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남작가.
커피 두 개씩 탈까요? 우리 딸이 이거 두 개씩 타라고 신신당부하던데.
[네 고맙습니다]
유튜브는 처음이에요. 나 사실 아무것도 준비 안 하고 있었어.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하면 돼요
[작업실이 굉장히 멋지네요]
그렇죠? 여기는 작업실이고 저쪽이 수장고에요. 수장고 먼저 보고 올래요? 보고 차 마실까요.
[네, 너무 좋아요]
[수장고에 이렇게 많은 강아지 작업들은 뭐예요?]
2003년도 인가. 신문을 보는데 천스물 다섯 마리 유기견을 보살피고 있는
이예신 할머니 기사를 보는 순간 아 다음 작품은 이거다! 이렇게 결정을 했어요
그분을 보는 순간, 너무 노벨평화 상감이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분 가서 만났어요. 물론 유기견이 막 때로 몰려와서 놀랬죠.
무섭기도 하고.. 그런데 자기가 사는 집을 데려가더라고요.
침대하고 이쪽에 열 평도 안 되지 다 여섯 평 당신 침대에 개가 꽉 차 있는 거야.
'어떻게 주무세요'물어보니 쓰레기봉투 두 개를 덮고 이불 덮고 그러고 그 위에 애들이 잔대요
그 얘길 들으니가 그림 그린다고 호사스럽게 산 나 자신이 부끄러운 거야.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거예요.
내 나이는 알죠? 이제 두 살 됐어ㅎㅎ
[네. ㅎㅎㅎㅎ82세... 그런데 너무 잘 걸어 다니시는(?) 거예요 너무 놀랐죠]
일부러 곧으려고 노력해요 정말 고백하건대 그림 시작하면서 운동했거든. 다른 운동 아니라 걷기
한 시간씩 꼭 걷고. 빠지면 큰일 나요
그림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닌 거 같아. 몸으로 하는 거 같아.
[건강해야 그림을 그릴 수 있죠]
[선생님 머리는 어디서 해주는 거예요? 카카 언밸런스한 게 멋있어서]
미용실에서 해주죠(웃음) 한... 십 년 다 되어가요. 생머리.. 그때부터 언밸런스..
뭔가 좀 근사해져야 하니까... (웃음)
사실은.. 이쪽 뺨이 커요. 이쪽 뺨보다. 얼굴이 삐뚤어졌어.
그래서 이쪽 머리로 가린 거예요. 사실은 그렇게 시작한 거예요.
별 얘기를 다하네.
[음주나 흡연은 하세요?]
담배 하나 피고 할까요?
[건강을 위해서라도 가족분들이 금연하라고는 안 하세요?]
사실 남편이 끊으라고 보너스까지 줬는데 십몇 년 전에 삼 년 끊었다가 다시 피우게 됐지.
작업하는 사람들은 그게 안돼. 이게 친구야
그래서 우리 남편이 보면 돈 도로 내놔 이럴 수도 있어 괜찮아(웃음)
[선생님은 1세대 페미니즘과 지금 세대와 페미니즘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하시죠?]
무슨 생각이든지 세월이 지나면 바뀌게 되어있어요. 그래야 발전하죠.
며칠 전에 만났어요. 젊은 페미니스트들을..
나는 너무나 기특한 거예요.
그분들이 나를 볼 적에 나는 고리타분한 페미니스트지.
[페미니스트가 아닌 여성도 있을까요?]
나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설마 여성으로 한국이라는 특수한 지형에 태어나서 어떻게 페미니즘 자체에 무관심할 수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요.
항상 나는 내 생각만 옳다고 규정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걸 바른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너의 주장도 너의 주장인가 봐 '
여자로 태어나서 어떻게 이 현재 이 시점에서 페미니스트가 안될 수가 있을까 나는 이해를 못 하겠지만
그것도 그 사람 삶이라니까. 그런가 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국민학교 3학년 때 일을 잊을 수가 없어요
나는 만주에서 태어나서 여섯 살 때 한국으로 돌아왔지.
워낙 그림을 어려서부터 좋아했었어.
선생님이 칭찬을 많이 해줬었어 6.25전이야
국민학교 때부터 3학년 때인데 그건 잊어버릴 수가 없어.
그때 6.25전이니까 크레용도 없어요. 7가지(색상) 그것밖에 없었어
선생님이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
3학년 때 선생님 아주 예쁜 선생님이야 기억도 안 나
다른 건 다 잊어버렸는데 너무 감사해
어느 날 미술시간에 제일 이쁜 아이를 불러내서 우리 보고 그려내라는 거야.
그 자주색 스웨터를 입은 게 기억이나.
햇빛이 쫙 들어오는데....
걔가 얼굴이 하얀 애야. 나는 얼굴이 까맣잖아 앉아있는데 너무 이쁜 거야.
그런데 자주색을 애들이 못 그려.
나는 깜장하고 빨강하고 섞으면 자주가 되잖아요.
그걸 알고 자주색을 만들어 그렸는데
그래서 신나게 그렸던 기억이 있어요
어쨌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야 했어
[책을 읽으시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난 이상한 소설까지 다 읽었어요. 아직도 속상해. 글을 못 쓴 거.
[좋아하는 소설가가 있으신지요]
옛날에 많았는데 지금은 다 잊어버렸네.
뭐 유명한 사람은 다 좋아했지
아....
그런데 난 사실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그게 아니란 걸 알았어
20대부터 30대 후반까지 글 쓰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 신인 공모를 하는데 자꾸 떨어져.
떨어지고, 떨어지고.. 노력했는데 자꾸 낙선하고 그러니까 좌절하면서
나는 아닌가 보다. 난 왜 살아야 하지?
어쨌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야 했어. 가정생활은 아닌 것 같아.
나는 밥하고 청소하는 걸로 만족할 수가 없어. 윤석남은 존재하잖아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한 그림 쪽으로 해야겠다.
안 하면 못 할 것 같다. 시작을 안 하면 내가 왜 존재하지는 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존재 이유를 찾는 거죠
그게 그림이었어요.
마흔 살이 되던 해에 남편한테 그랬죠.
윤석남 - "나 그림 시작할래"
남편 - " 누가 말리냐. 하고 싶으면 하지..."이랬어요
외조… 외조라고 하는데 다른 건 없어. 우리 남편은 독립적인 사람이야.
당신이 하고 싶은 거 해야지. 그 대신 살림은 해줘야지 월급 주니까.. ㅎㅎ
[남편분이 대단하시네요. 그 시대는 여자가 나댄다는 생각을 하는 게 사회 분위기 일 텐데요.]
그럼요. 그렇게 해주는데 고맙지. 그것만큼은 감사한 것 같아요.
그 사람 아니었으면 내가 왜 여기 있겠어. 나를 인정하기 때문에 여기 있는 거지
그때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너는 여자다'라고 하면서 무시를 하면
내가 왜 그 사람하고 연애를 했겠어.
어머니 이야기
[선생님이 40세에 시작한 첫 전시, 어머니라는 주제로 하셨지요]
우리 어머니가 둘째 부인이야. 상소리로 이야기하면 첩이었죠.
그렇지만 그렇게 사람한테 정직한 분이야.
얼마나 정직한 분이라 하면 남한테 십 원을 꿨으면 몇 년 후에라도 갚아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에요.
그런 어머니를 나는 존경해 아버지보다.
당신 39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거든
그런데 아무것도 없어. 집도 없고, 절도 없고.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애가 여섯인데도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가르치시고 ...
지방에서 올라오는 보따리 장사 아줌마 있잖아요. 그럼 우리 집에서 다 자고 잤었어요
일주일씩 열 흘씩. 다 같이 밥 먹고 방 두 개짜리에서 애가 여섯인데 끼어서 주무시고 이랬죠.
우리 어머니가 그랬어요.
[굉장히 자비로운 어머니셨네요]
당신이 그런 위치에 있다는 걸 숨기지 않았고 나는 이렇게 살았다.
자식들에게 이야기하고 너희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굉장히 정직한 분이에요
우리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이에요.
우리 어머니를 무시했으면 숨기고 살려고 했겠지.
난 아직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울컥해요...
난 이게 세상에서 태어나서 참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엄마를 내 엄마를.. 내가 택한 건 아니지만...
우리 어머니가 한국 여성의 대표성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선생님은 어머니의 어떤 것을 닮은 것 같으세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있어야 한다고 배웠어요.
그리고 나는 또 그게 좋아요. 나도 물론 중요하지만 타인도 중요하잖아.
그렇지만 또 한편 나는 그에 반해 이기적이죠.
자기 일만 해야 하는..
화가니까 이해하죠? 이건 이기적이 아니면 못해요.
오로지 나. 오로지 나 아니면 작업을 할 수가 없어.
나의 이기적인 삶이 굉장히 대조적이죠.
어머니는 어쩜 그렇게 아무 말도 없으셨을까...
[자신이 그려진 전시를 보고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나요?]
아무 말도 없으셨다고...
어쩜 그렇게 말씀이 없으셨지.. ?
.... 뭐.... 열심히 했다. 이런 말씀도 없으셔...
얘가 왜 그림을 그리나... 차마 그런 말씀을 못하셨고..
내 생각에는 사위에 대한 빚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
살림만 열심히 하지 않는 이 여성...
어머니 사고방식은 아무리 내가 어머니를 존경을 해도 사고방식은 한정돼있잖아.
여성의 할 일 그런 거 있잖아
아기 잘 키우고 가정 살림 잘하고 그런데 엉뚱하게 그림 그린다고 해서 살림 팽개친다고 생각을 했겠지.
그래서 사위한테 굉장히 항상 말 한마디를 못하셨어
지금은 이해를 못 할 거예요... 미안하고 그런 게 있었겠지. 고맙고 미안한 감정
나는 못된 엄마
[그렇다면 선생님은 어떤 엄마였어요?]
못된 엄마.
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까지 굉장히 저항적이었어요. 그 아이가 나한테 왜 그랬을까. 뻔하죠. 맨날
내가(딸아이가) 집에 오면 엄마가 맨날 작업실에 가 있고 ..
쟤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집에 와서 학교에서 오면 같이 좀 놀아주다가 나는 작업실 갔어.
그러니까 아이 입장에서 봤을 때는 엄마같이 다른 엄마와 다르잖아요.
그래서 쟤가 좀 저항적이었지.
그런데 크니까 너무 친구야.
여성으로서 최초로 이중섭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삶의 터닝포인트라든지? 그런 기회들이 있었나요]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왔어
"당신이 이중섭 상 받게 되었습니다."
누구래? 나는 만나본 적도 없는데 이상한 일 아니에요?
이 사람들이 왜 나한테 상을 주지? 그렇지 연고도 없고 위원장 얼굴도 몰랐어.
사실 그때 죽을 둥 살 둥 했어요. 그림만 했을 때니까.
상주니까 받아야지.. 돈 오백만 원 주면.. 큰돈이었어.
그러니 '우와' 하고 받았지.
그런데 그 나도 지금 생각하면 어ㄸ허게 이중섭 상.. 여자로선 최초에요
어떻게 윤석남한테 상을 줘요? 나는 굉장히 운이 좋은가 봐. 그림도 운이 따라야 하나 봐...
[작품이 점차 변화를 하기 시작해요]
엄마 이야기를 하고 나니까 '내 얘기를 이제 해도 돼 윤석남, 이제 네 이야기를 해도 돼. '
그래서 핑크 룸이 만들어진 거죠.
핑크 룸. 사람들이 오해를 하더라고 부드럽고 따듯하고 저게 핑크색이 형광 핑크에요.
그래서 아름다운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 자존도 없이 떠있는 여성 이야기거든요
그림 시작하기 전에 내가 그랬다고.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저 핑크가...
전시 많이 했죠. 한지로 만들어 놓으려고요. 많이 팔았어. (웃음)
그래서 요새 좀 손 안 벌리고 사는데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는 뭐가 필요한가요]
나는 처음에 시작할 때 내가 굉장히 재능이 있어서 시작한다고 생각했어요.
재능이 있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나는 할 수도 있고 내가 죽을 둥 살 둥 하면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될 수가 있어.
말은 안 했겠지만 내면으로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바뀌었어요
지금은 재능이 아닌 것 같아.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냐면 재능은 몇 퍼센트밖에 불구하구나.
재능보다는 열정인 것 같아. 무조건
[열정이 왜 중요할까요?]
왜냐면 나보다 더 재능이 많은 사람은 관뒀어. 그림을 다 손들었어.
중학교 때 전교에서 제일 잘 그리는 애가 있었어. 선생님이 맨날 걔 그림을 칠판에 칭찬했어.
나는 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나는 쟤한테 당할 수가 없어서 좀 빨리 포기했지.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 한 거고.
그 친구가 결국 홍대 나오고 홍대 대학원을 나왔는데... 결국은 관두는 것 보니
지금은 손재주가 아니야. 열정하고 뭘 이 시대에 뭘 그려야 한다는 생각..
그 생각이 중요한 거 같아.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래도 상관없어요.
결과는... 지금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할 수 없어. 그렇지만 해야 돼
이거는 사회의 마이너스는 아니잖아 사회에 플러스잖아
그럼 내가 살아있는 거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그거에 대한 내가 열심히 해야 하만 보답이 가능할 것 같아.
지금은 때가 아닐 수 있으니까 참자
[선생님이 20대였다면 뭘 했을 것 같아요?]
어머 나는요.. 정말이지 내가 현재 이십 대다 하면 side job 가졌어요.
결혼은 물론 안 했겠죠.
side job을 가지고 노동을 하고 그 돈을 벌어서 그림을 그렸을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서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이 있어요. 제가 볼 때 굉장히 조급해하고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던데 그 친구들에게 해주실 말씀 있으신가요?]
조급해 안 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조급해 안 할 수가 있겠어.
그렇지만 다독여야지.
지금은 때가 아닐 수 있으니까 참자.
세상에는 수천 가지 수만 가지 직업이 있잖아요.
거기에 나한테 딱 맞는 직업을 택했으면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죠.
나도 마흔 살에 시작했잖아. 마흔 살까지 기다렸죠. 기다렸어요.
아파트 24평짜리 딱 장만하자마자 시작한 거거든요.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예술.. 그런 어려운 질문을... 정답은 없어요
지금 척박한 삶이란 자체가 척박하지 않아요?
조금이라도 거기에 위안이 되는 게 예술이 아닐까... 음악도 그렇고.. 예술이라는 건 위안이라고
나는 위안인 것 같아. 마음을 좀 다독여주고...
예술.. 이런 거 보니까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이런 생각만 해줘도 감사한 것 같아.
예술은 그런 역할 아닐까요
비록 화가들이 굶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보는 사람들은 사치품이죠.
시장들 안 해? 배 안 고파들? 아침도 안 먹었을 것 아니야?
선배니까 점심은 사줄게 끝나면 내가 선배잖아. 나이로 선배라는 이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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