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마안~하면 떠올라서 영영 잊지를 못하겠는 그런 곡들이 있다. 언타이틀의 오늘밤이 그렇다. 나는 중3이었고, 아마도 요즘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할 표현이겠지만, 그야말로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어댔다. 물론 내 또래들은 다들 알겠지만 당시 타이틀곡은 책임져였다. 유건형은 작곡과 노래를 하고, 서정환은 주로 랩을 했었다. 1위까진 못 갔던 걸로 기억하지만 꽤나 인기 있었다. 심지어 나는 철필통에 잡지사진을 오려 붙이기까지 했었으니. 아, 참고로 강남스타일을 작곡한 그 유건형이 맞다.
그즈음 마리떼프랑소와저버 라는 브랜드가 한국에 처음 들어왔었고,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거지만 당시 한국 지사장이 유건형의 아버지더라. 어쩐지 신문 지면 광고에도 언타이틀이 모델로 나오고 막 그러더라니. 물론 음악과도 잘 어울리긴 했다. 서정환은 그 뒤로도 꽤 오랫동안 주목받는 래퍼여서 솔로 앨범을 기다리는 이들도 많았지만, 간간이 나오는 피처링이 전부였다. Sean2slow 앨범도 참 궁금했었는데. 딱히 할 말이 없었던 걸까? 그런 재능이라면 누가 잡아서 가둬놓고서라도 작업을 시켰어야만 했다. 주제를 막 던져줘서라도. 할 말은 있는데 재능이 없는 거랑 재능은 있는데 할 말이 없는 것 중에 더 슬픈 건 과연 어느 쪽인 걸까.
나는 아이팟을 좋아했었다. 물론 지금은 아이폰 덕분에 사라졌지만, 세대별로 몇 번이고 샀었으니. 그중에서도 으뜸은 한참 뒤에 나온 셔플 모델이었다. 사이즈도 아주 컴팩트했다. 정사각형이었는데 가로세로 한 3센치쯤 됐으려나? 심지어 어디든 끼울 수 있게끔 집게가 자체적으로 달려있었다. 이름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무작위 재생이 기본이라, 노래는 비록 내가 골라 넣는 거지만, 라디오의 낭만을 오롯이 품고 있었다. 아이팟이 mp3의 디지털 혁명이었다면, 아이팟 셔플은 아날로그로의 회귀를 당당히 선언하는 것이었다.
진정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기가 막힌 역발상이었다. 기획도 물론이지만, 컨펌한 잡스도 대단한 거다. 자칫 기능적 퇴보로 비춰질 선택을 순순히 받아들인 거니까. 덕후의 선택은 역시나 신뢰할만해. 라디오의 낭만도 바로 이런 랜덤 플레이에서 비롯된 거니까. 날씨랑 계절은 당연히 덤이고. 아이팟은 낭만적이지만 아이폰은 딱히. 특히나 아이팟 초기 모델에서 다이얼을 처음 돌리던 그 촉감은 잊을 수가 없다. 이 또한 첫사랑에 대한 의리 같은 걸까? 아이팟은 좋지만 아이폰은 별로.
한 사람의 일생에 기억되는 노래는 고작해야 천 곡 남짓이라더라. 21세기에 접어들면서까지 내 기억 속에 여전히 남아서 아직 내 글에 등장하는 노래들이 그런 셈이다. 타인에게 새겨질지도 모를 기억을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될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귀하디 귀한 제한된 용량, 그 안에 듣기 싫은 노래를 박아 넣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으니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은 타투와도 같아서 그 흔적까지 말끔히 지워내기란 어렵다. 영화 행오버에서처럼 라스베가스에 가서 함부로 장난처럼 그려 넣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숙취는 깬다지만 어떤 낙서는 영영 지워지지 않는 법이라. 타투처럼 새겨질 아픈 기억이라면 어디 함부로 새길 수야 있겠는가? 내 것도 아닌데. 그러고 보면 우리는 누구나 공평하게 머릿속에 아이팟 셔플 하나씩을 넣고 사는 거나 다름없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문득 무작위로 내 귀에만 들린 오늘밤이 그랬다. 자, 내일은 또 어떤 앨범을 다시 듣게 되려나? 다시…? 지금 내가 불현듯 슬퍼지는 이유는 이제는 신보를 잘 듣지 않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이러면 곤란해. 50~60년대 재즈만 하더라도 엄청나게 방대한 양이라, 갈 길이 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