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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Oct 19. 2023

결혼, 임신, 출산, 육아와 여자 직업으로서의 교사

  첫 학교에서의 마지막 해에 결혼을 했다. 당시에 처음으로 1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1학년은 학부모도 1학년이다.’라는 교직의 명언을 새기고 어떤 학부모를 만나게 될까 하는 걱정으로 시작했다.


  예상대로 3월에 처음 보자마자 대뜸 ‘선생님, 실례지만 결혼은 하셨나요?’하고 묻는 학부모도 어김없이 있었고, 어린이집에서 쓰는 키즈노트 댓글처럼 우리 학급 SNS 어플(알림장, 출결 관련 연락 용도)에 내가 묻지도 않은 아이의 방과 후 일과에 대해 ‘오늘은 하원(하교라고 해야 하는데)하고 00 아파트 놀이터에서 정글짐, 그네를 타고 놀았답니다. 블라블라~’ 등의 내용을 매일 정성껏 써주시는 학부모도 있었다.(나는 그때 미혼이고 아이도 없으니 키즈노트라는 것도 잘 몰랐고, 처음엔 이 얘기를.. 지금.. 왜 해 주시지..? 하고 매우 의아해했다.) 일과 중에 연락도 없이 오셔서 앞에서 열심히 수업하고 있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갑자기 교실 뒷문을 벌컥 열며 큰소리로 “00야~” 하고 자녀를 불러 집에 두고 간 물건을 전달해 주고 가는 학부모도 있었다.

  

  부모가 된 지금의 나는 그들의 그런 언행이 어떤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아주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이런 것들이 정말 무례하다고 생각했고 싫었다. ‘절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릴 일은 없게 하리라.’ 다짐으로 무장하고 철저한 자기 관리, 신상관리(?)를 하며 1년을 보냈다.


  교사들끼리 ‘교사는 돈 없는 동네 연예인’이라는 우스갯소리를 종종 한다. 돈은 못 버는데, 일거수일투족이 동네에 쫙 소문이 나고 루머와 뒷담화가 따라다닌다. 결혼을 한다고 하면, 신혼여행으로 일주일 자리를 비우면 한동안 또 얼마나 떠들썩해질까 하는 마음에, 철저히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나는 6학년 담임을 몇 번 했었고 정말 사이가 좋았어서 졸업생 제자들이 꽤 자주 찾아왔는데, 사실 내 로망 중 하나는 첫 제자들을 결혼식에 초대하는 것이었다. 교복을 단정히 차려입고 축하해 주러 온, 몸만 훌쩍 커버린 내 영원한 초딩들과 같이 단체사진도 찍고, 합의가 된다면 까불이들에게 축가 한 곡도 부탁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을 초대하면 아직 학생이기에 부모님들의 허락도 받아야 하니 초품아 지역에서 형제자매와 친구들을 통해 학부모님들 사이에 소문이 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고, 그것만큼은 너무나 싫었기에 결국 난 내 오랜 로망을 포기했다. 우연찮게도 마침 내 신혼여행 시기 바로 전 동학년의 원로 선생님께서 일주일 간 출장 연수를 다녀오셔서, 자연스레 나도 출장 연수 일주일을 가는 것으로 얘기를 했고, 그렇게 소문이 났다. 그래도 졸업생 제자들을 통해 알 분들은 다 아셨겠지만, 어쨌든 우리 반 아이들이나 학부모님들에게서는 결혼 얘기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졸업생 제자들이 "선생님.. 어떻게 저희를 초대 안 하실 수가 있어요.." 하며 나중에 너무 서운해해서 미안했고 나도 너무 아쉬웠지만, 교사는 말마따나 돈 없는 연예인이기에, 또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는 걸 극도로 혐오하는 그 당시 나로서는 그래야만 했다.


  시간이 흘러 학교를 옮기고, 임신을 했다. 코로나가 터져 원격 수업과 대면 수업을 번갈아 했고, 그 덕에 원격 수업일에 입덧이 너무 심할 때에는 재택근무를 한두 번 하기도 했었다. 때마침 원래 임신 기간 중 특정 기간에만 쓸 수 있었던 단축근무인 ‘모성보호시간’의 기간이 확대되어 임신 기간 내내 2시간 일찍 퇴근을 할 수 있었다. 어른들이 그토록 입에 닳도록 말하셨던 ‘여자 직업으로 최고다’라는 말이 처음으로 피부에 와닿았다.


  휴직도 아주 수월했다. 비록 담임이 아니었어도 선생님이 학기 중 자주 바뀌는 것이 좋지 않으니 최대한 근무일을 맞추기 위해 무려 출산을 일주일 정도 앞뒀을 때까지 출근을 하긴 했지만, 주당 24시수라는 엄청난 시수의 수업을 만삭에 마스크를 쓰고 해내야 했지만, 일반 회사에 비하면 다시 돌아가는 것에 대한 걱정이나 동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휴직할 수 있었으니 이 정도면 실로 엄청난 복지였다.


  그 후 내 휴직 기간 중에 ‘육아시간’이라고 하는 육아기 단축근무 제도 또한 개선이 되어, 한 달에 딱 하루만 써도 1개월을 쓴 것으로 간주되어 월 단위로 차감되던 방식에서 일 단위 차감 방식으로 바뀌었다. 일반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제도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내가 복직해서 일한 한 달 동안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매일 2시간씩 육아시간을 상신할 수 있었다.(상신은 자유로웠으나 할 일이 너무 많아 한 번도 2시간 전에 퇴근해보지는 못했긴 하다.) 많이 이른 퇴근(출근도 이르긴 하지만)과 자유로운 휴직, 방학까지. 육아를 하기에 최고의 직업인 것은 분명했다.


  어쨌든, 나도 휴직이라는 것을 해보다니, 그것도 스트레이트로 2년이나! 신기하고 설렜다. 미혼일 때는 동기들과 만나면 너무 휴직하고 싶은데 쓸 수 있는 사유가 없다며 항상 한탄했는데. 학교 일에 흥미도 미련도 없었던 나는 그렇게 물 흐르듯 편안하게 교사의 최고 복지인 휴직 파라다이스에 입성하게 되었다. 아기를 조금 일찍 낳아 이미 3년째 휴직 중이던 교사 친구가 너무나 강력 추천하던 휴직 라이프가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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