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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43세 아내가 임신을 했습니다..

아내만 들어간다고요?

by 신백

23.7.15.


"누구님~ 진료실 들어가세요!"

이름이 불린 아내는 내게 얌전히 기다리라는 눈빛을 보내고 혼자 들어갔다.


"저는요? 같이 들어가면 안 돼요?"

원장 선생님께 어떤 말을 듣더라도 당황하지 않으리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접수 간호사님께 여쭤보았다.




"늦어서 못 갈 것 같아요~"

종일 비가 많이 온 날이었다.

산부인과에 같이 가려고 1주일 전 예약한 건데

퇴근길 차가 많아 밀린다며

진료시간 20분 남겼을 때 연락이 왔다.


그녀는 약속시간 직전까지 여유를 부리다 늦는 타입이고,

30분 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하지 않으면 불안한 성격이 나다.

1주일 동안 별의별 생각이 들고

이미 근처에 도착해서 혼자 오만 상상을 하고 있었는데..

뭔가 불확실한 것이 계속되는 상황이 찝찝했다.

약간 짜증도 났지만, 아내가 늦는 경우에 익숙해졌기에

일단 숨을 들이켰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그러게, 일찍 출발하지 그랬어!!

혹시 빨리 오면 몇 시에 도착해?

다음엔 또 언제 가려고?'

이런 잔소리를 아내에게 했을 테지만,

어제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요, 차 많이 막히지?

운전하느라 안 힘들어요?

오다가 힘들면 안전한 곳에 차 세우고 쉬다 와~

병원엔 내가 전화할까요?"

혹시 늦어서 속상하진 않을까?

그녀의 기분을 거스르고 싶진 않다.


높임말 반말 섞어서 질문하는 나는 반반 좋아하는 천상 우리나라 사람이다.

그렇게 하루 미뤄서 오늘 오전으로 잡은 진료였다.




오늘은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당연히 같이 들어가서 모니터 보면서 설명을 듣게 되리라.

원장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실까?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진짜 눈물이 나올까?

이런 상상이 쑥 들어갔다.


"남편분은 필요하시면 원장님께서 들어오라 하실 거예요!"


엥?

태아의 공동 책임이 있는 남편은 왜 못 들어가는 걸까?

개인정보 때문인가?

만약 부르시면 좋은 쪽일까, 그렇지 않은 쪽일까?

왜 안 불러주시지?

확인하는 게 이리 오래 걸리나?


외래 대기실에 앉았다 섰다 하면서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진료실 문이 열리고 아내가 나오면서 나도 현실로 돌아왔다.

눈이 마주치자 일부러 입꼬리를 살짝 올려서 보여주었는데,

그 의미를 파악하기엔 너무 짧은 순간이었다.

'뭐지? 좋은 말씀을 들은 건가?'


"얼마예요? 네, 여기요. 안녕히 계세요~"

그런데 바로 계산을 하는 거다.

내겐 아무런 얘기도 안 해주고.

간호사님에겐 인사도 잘 건네면서.


"끝난 거야? 어떻대요?

나는 왜 안 불러준 거야?

초음파로 인사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출입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궁금한 걸 한꺼번에 물어보았다.


먼저 계단을 천천히 내려간 그녀로부터 하나씩 들을 수 있었다.

"임신 초기에는 질식 초음파로 보는 거라 남편은 같이 안 보는 거래.

나중에 복식 초음파로 볼 때 같이 보면 되지."


으아. 차가운 초음파가 몸속으로 쑥 들어왔을 때 얼마나 불편했을까?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찡그려졌다.

다른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을까 봐 대중교통의 빈 좌석에도 앉지 않는 그녀다.


'그래?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으니 뭐 아나!'

이 말이 목구멍 위로 나오려는 찰나

목소리를 간신히 꿀꺽 삼켰다.


떠올려보니 희 산전 초음파 볼 때 한 번도 따라 간 기억이 없다.

순간 침이 마르고 온몸의 피부가 건조해지는 걸 느꼈다.

마음속부터 미안해졌기 때문이다.


아내는 첫째 임신 때 내가 산부인과 검진을 따라가거나 복식 초음파도 같이 안 본 걸 까먹었나 보다.

10년 전이라 당연히 아내는 기억 못 하겠지만.

같이 병원 가자고 내게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그리고 누가 요청하지 않으면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 게 내 성격이다.


당시엔 그랬다.

집으로 가져온 초음파 사진을 봐도 실감이 나지 않는데

입체 초음파를 본다길래,

뭐 하러 돈 더내고 보냐, 그렇게 본다고 뭐가 달라지냐?

사진 찍는다고 태아한테 스트레스 아니냐? 며 말렸던 나다.



이럴 때 괜히 과거 얘기를 꺼내면 나만 손해다.

아내가 혹시라도 알아차리기 전에 얼른 화제를 돌려야 한다.

"그래서 원장 선생님이 뭐라셔?"


"보시자마자 사이즈를 재니 6주 3일인데 아직 심장은 안 뛰네요. 그러셨어."

(지난주에 6주라 하셨는데ㅜㅜ)


"보통 6주 5일부터 심장소리 들을 수 있는데...

그래도 태아 조직이 정상적으로 보이니, 다음 주에 다시 확인해 보죠. 하시던데~"

(으아! 두근거림과 두려움이 함께 하는 일주일을 또 기다려야 하다니)


"자기야~ 지난주 배가 너무 땅겼거든.

내 몸이 편해진 거 봐서는 이번 태아랑 인연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


"무슨 소리야-! 미리 단언하지 말고

원장 선생님 말씀대로 담주까진 기다려봐! 맘 편히 먹고~"


"사실 나 영유 어디로 보낼지 다 생각해 두었는데~"


"뭐?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애 7년 후까지 다 준비했다고?"


"자기야! 요즘 영유는 5살부터 다녀~! 그리고 중학교 계획까지 다 세웠거든~@"

아 그랬구나, 참 J답다.


"그리고, 조선호텔김치 겉절이 먹고 싶어요.

내가 아니고, 얘가" 하면서 자기 아랫배를 쳐다본다.


네, 어련하시겠어요.

김치 먹고 그녀의 기분이 좋아진다면야 조선시대로 돌아가서라도 사오리라.

첫째 임신했을 때 저질렀던 내 못난 과오를 조금이라도 희석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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