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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에빠지다 May 03. 2020

늦으면 어때 난 마흔살에 시작했는데

윤석남작가.

https://youtu.be/tS5NZHajWIw


커피 두 개씩 탈까요? 우리 딸이 이거 두 개씩 타라고 신신당부하던데.
[네 고맙습니다]
유튜브는 처음이에요. 나 사실 아무것도 준비 안 하고 있었어.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하면 돼요


[작업실이 굉장히 멋지네요]
그렇죠? 여기는 작업실이고 저쪽이 수장고에요. 수장고 먼저 보고 올래요? 보고 차 마실까요.

[네, 너무 좋아요]


[수장고에 이렇게 많은 강아지 작업들은 뭐예요?]


 2003년도 인가신문을 보는데 천스물 다섯 마리 유기견을 보살피고 있는 
이예신 할머니 기사를 보는 순간  다음 작품은 이거다! 이렇게 결정을 했어요



그분을 보는 순간, 너무 노벨평화 상감이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분 가서 만났어요물론 유기견이  때로 몰려와서 놀랬죠
무섭기도 하고.. 그런데 자기가 사는 집을 데려가더라고요


침대하고 이쪽에 열 평도 안 되지 다 여섯 평 당신 침대에 개가   있는 거야. 


'어떻게 주무세요'물어보니 쓰레기봉투  개를 덮고 이불 덮고 그러고  위에 애들이 잔대요


 얘길 들으니가 그림 그린다고 호사스럽게  나 자신이 부끄러운 거야.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거예요. 

 나이는 알죠이제 두 살 됐어ㅎㅎ
[네. ㅎㅎㅎㅎ82세... 그런데 너무 잘 걸어 다니시는(?) 거예요 너무 놀랐죠]


일부러 곧으려고 노력해요 정말 고백하건대 그림 시작하면서 운동했거든다른 운동 아니라 걷기 


한 시간씩  걷고. 빠지면 큰일 나요
그림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닌 거 같아. 몸으로 하는 거 같아. 
[건강해야 그림을 그릴 수 있죠]

[선생님 머리는 어디서 해주는 거예요? 카카 언밸런스한 게 멋있어서]
미용실에서 해주죠(웃음)  한... 십 년 다 되어가요. 생머리.. 그때부터 언밸런스..
뭔가 좀 근사해져야 하니까... (웃음)
사실은.. 이쪽 뺨이 커요. 이쪽 뺨보다. 얼굴이 삐뚤어졌어. 
그래서 이쪽 머리로 가린 거예요. 사실은 그렇게 시작한 거예요. 
별 얘기를 다하네. 

[음주나 흡연은 하세요?]


담배 하나 피고 할까요

[건강을 위해서라도 가족분들이 금연하라고는 안 하세요?]
사실 남편이 끊으라고 보너스까지 줬는데 십몇 년 전에 삼 년 끊었다가 다시 피우게 됐지. 
작업하는 사람들은 그게 안돼. 이게 친구야

그래서 우리 남편이 보면 돈 도로 내놔 이럴 수도 있어 괜찮아(웃음)







[선생님은 1세대 페미니즘과 지금 세대와 페미니즘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하시죠?]
무슨 생각이든지 세월이 지나면 바뀌게 되어있어요. 그래야 발전하죠.
며칠 전에 만났어요젊은 페미니스트들을.. 
나는 너무나 기특한 거예요. 
그분들이 나를 볼 적에 나는 고리타분한 페미니스트지. 

[페미니스트가 아닌 여성도 있을까요?]
나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설마 여성으로 한국이라는 특수한 지형에 태어나서 어떻게 페미니즘 자체에 무관심할 수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요. 
항상 나는 내 생각만 옳다고 규정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걸 바른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너의 주장도 너의 주장인가 봐 '
여자로 태어나서 어떻게 이 현재 이 시점에서 페미니스트가 안될 수가 있을까 나는 이해를 못 하겠지만 
그것도 그 사람 삶이라니까. 그런가 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국민학교 3학년 때 일을 잊을 수가 없어요



나는 만주에서 태어나서 여섯 살 때 한국으로 돌아왔지.

 워낙 그림을 어려서부터 좋아했었어.
선생님이 칭찬을 많이 해줬었어 6.25전이야

국민학교 때부터 3학년 때인데 그건 잊어버릴 수가 없어. 
그때 6.25전이니까 크레용도 없어요. 7가지(색상) 그것밖에 없었어
선생님이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 
3학년 때 선생님 아주 예쁜 선생님이야 기억도 안 나 
다른 건 다 잊어버렸는데 너무 감사해

어느 날 미술시간에 제일 이쁜 아이를 불러내서 우리 보고 그려내라는 거야.
그 자주색 스웨터를 입은 게 기억이나. 
햇빛이 쫙 들어오는데....
걔가 얼굴이 하얀 애야. 나는 얼굴이 까맣잖아 앉아있는데 너무 이쁜 거야. 

그런데 자주색을 애들이 못 그려. 
나는 깜장하고 빨강하고 섞으면 자주가 되잖아요. 
그걸 알고 자주색을 만들어 그렸는데

그래서 신나게 그렸던 기억이 있어요


어쨌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야 했어




[책을 읽으시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난 이상한 소설까지 다 읽었어요. 아직도 속상해. 글을 못 쓴 거.

[좋아하는 소설가가 있으신지요]
옛날에 많았는데 지금은 다 잊어버렸네.
뭐 유명한 사람은 다 좋아했지

아....
그런데 난 사실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그게 아니란 걸 알았어
20대부터 30대 후반까지 글 쓰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 신인 공모를 하는데 자꾸 떨어져. 
떨어지고, 떨어지고.. 노력했는데 자꾸 낙선하고 그러니까 좌절하면서
나는 아닌가 보다. 난 왜 살아야 하지? 

어쨌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야 했어. 가정생활은 아닌 것 같아. 
나는 밥하고 청소하는 걸로 만족할 수가 없어. 윤석남은 존재하잖아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한 그림 쪽으로 해야겠다. 
안 하면 못 할 것 같다. 시작을 안 하면 내가 왜 존재하지는 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존재 이유를 찾는 거죠

그게 그림이었어요. 



마흔 살이 되던 해에 남편한테 그랬죠.
윤석남 - "나 그림 시작할래"
남편 - " 누가 말리냐. 하고 싶으면 하지..."이랬어요

외조… 외조라고 하는데 다른 건 없어. 우리 남편은 독립적인 사람이야. 
당신이 하고 싶은 거 해야지. 그 대신 살림은 해줘야지 월급 주니까.. ㅎㅎ

[남편분이 대단하시네요. 그 시대는 여자가 나댄다는 생각을 하는 게 사회 분위기 일 텐데요.]
그럼요. 그렇게 해주는데 고맙지. 그것만큼은 감사한 것 같아요. 
그 사람 아니었으면 내가 왜 여기 있겠어. 나를 인정하기 때문에 여기 있는 거지 
그때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너는 여자다'라고 하면서 무시를 하면 
내가 왜 그 사람하고 연애를 했겠어. 


어머니 이야기


[선생님이 40세에 시작한 첫 전시, 어머니라는 주제로 하셨지요]

우리 어머니가 둘째 부인이야. 상소리로 이야기하면 첩이었죠. 
그렇지만 그렇게 사람한테 정직한 분이야. 
얼마나 정직한 분이라 하면 남한테 십 원을 꿨으면 몇 년 후에라도 갚아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에요. 
그런 어머니를 나는 존경해 아버지보다.

당신 39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거든
그런데 아무것도 없어. 집도 없고, 절도 없고.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애가 여섯인데도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가르치시고 ...

지방에서 올라오는 보따리 장사 아줌마 있잖아요. 그럼 우리 집에서 다 자고 잤었어요
일주일씩 열 흘씩. 다 같이 밥 먹고 방 두 개짜리에서 애가 여섯인데 끼어서 주무시고 이랬죠. 
우리 어머니가 그랬어요.

[굉장히 자비로운 어머니셨네요]
당신이 그런 위치에 있다는 걸 숨기지 않았고 나는 이렇게 살았다. 
자식들에게 이야기하고 너희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굉장히 정직한 분이에요

우리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이에요. 
우리 어머니를 무시했으면 숨기고 살려고 했겠지. 

난 아직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울컥해요...
난 이게 세상에서 태어나서 참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엄마를 내 엄마를.. 내가 택한 건 아니지만...

우리 어머니가 한국 여성의 대표성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선생님은 어머니의 어떤 것을 닮은 것 같으세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있어야 한다고 배웠어요. 
그리고 나는 또 그게 좋아요. 나도 물론 중요하지만 타인도 중요하잖아.  

그렇지만 또 한편 나는 그에 반해 이기적이죠.
자기 일만 해야 하는.. 
화가니까 이해하죠? 이건 이기적이 아니면 못해요. 
오로지 나. 오로지 나 아니면 작업을 할 수가 없어. 

나의 이기적인 삶이 굉장히 대조적이죠. 


어머니는 어쩜 그렇게 아무 말도 없으셨을까...


[자신이 그려진 전시를 보고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나요?]
아무 말도 없으셨다고...
어쩜 그렇게 말씀이 없으셨지.. ?
.... 뭐.... 열심히 했다. 이런 말씀도 없으셔...
얘가 왜 그림을 그리나... 차마 그런 말씀을 못하셨고.. 

내 생각에는  사위에 대한 빚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
살림만 열심히 하지 않는 이 여성... 

어머니 사고방식은 아무리 내가 어머니를 존경을 해도 사고방식은 한정돼있잖아.
여성의 할 일 그런 거 있잖아
아기 잘 키우고 가정 살림 잘하고 그런데 엉뚱하게 그림 그린다고 해서 살림 팽개친다고 생각을 했겠지. 

그래서 사위한테 굉장히 항상 말 한마디를 못하셨어
지금은 이해를 못 할 거예요... 미안하고 그런 게 있었겠지. 고맙고 미안한 감정



나는 못된 엄마



[그렇다면 선생님은 어떤 엄마였어요?]
못된 엄마. 
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까지 굉장히 저항적이었어요. 그 아이가 나한테 왜 그랬을까. 뻔하죠. 맨날 
내가(딸아이가) 집에 오면 엄마가 맨날 작업실에 가 있고 ..

쟤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집에 와서 학교에서 오면 같이 좀 놀아주다가 나는 작업실 갔어. 

그러니까 아이 입장에서 봤을 때는 엄마같이 다른 엄마와 다르잖아요. 
그래서 쟤가 좀 저항적이었지. 

그런데 크니까 너무 친구야. 


여성으로서 최초로 이중섭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삶의 터닝포인트라든지? 그런 기회들이 있었나요]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왔어
"당신이 이중섭 상  받게 되었습니다."
누구래? 나는 만나본 적도 없는데 이상한 일 아니에요? 
이 사람들이 왜 나한테 상을 주지? 그렇지 연고도 없고 위원장 얼굴도 몰랐어. 

사실 그때 죽을 둥 살 둥 했어요. 그림만 했을 때니까.
상주니까 받아야지.. 돈 오백만 원 주면.. 큰돈이었어. 
그러니 '우와' 하고 받았지. 
그런데 그 나도 지금 생각하면 어ㄸ허게 이중섭 상.. 여자로선 최초에요
어떻게 윤석남한테 상을 줘요? 나는 굉장히 운이 좋은가 봐. 그림도 운이 따라야 하나 봐... 



[작품이 점차 변화를 하기 시작해요]
엄마 이야기를 하고 나니까 '내 얘기를 이제 해도 돼 윤석남, 이제 네 이야기를 해도 돼. '
그래서 핑크 룸이 만들어진 거죠.

핑크 룸. 사람들이 오해를 하더라고 부드럽고 따듯하고 저게 핑크색이 형광 핑크에요. 
그래서 아름다운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 자존도 없이 떠있는 여성 이야기거든요 
그림 시작하기 전에 내가 그랬다고.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저 핑크가... 
전시 많이 했죠. 한지로 만들어 놓으려고요. 많이 팔았어. (웃음)
그래서 요새 좀 손 안 벌리고 사는데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는 뭐가 필요한가요]
나는 처음에 시작할 때 내가 굉장히 재능이 있어서 시작한다고 생각했어요.
재능이 있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나는 할 수도 있고 내가 죽을 둥 살 둥 하면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될 수가 있어
말은 안 했겠지만 내면으로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바뀌었어요

지금은 재능이 아닌 것 같아.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냐면 재능은 몇 퍼센트밖에 불구하구나. 
재능보다는 열정인 것 같아. 무조건

[열정이 왜 중요할까요?]
왜냐면 나보다  재능이 많은 사람은 관뒀어그림을  손들었어
중학교 때 전교에서 제일 잘 그리는 애가 있었어선생님이 맨날  그림을 칠판에 칭찬했어
나는 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나는 쟤한테 당할 수가 없어서 좀 빨리 포기했지.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 한 거고.

그 친구가 결국 홍대 나오고 홍대 대학원을 나왔는데... 결국은 관두는 것 보니

지금은 손재주가 아니야열정하고   시대에 뭘 그려야 한다는 생각.. 
 생각이 중요한 거 같아.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래도 상관없어요
결과는... 지금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할 수 없어그렇지만 해야 돼 

이거는 사회의 마이너스는 아니잖아 사회에 플러스잖아
그럼 내가 살아있는 거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그거에 대한 내가 열심히 해야 하만 보답이 가능할 것 같아. 



지금은 때가 아닐 수 있으니까 참자



[선생님이 20대였다면 뭘 했을 것 같아요?]
어머 나는요.. 정말이지 내가 현재 이십 대다 하면 side job 가졌어요
결혼은 물론 안 했겠죠. 
side job을 가지고 노동을 하고 그 돈을 벌어서 그림을 그렸을  같아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서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이 있어요. 제가 볼 때 굉장히 조급해하고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던데 그 친구들에게 해주실 말씀 있으신가요?]



조급해 안 할 수가 없어요어떻게 조급해 안 할 수가 있겠어
그렇지만 다독여야지
지금은 때가 아닐 수 있으니까 참자


세상에는 수천 가지 수만 가지 직업이 있잖아요
거기에 나한테  맞는 직업을 택했으면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죠


나도 마흔 살에 시작했잖아마흔 살까지 기다렸죠기다렸어요
아파트 24평짜리  장만하자마자 시작한 거거든요.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예술.. 그런 어려운 질문을... 정답은 없어요


지금 척박한 삶이란 자체가 척박하지 않아요
조금이라도 거기에 위안이 되는 게 예술이 아닐까... 음악도 그렇고.. 예술이라는 건 위안이라고 


나는 위안인 것 같아. 마음을  다독여주고... 

예술.. 이런 거 보니까 살아있어서 다행이다이런 생각만 해줘도 감사한 것 같아
예술은 그런 역할 아닐까요
비록 화가들이 굶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보는 사람들은 사치품이죠

시장들 안 해?  안 고파들? 아침도 안 먹었을 것 아니야?


선배니까 점심은 사줄게 끝나면 내가 선배잖아나이로 선배라는 이야기야... 

https://www.instagram.com/falling_in_art/

모든 사진과 인터뷰는 창작자 예술에 빠지다에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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