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족, 그리고 어느 한 남자의 사는 법
주택건축에서 지붕은 비바람이나 햇빛으로부터 건축물의 구조체를 보호함은 물론, 외부로부터 오는 뜨거운 열기나 냉기를 차단함으로써 실내온도를 적절하게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지붕의 구조를 어떻게 할 것인가, 단열 처리는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 환기장치는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등의 문제는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될 부분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 부분을 소홀히 합니다. 창호 하나하나의 단열성능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정작 실내온도 유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지붕에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지붕을 단순히 외벽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지붕도 외벽만큼만 단열 조치를 하면 어느 정도 단열이 될 것이라는 계산에서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외부열기의 차단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외벽은 일차적으로 지붕에 의해 그늘이 제공되는 부분이 많고, 태양이 이동함에 따라 햇볕이 쬐는 부분이 시간대별로 달라지며, 수직 형태이므로 열 축적이 적습니다. 그러나 지붕은 외벽과는 달리 종일 햇볕을 받으므로 열 축적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따뜻한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상대적으로 서늘한 공기는 아래로 내려오는 공기의 대류현상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한여름, 축적된 실내 열기는 상부로 올라가 열기를 식혀 다시 아래로 내려옵니다. 그런데 지붕의 열 축적이 커서 더 더운 열기를 내뿜는다면, 그 열기는 고스란히 실내로 전달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증막이 되기 쉽습니다.
이처럼 단열 조치가 부실한 지붕은 반대로, 겨울철에는 실내의 따뜻한 온기를 빼앗는 역할을 합니다. 난방으로 어렵사리 데워진 실내공기가 상부로 올라가 지붕의 냉기와 만나 급격히 차가워진 후 아래로 내려와서 실내의 온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런 실내 상층부와 하층부의 큰 온도차는 공기의 대류를 빠르게 합니다. ‘집에 위풍이 있다’라는 말은 이처럼 지붕의 단열 조치가 부실해 공기의 대류가 빠르게 일어나는 집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런 현상은 천장이 높으면 한층 더 크게 나타납니다.
한옥을 일컬어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고들 합니다. 그럼 한옥이 이렇게 이상적인 실내온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옥 지붕의 구조적 특징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옥의 지붕에 들어가는 부재를 천장 부분에서부터 살펴보면, 먼저 청판이라는 판재로 천장을 구성하여 천장과 서까래 사이에 일차적으로 공기층을 형성합니다. 서까래 위에는 개판이라는 판재를 얹고, 다시 개판 위에는 적심층을 만들어 잡자재와 진흙 등으로 채우고, 그 위에 강회를 바른 뒤 최종적으로 기와를 진흙으로 고정해 얹습니다. 이처럼 한옥의 지붕은 여러 층으로 구성될 뿐만 아니라, 특히 적심층이나 강회층은 상당한 두께로 시공되므로 필연적으로 단열성이 뛰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주택의 구조부재를 어떤 것으로 선택하든, 지붕의 단열 처리는 주택의 적절한 실내온도 확보를 위해 반드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입니다. 또한 축적된 열기를 효율적으로 배출할 수 있는 환기장치의 설치 또한 꼭 필요합니다. 특히, 여타의 부재와 비교해서 열전도율이 높은 콘크리트나 철골 등의 구조체일 경우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여행하다 보면 마을 곳곳에 들어선 전원풍의 주택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각양각색의 지붕들이 보입니다. 나름 상당한 비용을 들였을 법한 지붕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왠지 부자연스럽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지붕과 구조체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며, 나아가 주변 경관과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필자는 건축물의 지붕은 우리가 쓰는 모자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모자가 뜨거운 햇살이나 눈비로부터 우리의 머리를 가리듯, 지붕은 건축물의 구조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지붕의 본질적인 기능으로 앞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에 더해 또 하나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지붕의 외적 미관입니다. 사람이 모자를 어떤 것으로 선택해 쓰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돋보이기도 하고 품위가 떨어져 보이기도 하는 것처럼, 건축주가 건축물의 지붕을 어떤 형태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건축물의 외형이 크게 좌우됩니다. 제아무리 값비싼 모자를 쓰더라도 그가 입은 외투나 구두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아름다운 성장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큰 비용을 들여 지붕을 구성하더라도 건축물의 외벽이나 창호, 마당의 형태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아름다운 주택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붕의 외형과 관련해 또 하나 욕심을 낸다면, 그것은 주변 풍광과의 조화입니다. 멋지게 성장을 하더라도 그것은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도심의 사무실이나 번화한 거리, 연회장, 야유회장, 승마장, 음악회장 등 각각의 장소에 따라 그에 어울리는 옷들이 있습니다. 이렇듯 주택의 지붕 또한 그 집의 구조체와 어울리는 모습이어야 하며, 나아가 주변의 풍광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런 조화로움이 보이지 않습니다. 카우보이모자에 연미복을 입고 산행을 하는 꼴입니다. 그럼 어떤 지붕을 선택해야 건축물의 구조체는 물론 마당이나 주변의 풍광과 어울리는 집이 될 수 있을까요.
우선 집이 들어설 마을은 어떤 문화를 가진 지역인지, 부지가 평지에 있는지, 아니면 다소 언덕진 곳인지, 부지의 형태는 어떤지 등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스위스풍의 뾰족지붕이 산듯하고 멋있게 생각되더라도 만약 마을의 전체적인 지형이 평지이고, 게다가 전통적인 한옥이 많은 마을이라면, 그런 집은 좀처럼 마을 풍광과 어울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전원주택의 건축에는 여러 유형의 모델들이 차용되고 있습니다. 프로방스풍, 스위스풍, 덴마크풍, 북유럽풍, 또는 북미식, 일본식, 한식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주택모형들은 각 지역에서 나름 오랜 세월 동안 역사를 공유해온 사람들이 독특한 자연조건에 적응하면서 형성해온 주거문화의 소산입니다. 따라서 각 지역의 자연환경과 문화에 적응한 흔적들이 배어있습니다.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은 경사가 급한 뾰족지붕이, 바람이 많은 지역은 처마가 짧은 지붕이, 반대로 바람이 적고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지역은 처마가 깊은 지붕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 산이 깊고 높은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부지가 좁고 불규칙하므로 부지의 모양에 따라 건축물 구조를 맞추게 되어 지붕 또한 복잡해지고, 산그늘에 가려진 채광과 전망을 확보하기 위해 좀 더 높고 경쾌한 지붕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반대로 언덕 위나 평지의 지형은 산지에 비교해서 보다 안정된 부지를 확보할 수 있으므로 건축물의 외형이나 지붕 또한 안정감을 보이는 구조가 더 어울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체로 전원주택 건축에서 이런 부분을 고려한 흔적을 찾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기능이나 외형적인 고려보다는 제시된 모델 그 자체의 스타일만을 보고 집의 외형을 결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붕의 형태를 그때그때의 유행에 따라 너무 요란스럽게 꾸미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지붕은 건축 당시에는 멋있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곧 싫증을 느끼게 됩니다. 게다가 지붕의 외형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건축물의 전체적인 균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주변의 풍광과 조화를 못 이루게 됩니다.
지붕의 모양을 결정할 때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변의 풍광과 부지의 높낮이, 형태 등을 고려해서 결정하되, 될수록 단순한 형태, 오래도록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지붕으로 계획하는 것이 좋습니다. 집은 언제든 바꾸어 입을 수 있는 옷과는 다릅니다. 산뜻하고 깔끔하고 멋진 것이기보다는 넉넉하고, 아늑하고, 어느 정도는 만만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그런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안에 사는 사람이 편안할 수 있습니다.
한옥 구조로 단독채 건축을 계획하는 경우라면 팔작지붕 구조는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대부가의 전통 한옥건축에서 볼 수 있듯이 한옥은 넉넉한 마당 공간이 확보되고, 안채와 사랑채, 별당채, 행랑채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형태일 때 나름의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앞서 말했듯이 전통 한옥건축에서는 각각의 건축물 간 위계를 두어 지붕의 모양을 달리했습니다. 궁궐이나 사찰건축은 물론이고 일반 사대부가의 건축에서도 이러한 위계는 철저히 지켜졌습니다.
팔작지붕은 시각적인 효과를 위한 곡선 처리가 아주 커서 의장적 요소가 강하며 권위적입니다. 따라서 자칫 팔작지붕으로 단독채를 구성하게 되면 구조체에 비교해 지붕이 너무 높고 웅장하게 보여 전체적으로 덩그러니 드러나는 외형이 될 수 있습니다. 단독채 보다는 본채를 중심으로 별채나 창고 등 크고 작은 건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를 염두에 두고 지붕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만, 불가피하게 단독채로 구성한다면 ‘ㄷ’자나 ‘ㄴ’자 등의 형태를 취하면서 누마루나 툇마루, 창고, 다용도실 등을 적절히 안배하여 평면성을 높이는 것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구조가 될 것입니다.
콘크리트 주택의 경우, 옥상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평지붕으로 시공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추, 가지 등 텃밭에서 나는 농작물을 널어 말리거나, 야외 테이블을 설치해 삼겹살이라도 구워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함일 것입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옥상의 설치는 권장하고 싶지 않습니다. 옥상 설치로 인해 외관이 크게 훼손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누수입니다. 우리나라의 방수기술 수준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여러 주택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곤 합니다. 다른 부분의 하자와는 달리 이 부분에 하자가 발생하게 되면 여간 번거롭지 않습니다. 방수작업을 다시 해야 함은 물론이고, 빗물이 침투한 부분에 대한 물적 피해까지 감수해야 합니다. 주택건축의 경우, 소규모업체가 시공을 맡게 되므로 누수로 인한 피해보상은 물론이고 하자보수 이행조차 쉽지 않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 문제는 경사지붕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단열성능입니다. 구조적으로 평지붕은 경사지붕과는 달리 공기층이 형성될 공간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구조재료 또한 콘크리트이므로 열전도율이 높아 냉난방 효율이 현격히 떨어집니다. 게다가 수평 지붕이 받는 복사량은 다른 형태의 지붕이나 벽체보다 훨씬 더 커서 여름철 지붕으로부터 전달되는 열기로 인해 찜통 거실이 되기 쉽습니다. 실제적인 효용의 측면에서도 옥상이 그리 실용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마당이 없는 주택이라면 어쩔 수 없이 옥상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차라리 마당의 공간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