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말미,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나의 첫 일터는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일식집이었다. 그곳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게 되었고, 나 말고도 열댓 명의 한국인 워킹 홀리데이 청년들이 있었다. 면접도 보고 실습도 하며 어렵게 구한 일자리의 기쁨도 잠시, 첫 출근 전 같이 살던 하우스 메이트들이 이곳은 한국인들 텃새가 심하니 조심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드디어 출근 날, 식당의 영어 메뉴와 가격은 기본으로 외우고, 음식 주문받을 때 필요한 영어 표현도 공부했다. 혹시 몰라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들의 영어 단어까지 모두 찾아가며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노력이 무색하게 정말 그곳엔 텃새가 있었고, 실전에서 내가 잘 모르는 부분들을 도와주거나, 친절하게 알려주는 이도 없었다. 누구 하나 먼저 다정하게 말 걸어주는 이도 없었고, 이미 친해진 자기들끼리는 장난도 치고 맛있는 메뉴도 만들어 먹으며 즐거워보였다. 심지어 어떤 직원은 내가 손님 없을 때 잠시 쉰 것을, 사장님께 농땡이 친다는 식으로 고자질을 했었다. 대부분 나보다 한참 어린 이십 대 초반의 청년들로,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일했던 시절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과 비슷한 나이였다. 나는 너무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도 상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나는 어딘가에서 들은 말을 떠올렸다.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매일 만나는 직원들 한 명 한 명에게 칭찬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십대 초반의 예쁜 여직원에겐 오늘 옷 예쁘다며 어디서 샀는지 물었고,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남자 직원에겐 손님이 음식 맛있다고 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어느 날은 스물 한 살의 어린 남자 직원이 한껏 꾸미고 왔길래, “우와, 너 뉴요커같다.” 라고 말했더니 그 친구가 정말 기분 좋아했다. 그걸 보고 옆에 있던 다른 남자 직원이 “누나, 립서비스가 너무 심하네. 그럼 나는?” 이렇게 물었다. 순간 나는 긴장했다. 나는 그냥 입발림 소리를 하는 게 아니고 진심으로 그 사람의 장점을 찾아, 마음을 다해 칭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순간 그 친구의 이리저리 자유롭게 뻗어있는 곱슬곱슬 주황색 파마머리가 보였다. “음, 너는 런더너같아! 자유로운 영혼의 런던사람!” 내 말을 듣고 그 친구는 활짝 웃으며, “역시, 누나가 사람 볼 줄 안다니까.” 라고 말하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주방으로 갔다.
그 이후 내가 젊은 직원들과 친해진 건 말할 것도 없다. 주방 직원들은 점심때마다 나에게 먹고 싶은 거 있냐고 물었고, 새침하게만 보였던 한참 어린 여자 동생도 마지막 근무 날 자기 송별회에 언니가 꼭 와야 한다며 나를 끌어안고 놔주지 않았다.
십 개월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나는 한국에선 잘 알지 못했던 인간관계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한국에서 강사로 일할 때는 많은 아이들이 나를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그냥 좋아해주었다. 내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됐었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내가 먼저 다가가는 법을 배웠고, 나와 결이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일지라도 진심으로 다가가면 진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서도 나는 어딜 가면 다른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그 사람에게 칭찬할게 없나 찾아보곤 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라는 말처럼, 누구든 그 사람을 마음으로 살피면, 예쁘지 않은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