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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43세 아내가 임신을 했습니다...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by 신백

23.7.20.


'그래, 오늘은 기필코 원장님을 뵙고 말씀을 들어보자.'


이런 단호한 생각으로 진료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근처에서 어슬렁거리지 않고 일부러 병원 로비로 올라갔습니다.


'원장님께서 가끔 로비를 보시겠지?

얼굴 뵈면 꼭 눈도장을 찍고 초음파를 봐야지!'


눈인사를 건네면 진료실로 남편인 저도 불러서 설명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서둘러 퇴근하여 오고 있는 그녀 대신 접수를 하고 어느 정도 기다리니 아내가 들어왔습니다.

역시나 산모 혼자 진료실로 불렀는데, 제 마음을 알았는지

아내가 먼저 "남편도 같이 들어가면 안 될까요?" 여쭤보았습니다.

그렇게 저도 진료실로 들어갔습니다.




아내는 진료실 미닫이 문을 열고 초음파실로 가더군요.

간호사분께서 다시 문을 닫고 산모체어에 아내를 준비시키는 것 같더라고요.


문 닫힌 진료실에 원장님이랑 단 둘이 남게 되었습니다.

원장님께 인사를 처음 드리고, 저희 부부 얘기를 했습니다.


아내가 묶으라는 말을 했었는데 제가 말을 안 들었다.

예기치 않은 임신이어서

아내는 고령이라 처음엔 조금 망설인 것 같지만 이제는 낳고 싶어 하고,

저도 늦둥이를 만나고 싶다. 고요


제 이야기를 귀 기울여 다 들어주신 원장님께선 조금 당황하신 눈치셨어요.

잠깐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혹시 출혈은 없으셨어요?" 여쭤보시더라고요.

제가 아는 한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초음파 보고 심장이 뛰면 부를 테니까 잠깐만 계세요."

하고 미닫이 문을 열고 옆 검사실로 들어가시자

아까보다 더 긴장된 적막이 찾아왔습니다.


얼마 전 머리 위에 선풍기를 달고 싶을 정도로 땀을 줄줄 흘린 무더위날

집에 오자마자 옷을 훌러덩 벗고 냉수로 샤워를 했습니다.

아무리 더워도 찬물에 숨이 갑자기 턱 막히더군요.


그때처럼 공기의 흐름이 멈췄던 느낌을 그 방에서 다시 받았습니다.

숨 쉬기가 어려운 건 아닌데, 숨을 들이마신 다음 다시 내뱉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쉬어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거든요.


그때 원장님께서 먼저 진료실과 검사실 사이의 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오셨습니다.

'나를 부르지 않으셨다는 건...'

이제 마음이 묘하게 편해지면서 의식하지 않아도 숨이 저절로 쉬어졌습니다.

따라 들어온 아내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말없이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옆모습을 흘끔 보니, 마음을 모두 내려놓은 듯한 얼굴빛이었습니다.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원장님께서 침묵을 깨고 말씀하셨지만, 다시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시간이 꽤 오래 흘렀습니다.

어떤 뒷이야기가 나오리라 그 공간에 있는 세 사람 모두 예상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 중이셨을 겁니다.


"심장이 아직..." 그리고 또 멈추셨습니다

"으~음~~!!" 헛기침을 길게 하시고는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원래 시간이 갈수록 사이즈도 커지고, 기능적으로 분화도 되어야 하는데...

지난주와 크기도 큰 차이 없고, 심장이 뛰지 않는 걸로 봐서는..."

거기까지만 말씀하시고 저희를 쳐다보셨어요.

저희가 뭐라고 대답하길 바라시는 눈치였습니다.


아내는 "네."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저를 보고 나가자는 눈빛을 보내더군요.

저는 그대로 일어나기엔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럼 얘는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심장이 뛰지 않으면 생명이 아닌가요?

앞으로는 어떻게 되나요?'


아내는 밖으로 나가려고 이미 일어난 상태라

저도 따라서 엉거주춤 일어서다가 원장님께

"이제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질문을 던지며 다시 앉았습니다.


원장님께선 약간 난감하신 표정으로

"그건..." 이라고만 말씀하시며 옆에 서있던 아내와

무언의 눈빛을 교환하셨어요.

그러자 아내가 나가서 설명해 준다며 저를 잡아채곤

진료실 밖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임신을 하면 당연히 심장이 뛰는 줄 알았고

당연히 열 달 후 아이가 태어나는 걸로만 생각했습니다.


여성의 몸에 대해

그리고 임신 후 태아의 성장에 대해

너무 무심한 저 자신을 나무랐습니다.


병원을 나와 오히려 억지웃음으로 저를 위로해 준 그녀의 옆에서

끝끝내 눈물을 핑! 내비치고야 말았습니다.




언제부터일까요?

출근길 아파트 1층에서

유치원 셔틀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면

절로 아빠웃음이 지어졌습니다.


누가 아이를 가지거나 출산했다는 소식을 듣거나

지나가다 유모차와 어린아이를 볼 때마다

생판 남인 부모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올해 7월은

늦둥이 아빠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에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했던 한 달이었습니다.



임신을 계획 중이신 분들,

고령 임신, 늦둥이 임신

마음으로 낳은 아이를 키우시는

모든 부모님들에게

응원과 사랑과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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