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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방계 소녀 Oct 20. 2024

그건 롹스타의 삶이 아니야

누려


흔히들 언어 공부를 하고 있노라면, 특히나 원어민과 대화를 하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말만 골라서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이런 식의 자각이야 언제든 환영이겠지만, 일부 원어민의 경우에는 상대가 다 큰 어른일지라도 단지 언어 구사 능력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진짜 애 취급을 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이제는 드디어 한국에서도 노벨문학상을 배출해 낸 걸 감안한다면, 머지않아 이 땅에서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설령 그런 날이 온대도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때 느끼던 그 굴욕의 감각을 부디 다 잊지는 말아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What can I do? If Korean people think it’s wrong, I’ve got to make up for it,”

“어떡하겠어요? 한국인들이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인정하고 보완해야죠.”

“It’s like, I get why you guys are upset. It’s cultural, it’s history.

It’s time. And I can’t go against time.”

“말하자면 저는 그분들이 왜 화가 났는지 알아요. 이건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흐름이예요.

저는 그 흐름을 거스를 수가 없어요.”


해당 인터뷰를 인스타그램으로 처음 보는 순간, 블랙핑크의 제니도 드디어 롹스타의 반열에 들어섰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롹스타의 본질은 가히 개썅 마이웨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거다. 이는 곧 자신의 신념을 굳게 믿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인 까닭이다. 번역본을 먼저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원문은 틀림없이 영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기사 제목이 Jennie Is Going Her Own Way라는 사실을 차지하더라도, 똑똑한 제니라면 분명 한국에서 쓰지 않았을 어휘들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무려 역사와 문화를 언급할 수 있게 되었을 줄이야. 아울러 그 패기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어라는 건 참 오묘하다. 특히 영어를 사용할 때면 뭐랄까? 괜스레 더 쿨한 내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긴달까? 아무리 뾰족한 사람도 평소보다는 살짝 관대해진다거나, 혹은 언어의 한계로 인하여 하는 수 없이 관대해지는 경험을 피하기는 어려울 거다. 물론 답답한 마음 굴뚝같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번역기를 꺼내 드는 순간, 모양은 이미 빠질 대로 빠져버리고 난 후일 테니까. 언어는 기세라, 기가 센 편이다.


제니는 YG엔터테인먼트 소속 걸그룹 BLACKPINK의 멤버이고, 지금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쉽지 않은 여정을 보냈으리란 것쯤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지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왜? 나는 지금 네가 너무너무 부러우니까. 그러니 넌 그냥 여태 그래왔듯이 예쁜 인형처럼 고분고분 굴어줘. 그래야 내가 배라도 좀 덜 아플 테니까. 수틀리면 어떤 분탕질을 하게 될지는 나도 잘 몰라. 이를테면 뭐 이런 식의 질투가 아닐까 하고 상상의 나래를 조금 펼쳐본 것뿐이다. 나는 결단코 단언컨대 절대로 그런 부류의 인간이 아니다.


우려했던 바와는 다르게 별 다른 논란 없이 쓱 지나가긴 했지만, 이마저도 의구심이 드는 부분은 여전히 남아있다. 제니가 그저 그런 아이돌이었더라면 분명 이때다 싶어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느라 생난리가 났을 텐데, 이제는 GD처럼 그러려니 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서인지, 아니면 GD처럼 연예인의 연예인이 되어서 그런 건지, 아무튼 좀 신기하면서도 참 다행이다 싶더라. 영문 인터뷰를 가지고 때아닌 사과문을 그것도 친히 한글로 쓰게 될까 내심 걱정을 했었다. 그건 롹스타의 삶이 아니니까.


우리나라에서는 특히나 예술계에서는 겸양을 미덕으로 삼게 하는 고압적인 분위기가 너무나도 만연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적어도 수상하는 날만큼은 Party like a rockstar까지는 아니더라도 너스레를 좀 떨 수도 있는 거고, 객들은 또 그걸 쿨하게 받아주며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낼 줄도 아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여태 애써온 세월을 감안해서라도 그런 하루쯤이야 충분히 누려도 되는 것일 테니 말이다.


43회 청룡영화제에서 영화 한산으로 남우조연상을 거머쥐었던 변요한의 수상소감이 뇌리에 남아 있다. “받을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수상 소감을 준비하지 않았다.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는 게 특기다.”라고 밝히는 바람에 잠깐동안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렇다. 어쩌면 잠깐이면 쓰윽 지날지도 모를 일을 우리는 너무 많이 우려하며, 그토록 그리던 날을 정작 누리지도 못하는 건 너무나도 지나친 배려가 아닐까? 나는 그날 이후로 당찬 그를 더욱 응원하게 되었다. 


때로는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는 그들에게서 얻는 용기가 무조건 잘될 거란 뜨뜻미지근한 말보다 더한 격려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나는 믿는다. 살짝만 삐끗해도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세상,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러한 롹스타가 아닐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세상에 길들여짐이지. 남들과 닮아가는 동안 꿈은 우리 곁을 떠나네.” 우리 형 신해철이 스물네 살 적부터 꾸준히 노래해 온 것처럼. 


내심 한강 작가도 그래주기를 바랐었다. 그것 또한 문학이라고 나는 믿는다. 긴 시간 수고하셨고, 아무쪼록 앞으로도 계속 수고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번에 쓰신 깃털도 참 따뜻하더군요.






Jennie Is Going Her Own Way


Blackpink’s fame is such that privacy is a luxury and the tiniest bit of spontaneity from any member might become an incident. A recent clip of Jennie vaping indoors in Italy prompted an immediate formal apology statement from her reps. “What can I do? If Korean people think it’s wrong, I’ve got to make up for it,” says Jennie. She makes a point to see her fans’ concerns from their perspective. “It’s like, I get why you guys are upset. It’s cultural, it’s history. It’s time. And I can’t go against time.” - Harper's BAZAAR 인터뷰 원문


What we need is a rock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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