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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안후라이안 Aug 02. 2020

잣 동동 민트차, 튀니지

옛날 사진으로 시간 감기

"사진도 직접 찍으세요?"

며칠 전 회의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두 회사가 서로를 탐색하는 자리였다. 프랑스 요리 세 가지와 레드와인 한 병이 레스토랑 주방을 거쳐 테이블에 놓였다가 다시 세 사람의 배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크게 차이나는 나이들은 아니었으나, 내가 제일 어렸다. 세 사람이 이루는 직각삼각형의 두 꼭짓점은 평화로웠으나, 나머지 한 꼭짓점은 홀로 외로웠다. 밖에서 비는 내리다 긋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여의치 않으면 직접 찍을 때도 있긴 한데, 아무리 애써도 전문가는 못 따라가겠더라고요."

'귀사의 예상보다 견적이 커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콘텐츠 완성도는 높을 겁니다.' 이런 뜻을 담아 이렇게 가볍게 응수했다. 맞은편에 앉은 두 사람이 주억거렸다. 가끔은 나와 상대의 주머니 사정이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기도 하고, 우리의 업무 범위를 가로지르기도 한다. 아, 이루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기분.


접힌 우산을 털레털레 흔들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2년 전 튀니지를 떠올렸다. 여행 매거진 기자 신분으로 참여한 팸투어(Familiarization Tour의 준말, 관광지나 여행 상품을 홍보하기 위한 설명회 형식의 여행으로 기자 및 여행업 관계자가 참여한다)에서 나는 빠르게 메모하고 급하게 사진을 찍으며 정신없는 일정을 소화했었다. 집에 도착해서는 곧장 노트북을 열었다. 12페이지 분량의 기사.pdf와 튀니지.jpge를 드래그하며 신나게 웃었다. 굳이 무어라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되는 그 기분.


 




유럽에서 지중해를 가로질러 마침내 아프리카에 도착한 요트들. 이곳은 엘 칸타우이(El Kantaoui). (c) 2018. 아이후(ihoo) all rights reserved.



사하라 사막 끝자락, 보드라운 모래가 흩날리는 아프리카.

하나 올리브나무와 아몬드 나무가 지평선을 따라 녹색 능선을 그리는 곳.

곳곳에 흩어진 이슬람 사원과 아랍어가 표출하는 중동.

하나 흰색과 파란색으로 칠한 건물이 지중해 물색과 잘 어우러지는 곳.

튀니지는 한 가지 색깔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나라였다.


 

메디나(Medina)는 아랍어로 '도시'란 뜻. '옛 시가지'란 뜻으로 사용한다. (c) 2018. 아이후(ihoo) all rights reserved.



튀니지를 맛으로 표현하라면, 단연코 대추야자의 '단맛'이다.

윗줄 가운데 사진에 있는 열매가 모두 토죄르(Tozeur)에서 따고 말린 대추야자다. 지금까지 먹어왔던 모든 단맛을 응축해놓은 맛이랄까. 설탕이나 꿀은 저리 가라다. 엄청나도고 무지막지한 단맛에 혀가 오그라들 정도. 토죄르는 대추야자로 둘러싸인 오아시스의 땅이다.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와 <스타워즈 에피소드> 1~4편이 토죄르에서 제작됐다.  


튀니지를 모양으로 떠올리라면, 파티마의 손과 눈 문양이다.

'파티마의 손'은 원래 북아프리카의 토속 부적이었다. 손가락으로 악귀의 눈을 해친다는 경고로, 액운을 물리치기 위해 사용했다. 이슬람 문화권에 전파되면서 모함메드의 딸 파티마의 손으로 변형됐다. 눈 문양을 더하면 그 힘이 더 강력해진다고 한다. 목에 거는 장신구나 식기를 손바닥 모양으로 만들기도 하고, 아예 손바닥에 색을 입혀 집 벽에 찍기도 한다. 아랫줄 가운데 사진에 있는 손바닥 모양의 그릇은, 가운데 동그란 모양을 중심으로 모두 벌려놓고 사용할 수 있다.



왼쪽부터 소금호수 쇼트 엘제리드, 사하라사막, 낙타가 물을 긷는 성스러운 우물 비르 바로우타. (c) 2018. 아이후(ihoo) all rights reserved.



튀니지에서 가장 좋았던 걸 묻는다면, 대답은 단연코 사하라 사막이다.

두즈(Douz)에서 터번과 로브를 빌려 입은 우리는 낙타를 타고 일출을 보러 갔다. 말을 탈 때는 내가 너무 무거울까 봐 미안한데, 다행히도 낙타를 탈 때는 꽤 안정감이 있다. 요 녀석들은 생각보다 깜찍한 표정을 짓곤 했다. 속눈썹이 기다랗고 큰 눈이 동그래서 그런 걸까.

모래는 보드랍고, 보드랍다. 일출 앞뒤로는 해가 강하지 않아 사막에 있어도 전혀 덥지 않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밟은 모래는 촉촉했다. 상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사하라였다.

해가 사하라를 타고 빨갛게 올라오는 사진도 여럿 있긴 한데, 내가 찍은 사진은 너무 평범하기만 했다. 회사에서 쓰는 미러리스 탓을 하고 싶기는 한데, 딱히 그렇지도 않다. 이게 바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튀니지에서 가장 신기했던 게 궁금하다면, 소금호수라 답하고 싶다.

사하라 사막은 한때 바다였다! 나는 늘 이런 데서 전율을 느낀다. 바닷물을 말려버리는 데 태양은 얼마나 오랜 기간을 뜨겁게 이글거렸을까? 신기루를 만드는 두즈의 흰 소금 평야를 지나면 면 소금호수를 만날 수 있다. 이름은 쇼트 엘 제리드(Chott El-Jerid). 사하라 사막이 바다였다는 증거다. 건기에는 소금사막을 이루다가 우기에는 물이 차올라 소금호수가 된다. 저 물을 손가락으로 찍어서 먹으면 매우 짭조름하다.



시디부사이드의 카페들. 왼쪽은 카페 시디 샤반, 가운데와 오른쪽은 카페 데나트. (c) 2018. 아이후(ihoo) all rights reserved.



시디부 사이드(Sidi Bou Said)는 산토리니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는 '돗자리 카페'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카페 데나트(Cafe Des Nattes)가 가장 유명하다. 앙드레 지드, 알베르 카뮈, 미셸 푸코, 시몬 드 보부아르, 기 드 모파상도 즐겨 찾던 곳이라고. 이곳에 드나들던 예술가 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단연코 파울 클레다.

"색채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나는 화가다."

동료 화가들과 튀니지 여행을 마친 후, 클레는 이렇게 말했다지. 나도 남몰래 중얼거려 봤다.

"나는 나다. 나는 아이안후라이안이다(히히. 이게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면 <<책장 파먹기>> 매거진의 <화려한 필명이 나를 감싸네>를 참고할 것)."

카페 데나트에서는 튀니지식 민트차를 맛볼 수 있다. 튀니지 사람들은 묽은 홍차에 설탕을 진하게 풀고 민트 잎을 띄운 차를 자주 마신다. 동동 띄운 잣은 고소한 덤.

도시 꼭대기까지 열심히 오르면 탁 트인 항구를 배경으로 삼은 카페 시디 샤반(Cafe Sidi Chabanne)이 선물처럼 기다리고 있다.






사진은 찍는 것도 좋아하고, 들여다보는 것도 좋아한다(오직 찍히는 것만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취재하며 얻는 사진이라곤 뒷모습이 태반이지만). 나는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데 집중하고 사진은 전문가에게, 아직은 맡겨두고 싶다. 1인 미디어 시대, 모두가 콘텐츠 크리에이터이니 언젠가는 내 안팎에서 조금씩 변화의 균열이 발생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조금 더 일에 농익어 어떠한 판단에도 실수가 있지 않을 때까지만. 그때까지만이라도 삶의 여행자로서, 내 사진은 어디까지나 추억의 영역에만 머무를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으로 2년의 시간을 감았더니 튀니지가 나오더라는 이야기.



파울 클레(Paul Klee),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전시(Bauhaus Exhibition Weimar)>, 1923, 뉴욕 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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