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3일 나는 JFK공항에서 인천공항 편으로 잠시 귀국을 한다. KTX 개통 이후긴 했지만 인천에서 대구로 오자니, 서울역까지 다시 가는 게 번거로웠던 나는 주로 공항버스를 타고 내려오곤 했다. 12시간 비행 후에 또다시 4시간쯤 버스를 타고 동대구 터미널에 내리면, 멀쩡한 사람도 곧잘 피폐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 다음엔 택시의 유혹을 피하기가 어렵다.
아이팟과 블랙베리를 사용하던 그 시절, 더군다나 나는 국내 번호도 없었던 터라 한국에서는 폰으로 통화랑 문자만 했었다. 아마도 국채보상로를 타고 동성로를 지나던 시점이었을 거다. 마침 아이팟 배터리도 동이 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택시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며 집으로 향하던 도중에 황당한 이야기가 들려오는 거다.
“저, 기사님 죄송한데 지금 이게 무슨 얘기죠?”하고 물으니 “노무현 대통령이 죽었어요.”라시기에 “네???”라는 소리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어떻게 아직 그걸 몰랐어요? 나는 참말로 그게 더 신기하네.” “아, 실은 유학생인데 비행기를 타고, 인천에서는 또 버스를 타고 내려오느라 전혀 몰랐어요.” 머지않아 근처에 빈소도 차려졌으나 찾아가지는 못했다. 그는 내 손으로 뽑은 첫 대통령이었다.
Here, I stand for you. 자꾸만 형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벌써 10주기라니. 어쩐지 빌어먹을 방송사들이 평소엔 안 하던 짓을 앞다투어 하더라니. 언젠간 그에 관한 이야기도 한 번은 해야 될 거라는 생각을 막연히 품고 있었다. 나의 굳건한 멘토이자 때로는 뮤즈가 되어주었던 우리 형 신해철. 나는 아직도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한다. 딱히 죄지은 건 없는 데도 여전히 꿈꾸고 있는 거 맞냐고, 제대로 좀 살아보라고 눈으로 혼내는 것 같아서 괜히 피하고야 만다. 요즘 내가 하는 뻘짓도 형만 믿고 따라가면 다 될 것만 같은데.
가만가만 들여다보면 한없이 유약한 사람이지만, 마왕이라 불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던 내가 아는 한 최고의 리릭시스트. 신해철 하면 거친 독설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건 명백한 오판이다. 불과 활동 초기부터 시작된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끊이지 않았던 건 순전히 인간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사랑 덕분이었을 거다. 내가 아는 한 그는 약자들의 편에 서기를 마다한 적이 없다. 미리부터 후회할 줄 알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겠지만 형은 그랬던 것 같다.
“절망에 관하여(1996)” 같은 노래로는 기껏해야 교복 입은 남학생을 필요 이상으로 진지해 보이게끔 만들었으며, 아직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녀를 그 인상 구긴 소년의 “일상으로 초대(1998)”하고 싶게 할 만큼 실은 엄청난 로맨티스트였다. 아내가 편안하게 들을 만한 앨범이 없다는 이유로 The Songs For The One(2007),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재즈 앨범을 만든 것만 보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훗날 본인의 장례식장에서 울려 퍼질 “민물장어의 꿈(1999)”처럼, 그는 늘 그렇게 삶과 죽음을 노래하다 간 사람이 되었다.
내가 고수하고 싶은 약자에겐 약해지는 삶 또한 형에게 물려받은 영향이 적지는 않다. 그렇지만 묘하게 고압적인 상황 앞에서는 나 또한 신해철의 후예답게 열혈남아의 위용을 친히 꺼내어 보이는 수밖에. 물론 그게 형만큼은 잘되지 않아서 잦은 오해를 사고 있는 건 비밀이다. 그마저도 딱히 괘념치 않는다는 건 더한 비밀이겠고. 나는 벌써부터 혼자 노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그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라는 것도. 96년에 그가 “절망에 관하여”를 말할 때 그랬던 것처럼, 씨발 나도 “그냥 가보는 거야.” 형이라면 분명 이쯤에서 쓰는 육두문자를 윤허해 주셨을 거다.
있을 때 잘 해야 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걸 평소에 실천하며 살 수 있는 사람도 흔하지는 않다는 걸 어느덧 경험으로 알아챈 나이가 되어 버렸다. 아마도 우리는 같은 실수를 또 반복하며 살아가겠지만, 최소한 남겨진 사람들이 가끔 이렇게라도 추억하며 살 수 있도록은 살아봐야 하지 않겠나? 꼭 형이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는 흑백사진 속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도록. 그게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후예들의 몫이 아닐까?
덕분에 저는 급하다고 아무거나 막 팔면서 사는 그런 인간이 되지는 않았어요, 고맙습니다.
번외.
신해철 유고집, 마왕 신해철 (문학동네 2014) 진즉 사두었지만 아껴서 아껴서 읽으려던 책도 드디어 읽을 때가 됐구나 싶었는데,
“의심과 분노와 슬픔 속에서 먼 길을 가게 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검증될 수 없는 믿음을 택하는 것보다는 내 발로 에덴동산을 나오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내 이십대는 마음의 평화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세상의 온갖 쾌락이 던지는 그 지나칠 만큼 강렬한, 그래서 고통스럽기까지 한 혼란 속에서 통곡하며 지내게 되었다. 68p.” “그리고 세상살이에 닳아 부드러운 모습으로 바뀌는 것과 세상에 물들어 추잡한 모습으로 바뀌는 것의 차이를 계속 겪으며 공부해보려 한다. 95p.” 역시나 우리성 맞더라.
이 외에도 때마다 마음의 부채를 안게 한 곡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우선 가사가 굵직한 곡들만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부디 음악과 함께 순서대로 음미해 보시기를.
끝으로 팬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문장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신해철의 음악을 듣는 어른은 소년이고, 신해철의 음악을 듣는 소년은 어른이다."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1989)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그대여
나에게 쓰는 편지 (1991)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길 위에서 (1991)
무엇을 해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나의 첫 깨어남이었지
난 후회하지 않아 아쉬움은 남겠지만 아주 먼 훗날까지도 난 변하지 않아
아버지와 나 Part 1 (1992)
그 누구에게도 그 두려움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가장 무섭다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
영원히 (1992)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세상에 길들여짐이지
남들과 닮아가는 동안 꿈은 우리 곁을 떠나네
절망에 관하여 (1996)
뜨겁던 내 심장은 날이 갈수록 식어가는데 내 등 뒤엔 유령들처럼 옛꿈들이 날 원망하면서 있네
무거운 발걸음을 한 발자국씩 떼어놓지만 갈 곳도 해야 할 것도 또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민물장어의 꿈 (1999)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신해철 유고집 에필로그, 마왕 신해철 (문학동네 2014) The Songs For The One
유고집 遺稿集: 명사 죽은 사람이 살아 있었을 때 써서 남긴 원고를 엮은 책.
물론 고집 있는 삶을 고집스레 사신 것은 맞지만, 고집이 있다는 뜻은 아님을 노파심에 밝혀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