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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Feb 26. 2019

2월의 존재

 며칠 전 강아지의 눈에서 백탁을 발견하고 병원에 들렀다. 우리 집 강아지는 2009년 2월에 우리 집에 왔고 얼마 전에 열 살이 되었다. 강아지에게 열 살은 무서운 나이다. 나는 강아지를 안고서 속수무책으로 강아지가 백내장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필 가장 진행이 빠른 타입이라 이르게는 세 달 안에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을 수 있다는 말을 곱씹으며, 그 말의 무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조금 울고는 닭고기 캔을 네 개나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강아지는 안약을 넣는 내 손을 물었다. 아직은 완전히 하얘지지 않은 강아지의 눈을 바라보며 나는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2월은 아직 겨울이지만 봄을 준비해야 하는 달이다. 1월까지는 눈치채지 못했던 새해를 의지와 상관없이 비로소 감지하게 되는 달. 하지만 다시 찾아올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달. 무서운 속도로 따뜻해지는 날씨와 다르게 여전히 너무나 겨울의 풍경을 지닌 달.


 그런 2월에 우리 집 강아지를 처음 만났다. 그렇게 만나고 함께 맞이한 봄이 열 번, 여름도 열 번, 가을도 열 번, 겨울은 열한 번. 열한 번째 2월에 백내장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열한 번째 봄을 맞이하게 된다. 나는 강아지가 백내장 진단을 받고 맞이할 첫봄을 생각했다. 매해 찾아오는 봄에 강아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갈 때마다 나는 무에서 갖가지 색이 솟아나는 풍경에 새삼 놀라는 일을 반복해 왔다. 나는 항상 그 기쁨에 기꺼이 놀랄 수 있었다. 봄에 솟아난 연한 색의 생명은 한 해가 채 가기도 전에 사라져 버리지만, 그 연한 돋아남을 맞이할 때의 감정은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니까.


 2월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강아지가 옆에서 내 옆에서 쌔근거리며 잠을 잔다. 강아지가 곧 잃어버릴 시력과 무관하게 2월은 여전히 같은 박자로 흘러가고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우리 집 강아지는 내년의 봄을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올해의 봄은 보게 될 것이다. 따뜻하게 올라온 잔디의 냄새를 맡으며 기쁜 숨소리로 봄을 뛰어다닐 것이다. 매해 맞이하는 그런 봄의 풍경을 나는 올해도 놀라워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항상 사랑만 주는 강아지의 보드라운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고작 "봄바람을 쐬러 가자."라고 말하는 수밖에. 그저 네가 봄볕을 가장 편안한 곳에 누워 매일매일 만끽하길 바라는 수밖에. 너랑 같이 누워 그 모든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생각하면서 늘 사랑한다고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 수밖에.


 퇴근길 넓은 내리막길에서 마주한 커다란 산 꼭대기에는 아직 녹지 못한 눈이 하얗게 쌓여있었다. 그 풍경이 참 근사했다. 나는 곧 이 모든 마른 나뭇가지에 돋아날 연두색 잎이 나를 얼마나 조급하게 설레게 할지 생각했다. 채 녹지 못한 산 꼭대기의 눈은 아랑곳없이 연두색의 봄은 곧 마음껏 재빠르게 돋아날 것이다. 갑작스럽게 봄이 찾아오는 일처럼 항상 버거울 정도로 설레고 그래서 두려운 것들, 너무 좋아서 나를 아프게 할 것들, 너무 행복해서 나를 불행하게 할 것들. 어찌할 바를 몰라 서투른 2월의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아직 2월이어서 다행이고, 2월이 곧 갈 것이라서 다행이라고. 2월이 있어 벚꽃이 있고 새싹이 있고 아지랑이가 있고 또 그렇게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라고. 미처 녹지 못한 눈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봄은 오고야 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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