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수필, 현실 같은 소설
환상적인 글은 물론 좋지만, 그게 수필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제발 소설이었으면 싶은 지독한 현실이 애꿎은 수필만을 자꾸 꿈속에다 가두는 걸까?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도무지 믿고 싶지가 않아서. 그리하여 마침내 수필이 꿈에 바짝 다가설 때, 우리는 자꾸만 소설을 찾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그 안에는 화장기 없는 진실이 들어있으니까. 이쯤 되면 작금의 현실은 오로지 소설 속에서만 찾을 수 있고, 꿈을 꾸듯 괴로운 오늘을 잊으려거든 수필을 읽어야 될 것만 같다. 소설은 용케도 너무 현실적이고, 수필은 너무나도 환상적일 거라서.
서툰 고백이 아름다운 건 아마도 솔직하기 때문일 거다. 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쓰기란 도덕 시험 따위가 아니니까. 소설 속 자칫 위험한 존재인 그들이 그럼에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다만 꾸미지를 않아서 일 거다. 진실된 소설은 여전히 소설로 남는다지만, 허구적인 수필을 우리는 변함없이 수필이라 말할 수 있으려나? 왜곡된 진실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닐 텐데. 쓰기란 잘난 나를 전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차라리 내일은 더 나아질 오늘의 못난 나를 기록하는 박제 과정에 가깝다. 하여 나를 뺀 쓰기는 글이 아니다. 그건 가면을 뒤집어쓴 페르소나일 뿐이니까.
글이란 마땅히 인간에게 더 가까워지기 위해 쓰여지는거라 믿는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진짜 나 하나를 찾기 위함이고, 그런 내가 쓴다는 게 고작 나도 아니고 진실도 아닐 바에야, 구태여 힘들게 활자를 찾아헤맬 이유가 있으려나? 그럴싸하게 지어내기만 하면 그만인데. 글을 짓는다는 표현이 내게는 일독을 권한다는 표현만큼이나 거슬리는 이유도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진실을 더 그럴싸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왜곡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지만, 글이란 실은 짓는 게 아닌 마음속 깊은 우물에서 여태 몰랐던 진짜 나를 길러내는 거라고 믿으니까.
우리가 글을 통해 추구할 바는 엄연히 진실 혹은 진실된 창작 그뿐이다. 허구를 통해서는 현존하는 실재의 값어치를, 기막힌 현실을 통해서는 허구라는 존재의 소중함만 더 깨닫게 되는 것만 보더라도 말이다. 응당 환상적인 소설, 현실 같은 수필이어야 마땅한데, 그리고자 하는 현실은 너무나도 이상적이라 자꾸만 소설 같은 수필이 그려지는 걸까? 믿기 싫은 현실을 도무지 받아들이고 싶지가 않아서, 멋대로 되지 않은 인생을 뜻대로도 써보고픈 충동에. 누구나 진실에 가깝게 그리기를 원하지만, 그리움만 더 키우며 살아가는 게 어쩌면 삶이 아닌가 싶다.
급기야는 숨기지 말아야 할 걸 숨겨버리는 웃픈 상황 덕분에 마침내 사람 냄새마저 사라져가는 건 아닐는지. 이건 단순히 취향 문제만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당신이라는 진실이 불편할 혹시 모를 누군가를 위하자고, 나라는 실체에 구태여 거짓을 덧댈 이유가 있으려나? 이건 도덕 경쟁이 아닌데. 쓰고도 싶고 숨고도 싶은데 당최 숨을 구석이 없다 보니 제 역할을 픽션에 잡아먹혀버린 건 아닐는지, 하물며 이제는 이런 의심마저 든다. 불편한 진실, 불편한 건 글이 아니라 진실인 걸지도 모르지. 그 시절 즐거운 사라가 그랬던 것처럼.
문학은 저마다 삶의 모양인지라 형식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 거라 믿는다. 더군다나 진실성이 결여된 허구라면 쉬이 용납되지도 않을 테니. 그러니 세상이 정해놓은 틀에다 역으로 나를 끼워 맞추기보다는, 여태도 그래왔던 것처럼 그저 나처럼 쓰는 수밖에. 나를 똑닮은 그릇은 세상에 없는 거라 믿으며. Form ever follows function 물론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지만, Never follows form only 무작정 따르지는 말기를. 자아가 결여된 글이란 또 다른 상실감만을 불러올 따름이니까. need your own, not the known. 진실한 나를 쓰려거든 말이다.
Fictional truth VS Nonfictional fake, 이따금 수필이 더 허구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소설도 아니면서.
눈치 볼 게 어딨냐, 나부터 좋으면 그만이지.
이런 건 누가 대신 안 써주니까, 내가 쓰는 수밖에.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나, 그거 하나면 된다.
이딴 걸 누가 읽는다고, 나니까 읽지.
어쩌다 보니 벌써 4화군요. 보잘것없는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좀 투박하긴 해도 진심을 다해보도록 하죠. 실은 그게 제가 가진 전부인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