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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43세 아내가 임신을 했습니다.

두근거림은 두려움으로

by 신백

23.7.6.


-늦둥이 아빠, 축하드려요!!@

전날 임신테스트기로 확인을 한 아내는

집 근처 산부인과에 다녀왔다 말했다.


아내는 그날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말하지 않는다.

그것도 산부인과 안 가도 돼?라고 물으니 겨우 대답해 준 거였다.


그녀가 내게 존대를 하는 경우는 두 가지다.

정말 기분이 좋거나, 비꼬거나.

눈치 없는 나로서는 어느 쪽인지 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기분이 좋거나, 부탁하는 경우에만 아내에게 존대를 한다.

아내는 그런 나에게 일관성을 가지라 했다.)


그래도 아내 입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임신을 인정하는 말이 나와서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당신 몸 괜찮대요? 뭐래요?

-6주 되었대.


뭐?!...(What? 6주 전엔 하늘의 별 볼 일이 없었는데!)

-4주 전에 예기치 못한 관계가 있으셨군요! 이렇게 말하던데? 으이그! 원래 임신 주수는 2주 더해서 말하는 거야.


아...(4주 전이라면, 그래, 애매한 바로 그날이었구나!)

그랬나? (맞다. 산부인과에서는 마지막 생리 시작일 기준으로 임신 주 수를 말한다. 임신이라는 단어가 내 사전에 다시 오르내릴 일 없을 거라 생각하고 까먹었나 보다.

LMP가 10.10일 (임산부의 날)이었다면

출산예정일(EDB)은 다음 해 7.17일 (제헌절)이 된다. (LMP에서 3개월 빼고 7일 더하기.)


심장은 7주부터 뛰나? (아내에게 첫째 때 기억도 못하느냐 핀잔을 듣기 싫어 짧은 시간 최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이 질문이었다)

-근데, 아직 안 뛰어. 다음 주에 다시 오래.

(6주인데 아직 안 뛸 수도 있나? 아직 세포분열 그런 단계인가?)

옆집 중학생 엄마가 임신을 했다 쳐도 이렇게 무덤덤하게 말하지는 않을 텐데,

애써 놀란 기색을 감추고 말했다.


그런데 당신, 왜 회사 병원엔 안 갔어?

- 어떻게 가! 소문 다 날 텐데!!@


쪽팔려서 못 간다고 했다.

만43세 부인이 임신을 하면

회사 사람들의 소문도 견뎌내야 하는구나 ㅜㅜ


생각은 해 봤어? - 뭘?

아니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 아무 생각 안 하기로 했어.


이럴 땐 자주 무표정하게 멍 때리는 아내가 부럽기도 했다.

남이야 똥줄이 타든 말든 무관심하다.

냥이를 키우면서 성격도 고양이과가 되었나?

아니다! 분명 연애할 때 애교를 곧잘 부렸는데...




침실에서 조용히 나와 산부인과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가족끼리 모임도 몇 번 한 사이다.


너, 환자 개인정보 보안유지 가능? -어, 뭔데?

아내가 임신했어. -그래??? 축하해~

그치? 그런데 마냥 축하받을 일이 아닌 게, 아직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어? -왜?


만으로 43세잖아. 그리고 6주인데 심장이 안 뛴대.

-음, 아직은 그럴 수도 있지, 그러면 너희 동네 무슨 병원 누구에게 가봐! 친절하시고, 진료도 잘 봐주실 거야.

그래, 고마워. 참, 너희 남편도 꼭 묶으라 해라.

-?? 무슨!! 우린 그럴 일 없어!@


친구는 전혀 걱정 말라며 나를 안심시키고 통화를 끝냈다.

우리 부부가 마음을 편히 가지라는 말인지,

자기 부부에게 늦둥이가 생길 일이 없으니 근심하지 말라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심장이 안 뛴다는 말에

처음엔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들다가

점점 만약에라는 가정이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왔다.


계획 임신이었다면 건강한 녀석들을 보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혹, 만에 하나 심장이 뛰지 않으면 어떡하지?


과거에 대한 후회와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천천히 심장의 두근거림은 마음속 두려움으로 변했다.

머리를 크게 흔들어 밖으로 던져버렸다.



다음 주 병원에 가서

건강하다는 말씀을 들어도, 반대로 심장소리를 듣지 못해도 아내를 볼 면목이 없다.

분명한 건, 초음파로 심장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그렇지 않더라도

찐하게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나도 그런데 아내의 심정은 어떨까?

혼자 감내하고 있는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다.

아까는 말끝마다 미안하다 말하니 혼자 저지른 일도 아닌데 그러지 말라고

오히려 나에게 괜찮다고 했다.

자기 인생에 계획대로 된 것은 희밖에 없다며.

조금 냉소적이긴 해도, 이미 일어난 일을 후회하거나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가정하지 않는

그녀의 성격이 내게 위로가 될 줄이야.



그새 옆에서 자고 있는 아내의 종아리를 천천히 주물러준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건강이 나에겐 가장 소중하고

더 이상 나를 구박하지 않는 아내의 마음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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