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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ST Sep 28. 2018

가을, 서울시가 내게 주는 기분들 (180928)

1년 3/4 보내고 가을을 맞을 때 느끼는 감정들 올해 VER.


추석 당일의 정신없는 일들 (제사로 시작되는 여러 가지)을 마친 뒤,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남은 2일간을 모처럼 여유롭게 보냈다.


날씨는 최고였다... 유독 이번 여름이 덥기만 한 기억뿐이기 때문일까?


추워진 듯 하지만 낮에 다니면 따뜻함이 아직 남아있고,


하늘은 쾌청하다.



하늘이 너무 새파란 느낌이라 멍하니 쳐다보다가 구름도 한번 보다가


심지어는 나무위키로 구름의 종류를 검색하게 될 정도로 좋은 날씨


하늘에 버들처럼 퍼져있는 구름이 어떤 구름인가 찾아봤는데, 권적운이라는 이름이었다.


(구름에는 10가지 종류가 있지만 실제로 예쁜 구름의 형태는 몇 가지 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없었던, 유독 좋은 날씨에 이끌려 간만에 많은 걸음을 걸었다.


이제는 어느덧 10년이 넘어가는 서울살이.


대학로, 종로, 청계천, 한강 등등


서울, 특히 중구 종로구 일대는 내 실질적인 고향이 되었다.


태어나서 고등학교 때까지 자란 곳은 경기도 수원이지만, 좋은 기억이 많지 않았다.


학교와 집을 반복하고 수원에서의 생활에 큰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아직도 수원에서 가장 재미있는 곳은 이마트나 홈플러스라고 생각한다.


중고등학교를 보낸 영통에서는 이제 부모님도 살지 않으시고,


친구들도 다른 곳으로 떠났다. 서울에서 신혼집을 차리던지, 광교로 가든지 등등.





나는 서울에 2005년도에 대학생 신분으로 처음 왔다.


수원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고등학교 수능 공부 때 일종의 모티베이션이 되었다.


처음 온 서울에서 용돈도 별로 없이, 딱히 친구들하고 늘 몰려다니는 것도 없이


하염없이 걸어 다녔던 기억이 난다.


처음 대학로 내 자취방에서 종로까지 지도도 없이 걸었을 때


생각보다 거리가 가까워서 놀랐다.



그 좁은 공간에 이렇게 많은 가게와 사람들과 시끌벅적한 거리가 있다...


유치하지만 다소 진부한 '대도시'의 정서를 처음 느꼈던 것 같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난 서울을 너무너무 좋아하게 되었다.


갓 태어난 새끼 짐승이 처음 보게 된 사람을 어미로 인식하듯,


나 또한 최초로 접한 서울인 종로, 중구 일대의 비좁음과 번잡함을 사랑하게 되었다.


서울은 나의 실질적인 고향인 것이다.






그러나 10년 여가 지나면서 서울살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갔다.


일에 바쁘고, 일이 끝나면 집에 틀어박혀 쉬거나 의욕 없는 내일을 두려워하는 나날들


한때는 넓게 느껴졌던 도시가 어느 순간부터는 비좁게 나를 가두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가족도 쉬이 연락할 수 없는 친구도 없는 삭막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싸돌아다니기"를 멈췄고 내 좁은 자취방의 경계에서 서울의 공간 역시 단절되었다.







그런 나에게 이번 연휴는 오랜만에 여유란 것을 느끼게 해줬다.


9월 26일, 연휴 마지막 날에 날씨에 이끌려 걷다 보니 동대문 DDP 까지 오게 되었는데,


예전 2005년에 서울에 왔을 때는 이 건물이 형체도 없을 거라 생각하니


그 10년간 서울도 큰 변화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에는 사람이 더 많아졌고, 더 활기가 생겼다.


DDP 근처의 트인 거리 한가운데서 시원한 가을바람을 느꼈다.


동시에 주위에서 들려오는 적당한 소음들



큰 도시에서 살면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묻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존재에 무관심한 많은 사람들 속에 묻혀서 나로서도 크게 타인을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내 기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독립된 나 로서의 존재감을 체감하는 것이다.







2018년 9월 말에서 10월로 넘어가는 시기


2005년 상경 이후 이런저런 와신상담의 시간을 거쳐


어떤 측면에서 보면 성장했고 어떤 면에서 보면 오히려 퇴보한 듯한 느낌의 내가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날씨에 영향을 받는 타입의 인간은 유약하기 짝이 없다.


날씨가 좋으면 기분이 좋고, 비가 오고 습해지면 답답한 기분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그러나 신기하게도... 바닥을 치고 나락에서 다시 올라올 때쯤에는


좋은 계절과 날씨가 다시 찾아와 좋아진 기분을 더욱 고양시켜준다.


결국 날씨뽕(?)을 맞고 다시 일정 기간을 힘차게 살 수 있는 에너지를


계절의 순환이 내게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 그냥 가을 날씨 좋다고 끝내면 될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써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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