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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Oct 19. 2023

첫 학교

  신규 교사에게 첫 학교의 의미는 어쩌면 교직 인생의 팔 할 정도로 중요하다. 어떤 선배들과 관리자, 동학년, 학생, 학부모, 업무를 만나느냐에 따라 정년까지 한다면 40년에 가까운 교직 생활이 어떻게 흘러갈지 첫 학교에서 정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매사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별 걱정없이 임한다. 신을 믿지 않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살면서 항상 위기의 순간에 어떤 신이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다. ‘아, 이번에는 진짜 좀 힘들겠다.’ 싶은 시기에도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걱정했던 부분이 오히려 더 좋은 일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나는 애매한 시기에 중간 발령으로 첫 학교에 가게 되어서 불미스러운 일로 담임이 교체된 자리에 가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교직 인생에서 최고로 궁합이 잘 맞았던 아이들을 만났고, 심지어 중간 발령은 통근 거리가 고려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데 집에서도 가까워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비록 5년 반 동안 내 밑으로 후배가 발령 나지 않아 막내 타이틀을 끝까지 갖고 있어야 했지만, 막내인 게 감사할 정도로 너무나 배려받고, 사랑받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어 행운을 넘어 천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난하고 평화롭고 쾌적한 학군, 적은 편인 학급당 학생 수, 급식실이 있으며 여유 있는 특별실 및 유휴교실, 관리가 잘 되어있는 순하고 착한 학생들과 대부분의 상식적이고 따뜻하신 학부모님들, 악명 높지 않은 융통성 있는 관리자 분들, 해가 갈수록 학급경영과 수업에 자신감을 가지게 될 만큼 잘 가르쳐주시는 선배 선생님과 부장님들 그리고 동학년 언니들을 만날 수 있어 복이었다.(특히 이때 배운 6학년을 무섭게 잡는 스킬이 내 주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첫 학교를 떠난 지도 몇 년이 흐른 요즘도 가끔 동기들을 만나면, 그때 내가 우리 학교의 부장님들 자랑을 그렇게 많이 했다고 동기들이 말할 정도로 감사했고 좋았다. 퇴직이 가까운 원로 선생님들께서도 다녀본 학교 중 여기가 제일 무난하고 좋은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할 정도로 여러 모로 좋은 학교였다.


  첫 학교에서 만났던 우리 반 학생들은 지금도 출석번호순으로 줄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한 명 한 명 너무나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담임을 맡으면 항상 아이들에게 새 학년 첫날 마지막 멘트로 ‘우리 반이 우리 학년 중에서도 최고, 너희의 0학년 중에서도 최고의 반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라고 말하곤 했는데, 학년 말이 되면 아이들과 나도, 아이들끼리도 끈끈해지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 지킬 건 지키는 관계가 되며 나도 아이들도 정말로 그렇게 느끼게 되었다.


  졸업이나 진급을 시키면서는 매년 다 같이 엉엉 울었고, 학년, 학교가 바뀐 뒤에도 정말 자주 찾아왔다. 학교의 외부인 출입을 관리하시는 보안관님께서도 졸업생들이 많이 찾아오는 걸 보니 참 좋은 선생님이었나 보다 하시며 귀찮으셨을 법도 한데 호의적으로 많이 도와주셨다. 마지막 해에 1학년을 하고 전근을 갔는데, 전근 간 학교로 귀여운 편지도 몇 통 배달이 와서 괜히 뿌듯하기도 하고 그립기도 했다.

  운이 좋게도 교원평가에서도 나쁜 말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학부모님들께서도 학생의 동생 담임으로 다시 뵙고 싶다는 말씀을 많이 해 주셨었다. (좋았던 것을 쓰고 보니 무슨 내가 훌륭한 참 교사인 양 쓰인 것 같은데 사실 신규 때는 숨만 쉬어도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젊다는 그 자체로 좋아해 주신다.)


  교사를 그만둔 지금 생각해 보면, 첫 학교에서 너무나 좋았기에 그 추억을 먹고 그래도 안 맞는 교사 생활을 여기까지는 이어올 수 있었구나 싶기도 하고, 어쩌면 너무 좋은 학교를 맨 처음에 맛봐서 다음 학교로 갈 때마다 더 실망했던 걸까 싶기도 하다. 어찌 됐든 나라는 사람 자체의 인생에서든 교사로서의 인생에서든 가장 중요하고 값진 시기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만둔 사실을 전하면 지인들은 하나같이 “너 처음에 있던 학교에서 애들이랑 엄청 잘 지냈잖아! 옮긴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라고 할 정도로 나의 첫 발령과 신규 교사 시기는 꽤 성공적이었고, 운이 좋았고, 보람찼고, 행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하루하루 내가 맡은 학급에 최선을 다할 뿐 나는 교대생 시절과 마찬가지로 딱히 나의 교직 커리어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예컨대 대학원 진학이라던지, 수업연구대회나 교육력제고팀 등의 활동에 참여한다던지, 1급 정교사 자격연수 점수를 잘 받고자 한다던지 등의 노력을 하고 싶은 마음까지는 생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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