 포장의 수사들 사이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진가’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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