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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Apr 09. 2019

사랑하는 사람이 날 필요로 하는 경험

 한강 변에 심어진 버드나무에 새순이 돋아나는 계절이다. 연하고 보드라운 버드나무의 새순이 봄의 볕을 받으며 바람에 차르르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그 풍경이 꼭 사랑 같다고 생각한다. 아직 채 자라지 못한 연약함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 아무것도 바꿀 필요 없이 결핍된 상태로 받아들여지는 것. 내가 가장 미워하는 나의 일부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사랑을 받는 것.
 
 거짓말을 많이 하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곧 거짓말이 그가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체득한 하나의 방법임을 알았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이 처음에는 멋있었다가 곧 우스웠다가 나중에는 아주 아팠다. 그 사실은 나만이 아는 그의 아픔이었으며 나만이 치유해줄 수 있는 그의 나약한 특질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날 필요로 하는 경험은 삶에서 할 수 있는 경험 중 가장 기적 같은 경험이다. 그와 만나지 못한 이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나만이 눈치챌 수 있다 믿었던 그의 이면에 대해서 생각했다. 사랑의 관계는 상대의 그런 이면을 눈치채면서 시작되고 유지된다. 아무도 모르는 그의 아픔을 남몰래 들여다보았을 때. 아픔을 들여다보며 꼭 내가 아픈 것처럼 아파지고 말았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결핍과 눈을 마주치고 “너를 정말 사랑해.”라고 말할 자신이 생겼을 때. 사랑은 서로의 결핍이 가장 다정하게 마주하는 것이다.
 
 결국 그 어떤 사랑도 나의 결핍을 채워주지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이 날 필요로 하는 경험을 기다린다. 사랑했다는 일. 지하철 플랫폼에 앉아 나를 기다리던 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을 때 지었던 표정,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뚝뚝 떨어지던 돌담길을 너와 함께 걸었을 때 마주 잡은 손에서 느껴지던 온도,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잠든 네 얼굴을 언제까지나 보고 싶었던 기분. 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경험.
 
 버드나무는 사계절 내내 아름다울 테지만 막 봄이 찾아오는 지금 이 순간의 풍경이 곧 지나가리라는 사실에 나는 또 조급해지고 만다. 모든 풍경은 지나가기 마련이지만, 아마 어떤 풍경은 내가 손쓸 수 없이 마음에 남을 것이다.
 
 그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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