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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Oct 19. 2023

교대생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교대생 시절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었던 것 같다. 학생 시절의 나, 그리고 교대 졸업 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던 것처럼 나다움을 잃고 살았던 4년이었다. ‘잃어버린 4년’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인생에서 가장 똑똑하고, 건강하고, 열정 넘쳤던, 반짝였던 나의 그 시기를 허무하게 날려버린 것이 지금 나는 너무나 아깝다.


  우리 학교, 우리 과에는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온 아이들 뿐인 것 같았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학군지에서 고등학생 때 내신을 소수점 단위로 관리하고, 작은 쪽지 시험 하나에도 밤을 새워가며 목숨을 거는, 매일 화려하고 빼곡한 플래너에 시간 단위로 계획과 목표를 채우고 반드시 수행해내고 마는, 꼼꼼하고 성실한 사람들의 집합이었다. 나도 나름 학군지 출신이지만, 나는 천성이 게으르고 벼락치기를 즐겨하는 (아니 어쩌면 벼락치기밖에 할 줄 모르는), 원체 욕심이 없고 경쟁을 싫어하는 베짱이 스타일이라 그곳에서 살아남기가 조금은 버거웠다.

  나는 모르면 그냥 바로 백지를 내는 타입이었는데, 무릎에 커닝페이퍼를 펴놓고라도 쪽지 시험에 올인하는 동기들을 보고 있자니 조금은 숨도 막히고, 친분과 별개로 인간적으로 실망하기도 했다. 학점이 기대한 만큼 안 나오면, 교수님께 메일로 끝까지 따지는 동기를 보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내 학점은 4년 내내 바닥을 깔았고, 4년 학점 석차 하위 20~30% 정도의 성적으로 졸업했다.(교사가 된 후 '그만두고 지금이라도 로스쿨에 가 볼까'하는 생각을 종종 하다가도 이것 때문에 접을 수밖에 없었다.) 앞서 썼듯 내가 성적을 잘 받았던 과목은 서양화나 피아노, 리코더 등 예체능 과목과 에세이로만 학점을 받는 과목들 뿐이었다.


  갖가지 화려한 자격증을 딸 필요도, 대외활동을 다양하게 할 필요도 없는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예비 교사로서의 대학생 시절 동안, 나는 몇 달 해본 강남역 한복판의 프랜차이즈 카페 알바와 동기와 갔던 유럽여행을 제외하고는 과외, 연애, 친구들과 놀기 등 단순한 일상만을 반복하며 살았다. 다양한 대외 활동을 하고 정말 성실하고 바쁘게 사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당시의 나는 원치 않는 교대에 왔는데, 교대생의 장점이 스펙 쌓기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건데, 이거라도 제대로 누려야 덜 억울할 것 같아 순간순간의 편안함을 추구하며 아무것도 노력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대부분은 임용고사를 한 번에 다 같이 합격해서 똑같은 교사가 된다.)


  학업적인 면 외에 인간관계의 측면에서도, 대부분의 예민한 사람들 틈에서 나는 항상 눈치를 보고 마음이 불편했다. ‘좋은 게 좋은 거다’ 마인드가 풀장착된 나는, 웬만한 일에는 내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친구들에게 맞춰 주었다. 그 시절 함께했던 사람들에게 나는 정말 내향적이고 수동적인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을 것 같다. 친한 동기들이 갈등이 생겨 무리에서 한 명씩 떨어져 나갈 때마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고등학교처럼 좁은 교대생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소문’이라는 것을 최대한 피하려는 자세로 동아리나 과 활동을 전혀 하지 않으며 4년을 없는 듯이 조용히 다녔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자주 만나 놀았는데, 하루는 동기가 “넌 왜 이렇게 친구가 많아? “,  ”나는 고등학교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괴로운 기억이야. “라고 말했고, 친하게 지내는 다른 동기들 몇 명도 그와 비슷하게 얘기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이 단언컨대 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 말에 약간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이 그렇게 괴로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친구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고등학교 때 죽어라 공부만 열심히 하다가 교대에서 일반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덜한 학점관리나 스펙 쌓기에의 부담, 그로 인한 시간적 여유를 200% 즐기며 다양한 활동과 즐거운 대학생활을 하는 친구들도 정말 많았고, 항상 대단하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교대에서 배우는 공부도, 만나는 사람들도 무언가 답답하고 재미없다는 생각에 교대 생활을 즐기지 못했고 완전히 마음이 맞는 친구를 대학교에서는 사귀지 못했다. 내 성향과는 많이 다른, 거의 성향이 반대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느껴졌고, 어울리지 않는 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과 있다는 생각이 교대를 다니며 사라지지가 않았다.


  4학년이 되며 본격적으로 임용고사를 준비하기에 앞서, 스터디 그룹이 구성되는 과정에서 그전까지 꽤 끈끈하기로 소문났던 우리 과는 완전히 와해되었다. 같은 스터디가 아닌 동기들끼리는 점점 서먹해지거나 멀어졌다. 모두들 1년 동안 매일같이 아침 6시에 일어나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자정이 다 되도록 글자를 달달 외며 열심히 임용고사를 준비했고, 당시에는 요즘과 비교하면 티오가 꽤 넉넉했기에 웬만큼 열심히 한 사람들은 거의 다 합격을 했다. 그렇게 다 같이 졸업을 했고, 분명 모두 목표를 이루고 성공했지만 뭔가 씁쓸했다.  


  몇몇 선택 과목을 제외하고는 고등학생처럼 4년 내내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같은 과 동기들과 같이 수업을 듣고, 정해진 시기에 정해진 교생실습 커리큘럼을 따라가고, 4학년이 되면 임용고사를 준비해서 졸업하고 바로 첫 발령을 받는 것이 교대생의 보편적인 길이었다. 1학년 1학기에 자퇴한 동기 한 명을 제외하고는 우리 과에서는 4학년을 마치고 졸업할 때까지 휴학을 하거나 졸업하고 다른 진로를 찾아 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특수목적대학교이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지만, ‘교사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시국에 10여 년 차 교사가 된 지금, 동기들에게 물으면 지금 이 생활과 그동안의 과정에 만족하고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좋지 않은 기억은 쉽게 잊어버리게 되는데 나에게 교대 시절과 임용고사를 준비하던 시절의 추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듯하다. 교대가 정말 잘 맞았고, 즐거웠고, 아직까지 교대 동기들과 여행도 다니고 육아까지 같이 하며 끈끈하고 즐겁게 지내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나에게 교대란 처음부터 맞지 않는 옷이라는 생각이 커서, 무언가를 잘해보고자 하는 의욕이 생기지 않게 하는 곳이었다.


  가끔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러 명문대인 친구의 학교에 가서 캠퍼스와 도서관을 구경할 때면, 여기서는 매일 하루 종일 갇혀 있어도 공부가 막 하고 싶어 질 것 같다는 얘기가 절로 나왔다. 그게 으리으리한 캠퍼스 규모와 멋진 건물 때문이었는지, 내가 관심 있었던 다양한 분야의 책으로 빼곡한 넓고 고풍스러운 도서관 풍경 때문이었는지, 뭔가 나와 다르게 괜히 멋져 보이고 분주해 보이고 열정과 활력이 넘쳐 보이는, 자신이 뭘 좋아하고 뭘 배우고 싶어 하는지를 잘 알고 미래를 위해 젊음을 아끼지 않고 투자하고 있는 듯한 학생들의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내가 고등학교 3년 내내 꼭 호그와트처럼 생긴 모 대학교가 그려진 연습장을 썼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친구도, 학점도, 무언가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 본 경험도 내가 다른 학교에 진학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지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된 뒤에도 항상 상상해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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